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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5 /2011.01] 논단 _ 중국의 인문학 전통과 도통(道統)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4 조회수 63

[Vol.5 /2011.01] 논단 _ 중국의 인문학 전통과 도통(道統)


전인갑 _ 인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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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상식의 뒤바뀜과 전통 학의 명운

 

1990년대 초중반에 중국 지식인 사회에는 인문정신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져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논쟁의 발단은 개혁개방 이후 진행된 중국 사회의 급격한 시장경제화로 인한 인문학의 세속화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 논쟁은 곧 인문정신의 상실, 지식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하락 등의 문제로 쟁점이 확대되었다. 많은 문화 논쟁이 그러했듯이 이 논쟁 역시 이렇다 할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이 논쟁에 참여한 한 지식인이 물질과 정신, 세계와 중국, 중국문화와 서구문화의 모순 속에서 현실적인 생존의 수요 때문에 현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미래의 생존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대화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우왕좌왕하는 배회 속에서, 중국 지식인들의 영혼이 겪어야 하는 고난의 길도 막 시작되었다고 솔직히 고백한 것처럼 이 논쟁은 중국의 인문학이 처한 위기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 인문학이 처한 위기는 이념의 와해’, 빠르게 진행되는 상업화와 배금주의의 만연 그리고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더욱 심화된 엘리트 지식인의 사회.정치적 위상 하락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연출된 위기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전지구화가 중국을 엄습하는 현실에서 인문학의 위기탈출과 전통적으로 천하의 스승으로 자부해 왔던 엘리트 지식인의 위상 회복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어찌 보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인문학 혹은 인문 지식인의 곤혹감은 중국인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정도의 급속한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비례하여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중국 지식인들이 경험하는 위기의식은 19세기 후반부터 지속된 것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현재의 위기의식은 19세기 후반 또는 20세기 전반기에 비해 훨씬 강도가 약하다고까지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위기의식은 후술하듯이 중국이 만들어 내었던 보편적 가치(道統=)의 붕괴와 중화(중국문명)’의 몰락에 대한 절박한 우려를 동반하는 위기의식이었다. 국학대사로 칭송받았던 왕국유(王國維)의 자살은 전통 지식인의 존립근거이기도 했던 도통=학의 죽음이기도 했다.

 

 

진인각(陳寅恪)[왕관당선생만사병서(王觀堂先生輓詞?)]에서 상식의 전환, 말하자면 엘리트 지식인의 정체성 그 자체였던 보편 가치(유교적 가치)의 상대화 혹은 붕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무릇 한 문화가 쇠락한 시기에 이 문화에 감화된 사람은 반드시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문화를 표현한 정도가 클수록 그가 받는 고통 역시 더욱 심하며, 그 정도가 극도에 달하면 자살하지 않으면 마음의 평안과 의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다. (중략) 금일 중국은 수천년래 초유의 엄청난 변화에 처하고 있는데, 그러한 변화가 끝나면 (기존) 문화의 정신으로 응취된 사람이 어찌 운명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관당 선생께서 죽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學衡64)

 

 

왕국유의 자살은 유교적 보편가치가 서구에서 창안한 근대적 보편가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전통 학이 직면한 곤혹스러운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도덕 그리고 정치와 일체화되어 있던 전통 의 파탄 위기이기도 했다. 전통 학의 본질적 기능은 천하가 공유하는 보편성을 지닌 이념을 창안하고 보편 가치와 문화적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천하를 안정적이고 영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사철로 통칭되는 전통 학은 정통 학문 그 자체였으며, 보편가치와 문화적 보편성의 구현체로서 절대적 우월성을 확보하게 된다. 왕국유의 자살로 상징되는 전통 학의 파탄은 이러한 절대적 우월성의 상실로 야기된 것이었다.

 

 

_ 전통시대 학문의 내용과 기능


 

특정 시대의 도서 분류체계는 그 시대의 지식체계를 반영한다. 전통 중국에서 도서의 분류체계를 가장 완비한 것으로 평가되는 사고전서는 경사자집(經史子集) 4부로 모든 도서-나아가 학문-를 분류하였다. 이러한 체계는 모든 학문을 경학을 중심으로 삼고, 사학(현재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을 의미)과 철학, 문학으로 분류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사학, 철학, 문학은 경학을 위해 존재하고 복무하는 말하자면 모든 학문이 경학으로 수렴되는 지식체계였다.

