정보·알림
Information / News

열린게시판

제목 [Vol.10 /2011.06] 논단 _ 모범(模範)을통한 교육 관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9 조회수 59

[Vol.10 /2011.06] 논단 _ 모범(模範)을 통한 교육 관행

양한순 _ 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조교수

 

중국의 정체성은 왕조의 흥망성쇠나 여러 민족으로부터의 정복과 통치에도 불구하고 수 천 년을 이어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 전통이 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중국이란 정체성에 응집력과 연속성을 제공해주는 그 전통을 “중화문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유교, 가족주의, 농경, 한자, 혹은 국가제도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통해서 “중화문명”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긴 세월을 관통한 중국문화의 연속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 그 문화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그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느냐의 문제이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전통을 학습하고 계승하는 방식, 즉 학습 관행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중국문화는 그 내용 만큼이나 그 것을 학습하는 방식 또한 중국적인 특색을 보이고 있다.

 

중국인이 문화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실천하는 관행 가운데 하나는 “모범을 통한 교육”이다. 물론 모범을 통한 교육은 중국인들만의 관행이 아니라 인간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교육방식이다. 하지만 도자기가 중국만의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크게 발전했듯이, 문화를 학습하는 방식으로서 “앞선 모범을 통한 교육”이란 관행은 중국전통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이러한 관행에 대한 묘사는 고전에서부터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시경에서는 주나라의 성왕은 부친인 무왕을 모범으로 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訪落편). 도덕경에서도 성인은 도를 지킴으로써 천하의 모범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22). 그리고 맹모삼천의 고사를 비롯해 유교 역시 윗사람이 모범을 보여 아랫사람들이 따라 배우게 한다는 점을 누누이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의 유학자들은 이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법에 의한 통치 보다 모범을 통한 교화가 사회질서 유지에 더욱 유리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중국에서 가르침을 일컫는 표현은 사표(師表), 사범(師範), 표솔(表率)과 같이 대부분 스승이 스스로 모범이 되어 교육시킨다는 표현이 많다. 그리고 모범이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도 전범(典範), 전형(典型), 방양(榜樣), 귀감(龜鑑) 등 매우 다양하다.

 

유교의 기반 위에 건설된 중국의 사회질서에서 “효”라는 가치는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중국인들에게 이 효라는 가치는 단순히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었다. 효는 언제나 효를 실천한 모범을 통해 교육되었는데, 원나라 때 곽거경은 24명의 효자 이야기를 모아 <二十四孝>란 책을 편찬하였다. 이 책에는 쌀가마니를 지고 백리 길을 걸어 부모를 봉양한 공자의 제자 자로를 비롯해서, 이가 없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모유를 드린 당나라의 한 관리의 아내 이야기, 그리고 여름날 모기 때문에 고생하는 부친을 위해 부친의 침대 앞에서 자신의 맨몸으로 모기를 유인해 부친이 편히 쉴 수 있게 했던 진나라의 한 효자 이야기 등 춘추시대부터 당나라 때까지 24명의 효자 효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고사는 명·청 시대에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는데, 사람들은 앞선 모범들을 단순히 따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강화된 모습으로 실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살을 베어 병약한 부모에게 드리는 할고(割股)라는 관행은 이렇게 앞선 모범을 따라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다.

 

유교에 기반한 중국의 전통은 청이 멸망하고 큰 위기를 맞는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중국 지식인들의 반전통주의는 유교와 봉건질서를 거부했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이런 반전통주의를 기반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모범을 통한 학습이란 전통은 공산당에 의해서 꾸준히 계승되었다. 더 나아가 공산당 연안정부는 모범을 활용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연안정부는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섰던 여성, 군인, 노동자를 영웅으로 선정하여 널리 홍보하였는데, 1930-40년대 그 영웅의 수는 12천 명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인민을 교육시키는데 있어 모범 학습이 널리 동원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레이펑(雷鋒)은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 모범이었다.

 

레이펑은 1962년 트럭 운전 도중 사고를 당해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병사이다. 그런데 그가 전쟁영웅은 아니었지만 평소 매우 이타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중국 사회주의의 모범으로 탄생하게 된다. 레이펑은 추운 겨울 장갑도 없이 길을 가는 노인을 발견하면 자신의 것을 벗어 주었고, 시간이 나면 같은 내무반에 있는 동료 병사들을 위해서 빨래도 하고 담요도 깁고 청소를 하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지 않도록 항상 동료들 모르게 그런 선행을 실천했다. 그리고 남몰래 실천하는 선행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일기에 적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일기가 알려지고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레이펑 학습을 제안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레이펑을 모방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캠페인이 일어나자 전국의 거의 모든 학생들은 레이펑의 일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레이펑을 본받아 일기를 썼다. 그리고 학생들 가운데는 기숙사 친구들 몰래 그들의 옷도 빨아주고 청소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회주의 사회는 이타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레이펑 따라 배우기 운동은 사회주의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사회주의에서 모범 따라 배우기 관행은 사회주의 인간형 학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사회주의 경제개발에도 모범을 적극 동원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모범이 다자이(大寨)와 따칭(大慶)이다. 다자이는 산시성(山西省)의 한 산골마을이었는데 고된 육체노동을 통해 산지를 개간하고 농업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칭은 헤이룽쟝성(黑龍江省)의 유전으로서 그곳의 유전개발팀은 시설의 부족과 여러 가지 환경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유전개발을 완수하게 된다. 이렇게 1960년대 초 각각 농업과 공업 분야에서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고 경제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등장하자, “공업은 다칭에서 배우고, 농업은 다자이에서 배우자(工業學大慶, 農業學大寨)”라는 구호가 전국을 뒤덮게 된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이 두 성지를 견학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된다.

 

중국의 이런 모범 학습 관행은 개혁개방 이후에서 적극 동원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중국인들의 명함, 가정의 대문, 회사의 소개문, 식당의 간판, 혹은 도시의 간판을 보면 자신들이 “모범 노동자,” “모범 단위,” “문명 촌,” “우수 교사,” “선진 도시,” “오호 가정(五好家庭),” “문명 도시” 등과 같은 표창을 받았음을 자랑스럽게 드러내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들은 바로 앞서 살펴 본 모범 학습 관행의 연속선상에 있는 관행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국가의 인가와 관계없이 각종 모델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최근의 모델들은 대부분 시장경제에서 성공한 각종 촌락, 도시, 그리고 기업들이다. 그리고 이런 모델들은 무슨. 무슨 경제 모델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예들 들어 쑤난모델(蘇南模式), 원저우모델(溫州模式), 주쟝모델(珠江模式), 화시촌모델(華西模式), 하이얼모델(海爾模式)그리고 최근의 이우모델(義烏模式)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시장경제의 모범들을 따라 배우·기 위해 이곳들을 참관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을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중국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중화문명이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석해내는 것만큼, 사람들이 그 내용을 재생산하는 과정 즉 관행과 의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모범을 통한 학습이란 관행은 중국만의 독특한 관행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 관행을 매우 오랫동안 동원해왔고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다. 중국 문화의 내용을 이룬다고 여겨지는 유교나 가족주의와 같은 전통은 역사적으로 볼 때 불연속적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와 현재의 개혁개방도 불연속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어떤 관행은 이런 불연속적인 역사 속에서도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중국 문화의 지속성을 이런 관행에서 찾아보는 것은 중국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0 comments
작성자 패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