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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7 /2011.03] 논단 _ 중국 농촌 여성의 마음(心眼兒) 그리고 자살(自殺)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4 조회수 45

[Vol.7 /2011.03] 논단 _ 중국 농촌 여성의 마음(心眼兒) 그리고 자살(自殺)

 

이현정 _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나에게 2000년대 중반은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열 시간 가까이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야 도착하는 만리장성 너머 한 산간 마을에서의 삶과 동일시된다. 개혁개방이 이루어진 지 이미 스물다섯 해가 흘렀지만, 마을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 내의 주민들도 외국인이라고는 처음 봤다면서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바라보듯이 신기한 듯 내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의 중심거리에는 대장금(大長今)’이라는 이름의 한국식 불고기집(肉店)이 있다. 까다로운 한국인의 입맛에는 그저 중국식 꼬치구이일 뿐이지만. 가게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TV라는 매체가 들어온 뒤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의 드라마는 이 곳 산골 사람들에게도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처럼 물리적 거리로는 수도에서 열 시간밖에 떨어져있지 않지만, 세계적 도시인 베이징의 경험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곳. 그러나 저녁이면 또 다른 경험의 창()인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상품을 접하며 새로운 꿈과 욕망을 키우는 곳. 허베이성(河北省) 북쪽 끝자락인 이곳에서 나는 2년 가까이 머물며 이들 농민의 삶과 고통과 웃음을 함께 나누고 배웠다. (그림1 참고)


논단 2.1.jpg  그림1 7. 논단2.2.jpg 그림2

 

왜 농촌에서 여성들이 그토록 많이 자살하는 것일까요?” 물론 처음부터 무턱대고 이러한 질문부터 던진 것은 아니지만(사실, ‘자살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이 질문은 내가 궁극적으로 대답을 얻어야 하는 물음이었다. 2001, 세계보건기구는 그 해의 연차보고서에서 중국의 높은 자살률이 세계가 주목해야 할 정신보건의 사안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WHO 2001). (그림2 참고)

 

보고서는 특히 농촌 지역의 15~34세에 이르는 젊은 여성이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이 세계보건기구에 전국 자살률을 보고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까지 중국 정부는 자살률이 서방 세계의 중국에 대한 공격 및 비난의 근거가 될 것을 염려하여 외부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Ji, Becker, and Kleinman 2001). 어쨌든, 국제화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진 중국 정부의 자살률 공개는 전 세계 중국학자 및 보건관련 전문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왜 중국만 유독 농촌 여성의 자살률이 높은 것일까? 사회학자 뒤르켐의 자살론(1951[1897]) 이후, 어느 나라도 여성의 자살률이 남성보다 높다고 보고한 경우가 없었고, 또 농촌이 도시보다 높은 경우도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은 꽤나 당연하고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거야 여자들이 마음이 너무 좁기 때문이지(女性的心眼兒太小).” 마음이 너무 좁기 때문이라고? 무슨 뜻인지 얼른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놀랍게도 나는 같은 대답을 단지 몇몇 사람이 아닌 삼십 대 이상의 대부분의 남녀노소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즉 마을 사람들의 관점에 따르면, 농촌 여자들은 배운 것도 없고 또 바깥세상에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따라서 집안에 무슨 사소한 일이라도 발생했다 하면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대뜸 농약부터 마시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여성들과 심층 면접을 해보면, 소위 집안의 사소한 일이란 대개 남편의 바람이나 도박, 경제적 곤란, 그리고 친척이나 이웃의 괴롭힘 등을 뜻한다. 배우자의 혼외정사나 각종 문제로 인한 빚 부담, 그리고 공동체 내의 시기와 질투 같은 문제들은 사실 개방 이후 중국 전역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며, 근본적으로는 물질적 욕망 및 필요의 증대와 도덕적 가치관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 곳 산간 마을도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지만, 가난하고 외딴 농촌 마을이라는 점에서 각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방법은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가족 내의 이러한 사소한 일들은 해결방법이 마땅치 않은 이들에게 심각한 부부싸움을 동반하기 십상이고, 부부싸움 중간에는 십중팔구 서로 간의 육체적·언어적 폭력이 끼어들곤 한다.