 

 

이러한 지식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전통 학의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에는 국가는 인간 행위의 기준을 제시해야 하며, 윤리적인 원칙(도덕)에 따라 지배하여 사회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문화주의 전통이 강하게 지속되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학은 그러한 기준과 윤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소명을 띠게 된다. 따라서 학의 본질적인 기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적(도덕적)?정치적 원리, 말하자면 일원적 이념을 만들고, 그러한 이념 하에서 모든 구성원이 통합되는, 말하자면 모든 구성원이 문화적 동질성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었다. 높은 도덕적 수양을 거쳐 도덕적 전범을 제시할 수 있는 성인(현인)에 의한 치국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법인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전통 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바로 이 점이 중국 인문학 전통의 실체이기도 하다.

 

 

_ 보편 이념(道統)의 창안과 경세학적 전통


 

중국 인문학 전통의 핵심은 도통의 강조와 경세학(經世學)적 경향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중국 문화에는 도통(道統), 학통(學統), 정통(政統)이라는 세 가지 전통이 있다고 한다. 도통이란 쉽게 풀이하자면 전 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이념이나 가치 즉 도덕이 만들어져야 하며, 그러한 도덕을 영속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천하가 공유하는 보편이념과 보편가치의 창안, 확충, 계승이 강조되는 것은 도덕적 지배를 이상으로 여기는 유교적 치국 관념의 산물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도통의 확립과 계승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였다.

 

 

유교적 치국 관념에 따르면 덕치사회(도덕국가)를 실현하는 것은 모든 지식인 엘리트의 당위적 의무였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자에 의한 관료 지배를 최선의 통치방법으로 인식하고 실천해 온 것도 이러한 관념의 결과물이었다. 덕치의 구현을 당위로 설정한 이상, 엘리트 지식인은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고도의 훈련을 거치고 고도의 창조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그 구체적인 행위가 곧 학술이었다. 학술은 도통을 만들고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정치 역시 보편이념과 보편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행위였다. 모든 학술적, 정치적 행위가 도통으로 수렴되는 가치체계 하에서 이념과 학술, 이념과 정치, 학술과 정치가 구분되지 않은 채 일체화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또한 보편가치를 만들고 구현할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을 갖춘 엘리트 지식인이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갖는 것 역시 당연했다.


 

엘리트 지식인의 권위의 원천은 자신들만이 학문적 훈련을 통해 보편가치를 만들 수 있고, 이를 구현하고 영속화시킬 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여기서 학문의 경세학적 경향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엘리트 지식인이 독점한 학문은 도덕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상, 이를 실현하기 위한 치국의 행위는 역시 당위적 의무이자 소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덕과 학문의 수양을 통해 현인으로 성장한 엘리트 지식인이 치국과 평천하의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진력하는, 다시 말해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는 행위는 학문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 엘리트 지식인의 경세는 관념적 차원에서는 도통의 수호를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현실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었던가? 필자가 보기에는 전통 지식인의 경세는 화이론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듯이 중국 중심의 보편 문화와 그 질서를 유지하는 한편 영토적 통일성은 물론이고 정치와 문화, 사회, 경제가 하나의 구조로 통합을 이루는 대일통(大一統)을 수호하는 행위였다. 현실에서는 전통의 학은 이처럼 보편문화와 중국 중심의 질서 그리고 대일통의 수호와 영속화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_ 전환의 고뇌


