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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9 /2011.05] 논단 _ 도교에 대한 짤막한 소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9 조회수 59

[Vol.9 /2011.05] 논단 _ 도교에 대한 짤막한 소고

 

고은강 _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조교수

 

한국인에게 도교는 친근하면서도 생소한 종교다. 흔히 동아시아 3대 종교로 유교, 불교, 도교를 들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도교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으며 어떤 사람은 도교를 한국 문화의 일부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인 중에 도교라는 이름하에 치러지는 종교 의식을 경험하거나 도교라는 이름하에 조직된 종교 단체에 가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한국인이 종교로서의 도교를 경험하는 기회는 흔히 중국 혹은 동남아 해외여행 중에 간혹 주어진다. 내가 도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역시 그러했다. 1991년 동남아 배낭여행 중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우연히 들른 한 사원에서 경험한 혼란과 호기심은 오래도록 남아서 도교라는 종교를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본토, 타이완(臺灣),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및 전 세계에 존재하는 ‘중국 사회’에는 도교가 중요한 요소로서 자리 잡고 있다. 종교를 제도화된 종교(institutionalized religion)와 민간 신앙(popular religion)이라 구분한다면 도교는 양 측면 모두에서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도교는 전국 규모의 교단과 그에 속한 사원을 거느리고 도교 의식을 행하고 신자들을 조직하는 제도화된 종교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제도화된 종교에 한정하여 도교를 이해한다면 중국 사회에서 도교의 일면만을 포착한 셈이 된다. 도교의 특징으로 습합(syncretism)을 든다. 도교는 유교, 불교 등 다른 종교와의 습합뿐만 아니라 기 수련, 한의학, 점술 등 다른 문화 요소와 습합을 통해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형성된 다양성 역시 도교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내가 처음 본 ‘도교 사원’에서 느꼈던 혼란과 그에 따른 불편함은 도교의 습합과 다양성이라는 특징을 이해하게 되면서 해소되었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다른 질문이 생겨났다. ‘도교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의문이다. 신선 사상, 신화 등을 포함하는 신앙, 민간 풍습으로도 여겨지는 관습, 기 수련 및 한의학 등과 관련된 신체 단련 등 <도교대사전>의 다양한 항목이 보여주듯이 습합과 다양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종교이다 보니 도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되게 하는 요소를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종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요소들 역시 도교 전통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페낭의 ‘도교사원’에서 느낀 불편함 역시 그 때문이다. 사원에 들어가자마자 우뚝 선 관음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 내 상식으로는 관음은 불교의 신이기 때문에 관음상이 있다면 그 곳은 불교 사원이지 도교 사원일 수 없었다. 이 혼란은 훗날 ‘도교의 정체성’이라는 연구 주제로 구체화되었다.

 

2000년 중국 베이징(北京)에 위치한 유명한 도교 사원인 바이윈관(白雲觀)을 방문한 일이 ‘도교의 정체성’ 연구의 출발이다. 경내를 둘러보고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서적들과 함께 ‘도교음악’ CD를 구입하게 되었다. <선악집-보허(仙樂集-步虛)>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는데 도교 음악 연주단체인 베이징 바이윈관 도악단(北京白雲觀道樂團)과 홍콩 도악단(香港道樂團)이 공동으로 녹음하였다고 쓰여 있었다. 도교음악을 처음 접한다는 기대감에 들어 본 음악은 대 실망이었다. CD에 수록된 음악들은 성악곡이 아닌 기악곡이었는데 중국 전통 악기로 편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중국 전통음악’과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음악을 ‘도교음악’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가사도 없이 연주곡으로만 녹음된 <선악집-보허>가 도교 음악으로서 감상되고 이해될 수 있는 배경에는 "도교 음악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두 도교 음악 오케스트라는 CD와 함께 제공되는 설명문, 인터넷을 통한 도교 음악 설명 등을 통해 자신들이 연주하는 연주곡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과거의 도교 음악과 연결함으로써 <선악집-보허>에 다른 음악과 차별되는 도교 음악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도교사(道敎史)에 기반을 둔 도교 음악사를 현재 공연 예술로서 연주되고 녹음되는 음악과 관련지음으로써 공연 예술로서의 도교 음악이 새롭게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교의 색채가 배어 있는 언어로 쓰인, 도교의 철학과 역사를 곁들인 음악 해설은 듣는 사람이 평범한 중국 음악을 “도교 음악”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된다. 도교적 언어와 도교사로부터 만들어진 음악 해설은 음악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청중은 “도교 음악”으로부터 도교의 양생(養生)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청중이 “도교 음악”을 듣고 종교에 의해 보호 받고 몸이 편안해 지는 체험을 했다면 이는 음악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진 도교적 맥락”이 음악에 부여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음악 감상용 CD로 녹음된 도교음악이 아닌 실제 도교의식에 쓰이는 의식음악의 정체성 역시 중국 역사의 일부로 존재하는 도교의 역사에 의지하는 부분이 크다. 도교음악 CD <선악집-보허>에 참여한 두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홍콩 도악단(香港道樂團)이 상주하는 도교사원 ‘펑잉선관(蓬瀛仙館)’을 방문하여 도교의식을 연구하며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과거로부터 이어 온 도교의 언어와 도교사(道敎史)가 음악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도교의식음악은 의식에 쓰이는 도교 경전을 의식을 집전하는 도사들이 소리 맞추어 읽고 노래 부르며 의식을 이끌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주로 성악곡 위주이며 기악은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의식에 쓰이는 도교 경전은 도교의 종교적 가르침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펑잉선관의 도교의식에 주로 사용되는 경전 중 하나인 <여조무극보참(呂祖無極寶懺)>은 원래 제목이 <구천대라 옥도사상 여성진군 무극보참(九天大羅玉道師相呂聖眞君無極寶懺)>이다. ‘여조’는 봉영선관이 속한 도교 전진교의 중심인물 여동빈을 가리킨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전에 사용된 언어들은 도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어휘들과 수사법 그리고 종교적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미화법이 혼합되어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일상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도교의 언어들과 도교의 역사를 만들어 온 도사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해설서 형식으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도교 사원에서 도사들에 의해 거행되는 도교의식이라는 맥락이 없다면, 도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성악곡 위주의 의식음악이라고 해도 도교음악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도교라는 종교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어 도교를 연구하게 되기까지 십여 년, 도교 연구를 시작하여 성과물을 내기까지 또 근 십년이 흘렀다. 아직도 도교는 혼란스럽고 한국인인 내게 여전히 친근하면서 생소하다. 그러나 적어도 도교 연구가 동아시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연구 영역이라는 확신은 생겼다. 유교 및 불교에 상당한 연구를 축적한 한국학계가 도교 연구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참고문헌

 

고은강, 2011. “도교 의례와 음악”. 아시아의 문화예술. 대구대학교출판부

고은강, 2010. “도교의 종교적 실천으로서 “돌봄”과 사상적 배경-홍콩 도교를 중심으로” . 『아태연구』 제 17권 제 3

Eun Kang Koh, 2009 "We Define Music, Music Defines Us: Making Daoist Music beyond State Borders" 『동아연구』제 56

Eun Kang Koh,  2009. "A Socio-Cultural Interpretation of Healing Music: SARS Expelling Ritual in Hong Kong", 『아시아문화연구』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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