 

 

사느니 죽는 게 더 낫다(死的比活着更好).” 잦은 부부싸움과 폭력에 시달리며 도저히 닥친 문제를 해결할 길 없다고 느끼는 여성들은 분노와 절망에 지친 나머지 차라리 농약을 마시고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매일같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지속하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관념은 마을의 젊은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질병과 외로움을 홀로 견디던 노인들은 옆집도 모르게 조용히 방 안에서 농약을 마시기도 하고, 재능과 노력을 가지고도 단지 외모가 못생겼다고 직장에서 번번이 쫓겨나고 장가도 가지 못한 한 나이 든 총각은 결국 세상을 비관하며 목숨을 끊었다. 또 반드시 부부싸움이 없다고 하더라도, 병든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홀로 돌보는데 지친 여성의 자살 선택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배경에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도농 차별에 근간한 국가 정책의 부작용이 구조적으로 놓여있지만, 그와 더불어 도대체 무엇이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라는 인간 삶의 고귀함(dignity)에 대한 문화적인 시각이 내포해 있다. , 수치심이나 불명예스러운 상황을 지속하면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인간의 도리에 가깝다고 이들은 믿는 것이다. (그림3 참고)


7.논단2.3.jpg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살이 그토록 쉽게선택될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이 좁아서 혹은 아량이 작아서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설명은 그 자체로 납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만일 농촌 여성들의 마음이 문제라면, 단순히 좁다 넓다가 아니라 도대체 이들의 마음의 눈’(心眼兒)이 어디를 향해 있기에 자살을 쉽게선택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찍이 타이완(臺灣)의 농촌을 대상으로 여성의 자살 문제를 연구했던 울프(Wolf 1975)는 젊은 중국인 여성들에게 자살이란 시집 온 가족 내에서 아직 아들을 통해서조차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무력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공적 고발(public accusation)이라고 주장하였다. , 여타 다른 방법으로 갓 시집온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낼 수 없는 권력 구조 속에서, 자살은 자신이 처한 고통과 억압적 상황을 드러내는 유일한 표현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억압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한 고발의 성격으로서의 자살은 울프의 연구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도 허베이성의 산간 마을에서 때때로 나타난다. 불명예를 유발하는 거짓된 소문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는 수단으로써, 그리고 남편이나 시가족의 폭력적 태도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써, 농촌 여성들은 과감히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딱히 억압적이고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니라도, 젊은 농촌 여성들은 부부싸움 도중에 간혹 충동적으로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들의 경우, 만일 신속하게 현 내의 응급실로 운송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부족한 교통 시설과 의료 환경으로 인해 대부분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게 된다. 나는 마을 내에 이러한 성격의 자살이 꽤 많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 원인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이 여성들은 왜 이렇게 자살을 쉽게그리고 충동적으로선택하는 것일까? 오랜 기간 머물며 여러 사람들과 심층 면접을 수행한 결과, 나는 놀랍게도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중에 여성 자살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적어도 여성 자살은 세대를 거쳐 마을 공동체 내에서 나타나는 꽤 흔한 사건이며, 농촌 여성들은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살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행위 중 한 가지라고 인식해 온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학습 효과는 마을 여성들이 자주 인용하는 속담에서도 발견된다. ‘처음엔 울고, 그 다음엔 싸우고, 그래도 안 되면 목을 매 달아라’(一哭, , 三上弔). 이 속담은 딱히 다른 자원이나 권력을 가지지 못한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제한된 세 가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살이다. (그림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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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국 농촌에서 여성의 자살이 빈번한 이유는, 한편으로 역사적으로 여성의 삶 속에 만연해 온 다양한 고통 및 억압적 상황들과,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이 오랜 시간 속에 축적되면서 형성된 무의식적인 전략의 학습이 서로 공존하여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표현을 일부 빌리자면, 여성의 마음이 원래부터 좁아서라기보다는, 마치 경주마의 차안대(遮眼帶)처럼 사회구조와 주변적 상황으로 인해 여성의 마음이 볼 수 있는 영역이 좁아졌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좁아진 마음은 다시 넓혀질 수 있고, 보다 광범위한 교육의 혜택과 매체나 노동 이주를 통한 바깥세상의 경험은 이들의 마음을 보다 쉽게 열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10대나 20대 여성들은 윗세대 여성들이 왜 자살을 선택해왔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차라리 이혼을 하거나 처음부터 혼자 살면 되는데 말이다.

 

 


참고문헌


Durkheim, Emile. 1951[1897]. Suicide. New York: Free Press.

 

Ji, Jianli, Arthur Kleinman, and Anne E. Becker. 2001. "Suicide in Contemporary China: A Review of China's Distinctive Suicide Demographics in Their Sociocultural Context." Harvard Review of Psychiatry 9(1): 1-12.

 

WHO. 2001. The World Health Report 2001. Geneva: WHO.

 

Wolf, Margery. 1975. "Women and Suicide in China," Margery Wolf and Roxane Witke eds, Women in Chinese Societ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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