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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76/2016.12] 시사&테마 _ 평화로운 ‘자연상태’와 시민들 _ 김판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7 조회수 38

[Vol.76/2016.12] 시사&테마 _ 평화로운 자연상태와 시민들 _ 김판수


국가 중심론자였던 토마스 홉스는 생명·인격·법치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고심지어 망해도 된다고 주장했다그는 리바이어던』 제 21장 국민의 자유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통치자에 대해 힘을 합하여 ... 저항을 하거나 ... 서로 결속하여 돕고 방어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하는가당연히 가지고 있다. ... 그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의무의 첫 위반은 부정한 행위지만그 행위에 이어 무기를 드는 것은 이미 실행한 행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더 이상 새로운 부정한 행위가 아니다나아가 만약 그 행위가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전혀 부정한 행위가 아니다."1)

 

또 30장 통치자의 직무에 관하여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상류층에 대한 (법적편파성 ... 형벌을 면제하는 것은 오만을 낳고 오만은 (국민의증오를 낳고따라서 (국민은증오가 국가의 파멸을 낳는다고 하더라도억압적이고 오만불손한 모든 상류층을 타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그 분노는 부정한 행위를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를 보호할 수 있는 모든 권력에 대한 적대로 확대되기 때문이다."2)

 

홉스가 제기한 국민의 국가해체 자유는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구분해가며적극적 자유에 충실한 개인이 정치사회적 혁명에 참여하는 것을 비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그러나 홉스가 볼 때 개인은 생명·인격·법치의 가치를 위해 스스로 국가라는 괴물을 만들어 가혹한 통제도 감내하는 존재이다따라서 국가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훼손하여 망국 상황을 조성할 경우국민들이 힘을 합쳐 괴물이 되어버린 놈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어차피 국가는 유한한 인간이 만들어낸 필멸의 인공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판수.JPG

 

위 그림은  리바이어던』 초판에 사용된 것이다홉스가 직접 도안을 구상한 후 작가에게 부탁했다고 한다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리바이어던은 머리와 주먹에 불과하지만각각의 개별적 국민들은 완전한 신체를 갖추고 있다즉 국민들은 리바이어던을 떠나서 살 수 있지만리바이어던은 국민이 떠나버리면 죽어버리게 된다또한 리바이어던 스스로 국민을 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리바이어던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다마치 세월호 사건에서 국가 스스로 자신을 죽음으로 내던졌듯이.

 

홉스는 국가 해체 이후첫째개인은 자연 상태에서 새로운 공통의 가치를 창출하며 사회계약을 맺고둘째군주정·귀족정·민주정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국가계약을 맺으며셋째마침내 국가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통치를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물론홉스도 국가가 해체된 자연 상태를 끔찍하게 두려워했다국가의 해체는 도덕과 법이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내전 상태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선제공격이 정당화되는 공포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자연 상태는 최근 몇 년 간 우리가 견뎌내었던 한국의 상황과 매우 가까웠던 것 같다. ‘헬조선’, ‘흙수저-금수저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죽창 드립’(죽창 앞에선 너도 한 방나도 한 방등이다자유주의자들은 기회의 평등을 핵심 가치로 제시했지만홉스는 인간의 유일한 평등은 신체적 취약성이라고 여겼다즉 누구든 창에 찔리면 죽는다는 것그래서 그는 자연 상태는 가능한 한 피해야만 하고그래서 괴물을 만들어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6년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듯이국가가 망하는 이유는 국민이 아니라 바로 국가를 통치하는 자들 때문이지 않는가홉스가 그리스어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Thucydides)를 최초로 영문 번역한 것도 바로 이 문제를 에둘러’ 지적하기 위함이었다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민주정의 껍데기만을 미화해왔던 아테네 통치자들의 오만·허영·탐욕이 어떻게 그리스 전체의 패망은 물론, 문명적 질서’ 자체를 순식간에 야만적 상황으로 끌어내렸는지 신랄하게 비판했다즉 죄악스러운 목표를 위해서 멋진 어구를 구사하는 것이 높은 평판을 얻었고”, 또 자기들 스스로 동료를 믿지 못하고 전투에 임박한 것처럼 분열되었다.”

 

지난 몇 년 간 우리가 겪은 망국(亡國체험은 실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오늘도 국가는 망국 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최근 몇 주 토요일마다 진행된 자연상태는 무서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11월 26일 시위에서는 눈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190만 명이 운집했고극단적일 정도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했다이미 보수 언론은 촛불을 지겹다고 말하기 시작했다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는’ ‘소극적 자유에 취한 구경꾼이 되라는 것이다그러나 100만 이상의 시민들이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동안 피켓을 들고 외치면서도 평화로운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현재 망국 상태를 극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이다즉 시민들은 현재 한국과는 완전히 상이한 국가새로운 체제새로운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어떤 국가냐고? ‘안전하고노동하는 만큼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 말이다.

 

김판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T. Hobbes, 1985(1651), [Leviathan], 270p, Penguin Classics.

2) T. Hobbes, 1985(1651), [Leviathan], 386-9p, Penguin Classic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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