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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 /2011.02] 자료소개_ 토지ㆍ주택소유증(土地房産所有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4 조회수 49

[Vol.6 /2011.02] 자료소개_ 토지주택소유증(土地房所有證)

 

송요후 _ 인천대학교 HK연구교수 해제



6. 자료소개.jpg

 

 

번역

 

山東省土地房産所有證(?字 第五三九九號)

 

長淸縣 11(十一)區 반점북가(潘店北街)村의 거주민 桑連*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共同綱領27조의 [농민이 이미 얻은 토지 소유권은 보호한다(保護農民已得土地所有權)]는 규정에 의거하여, 本戶의 전체 가족 10명의 소유 토지 합계 可耕地 115522; 非耕地 와 주택(房産) 합계 가옥(家屋) () 택지 는 모두 本戶 전체 가족이 私有한 부동산으로서 경작 및 거주하고 있는데, 典賣, 양도, 증여 등은 완전히 자유이며 어떤 사람도 침범해서는 안 되므로 특별히 이 증명서를 발급한다.

 

 

 

縣 長 □□□

 

 

내역

 

토지

 

所在: 大碑東南北

 

畝數: 15522

 

四至(경계): 으로는 片京木, 으로는 路心, 西로는 桑連友, 으로는 桑連杰

 

長寬尺度(길이와 너비): 南北 長科** 東段3408尺 西段13992

 

東西 大段 南28

 

橫科** 311

 

319

 

26

 

小段 南348

 

369

 

364

 

385

 

 

 

주택

 

 

195211일 발급

 

 

 

_ 해제

 

 

 

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共同綱領은 중국공산당이 주관하여 제정한 임시 헌법 역할을 한 문건이다. 1949929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되었다. 序言7[1總綱(1-11), 2政權機關(12-19), 3軍事制度(20-25), 4經濟政策(26-40), 5文化?育政策41-49), 6民族政策(50-53), 7外交政策(54-60]으로 구성되었다. 이 회의로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이어서 이 강령을 施政方針으로 삼았다. 공동강령이라는 말은 최초로는 1946년 정치협상회의에서 통과한 和平建國綱領에서 기원하였다. 당시 中共은 그것을 [共同綱領]이라 칭했는데, 그 뜻은 共 兩黨이 공동으로 준수해야 할 강령이라는 것이다. 후에 중공과 국민당 간에는 政協決議의 이행이 문제가 되어 내전이 일어났다. 따라서 후에 새로이 공동강령을 起草했는데, 이것이 바로 1949년의 공동강령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강령은 물론 五四憲法 모두 공동강령의 유효기간을 규정하고 있지 않고, 지금까지 이 강령의 失效를 선포한 법률조항이 없다. 195311毛澤東社會主義過渡時期 總路線을 제기했을 때, 실질적으로 효력을 잃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본 문서는 산동성 長淸縣에서 발급한 토지 및 주택 소유권을 확인해 주고 있는 증서이다. 이 문서는 전통적인 토지증명서인 地契一式二幅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문서의 오른쪽에 절취선을 따라 잘려진 것을 보면, 이 문서는 끝 부분으로 토지 소유자 보관용이고 뿌리 부분은 관에서 증명을 위해 보존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위 문서 발급의 근거가 된 제27조에, “토지개혁은 생산력발전과 국가공업화의 필요조건이다. 이미 토지개혁을 실행한 지역은 반드시 이미 농민이 획득한 토지의 소유권을 보호해야 한다. 아직 토지개혁을 실행하지 않은 지역은 반드시 농민 군중을 동원해 농민단체를 건립하고, 土匪악질토호의 제거, 減租減息과 토지분배 등의 절차를 거쳐서 耕者有其田을 실현해야 한다고 있어, 이 지역은 토지 개혁이 완결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위 강령 등과 관련해 볼 때, 정권의 교체와 새로운 국가 건설의 시기에 있어서 정권의 안정을 위한 시급한 필요에 맞춰 발급이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후 시기의 토지문서의 수집을 통해 문서 양식의 변천과 그 의미 등과 관련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 잘못되어 지운 것으로 보임

 

 

** ‘대략이라는 뜻. 다른 지역의 문서에는 로 표기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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