.현대 중국으로서는 서구적 근대의 수용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였다. 말하자면 서구적 근대/근대성은 중국이 지향해야 할 질서였으며, 새로운 문명이었다. 뿐 만 아니라 서구의 수용에 대해서는 강박적 조급증까지 더해져 서구의 근대/근대성은 당연히 추종해야 하는 우상으로 격상되기조차 했다. 이 점에서 근대성의 구현을 통한 새로운 중국의 건설이 추구해야 할 시대성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근대/근대성은 당시 구현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집약한 개념이었고, 시대성과 근대성은 등치되는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성의 추구에 대한 근?현대 중국인의 조급증과 집착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서구의 역사와 문화를 토양으로 탄생한 근대성은 그 원형대로 중국 사회에 수용될 수 없었다. 그 까닭은 중국문화의 역사성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서구의 근대성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것에 대한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오역이 수반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근대성의 중국 뿌리내리기는 일정한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체(中體)의 수호를 핵심적 가치로 삼는 역사성 강조 담론 역시 더 이상 시대성과의 조화를 배제한 채, 전통의 원형 유지에 집착할 수 없었다. 결국 근?현대 중국이 현실적으로 모색해야 할 길은 역사성과 시대성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길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현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시대성에 조응하는 전통의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전통을 창안해야 했다. 이와 동시에 서구에서 발원한 근대성을 자신들의 전통과 용해시켜 근대성의 중국적 재구성을 모색해야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_ 중국 인문전통의 단절과 연속


 

전통 학의 근대적 전환, 말하자면 근대 학문 체계 상 분과 학문의 하나인 인문학으로의 전환에서도 앞서 말한 전통의 근대적 재구성과 근대성의 중국적 재구성이라는 문명사적 난제를 비켜나갈 수 없었다. 보편가치와 문화적 보편성을 구현한/해야 하는 전통 학은 이제 서구 근대에 의해 창안된 또 다른 보편가치와 적어도 병립할 수 있는 상대화를 모색하거나, 아니면 보편가치 구현체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근대의 새로운 학문체계로 재구성되어야 했다. 후자는 정통학문으로서 절대적 우월성을 갖고 있던 전통 학이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근대적인 학문체계의 한 구성 부분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전통 학의 분과 학문화 즉 학문 그 자체를 의미했던 문사철의 인문학으로의 전환은 불가피했지만 그러한 전환을 단선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오늘 날 우리가 인문학이라 일컫는 개념은 서구 근대학문에서 발원하여 수입된 개념이다. 근대적 학문체계에서 인문학은 근대정신(modernity)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서구의 근대는 자연을 객체적인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중략) 학문 역시 과학적 체계로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자연을 객체화한 사유체계와 그에 따른 문화, 정치, 학적 체계에 대해 성찰하고 해명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근현대 중국 지식인의 의식 속에는 사회 구성원이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편 이념과 가치를 창안하는 것이 학문의 본질적 기능이라는 전통적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중국의 인문학은 자연을 객체화한 사유체계와 그에 따른 문화, 정치, 학적 체계에 대해 성찰하고 해명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한편 전통 학이 그러했듯이 새로운 시대와 중국적 상황에 맞는 보편 가치와 이념을 창안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했다.

 


.현대 지성사의 외형을 보면 5.4 신문화운동 이래 역사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전반서화론을 비롯하여 근대성의 수용을 핵심적 가치로 삼는 그리하여 시대성에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 여러 경향의 계몽사조들이 주류적 담론으로 자리 잡았고, 그것이 근?현대 지성사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문사철 전통을 높이 평가하고 그 가치에 천착한 학문적 모색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장동손(張東蓀)의 다원문화론, 양수명(梁漱溟)의 문화론, 장사교(章士釗)의 동방문화론이 그러했다. 특히 웅십력(熊十力)과 풍우란(馮友蘭), 전목(錢穆) 그리고 모종삼(牟宗三)과 당군의(唐君毅)로 이어지는 신유가 그리고 학형그룹은 서구의 철학체계를 활용하여 왕국유의 자살로 상징되는 도통의 몰락을 되돌려 새로운 도통(보편가치와 이념)을 세우려 하였다. 모종삼이 말하는 인문정신의 중건은 새로운 도통의 확립에 다름 아니었다.

 

 

* 이 글은 경제·인문사회연구에서 발행하는인문정책포럼2010년 겨울호에 실린 논문(전인갑, 2010,중국의 인문학 전통과 도통(道統),인문정책포럼7: 434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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