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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70/2016.06]연구성과 소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7 조회수 37

연구성과 소개

 

박경석, [중화민국시기 上海 小報와 매체공간의 대중화], 『중국근현대사연구』 제69집, 2016.3, 71~99쪽.


본고에서는 중화민국시기 上海 小報를 매체공간의 대중화와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小報는 淸末·民國時期에 上海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흥미 위주의 소형신문을 말한다. 小報는 근대적 사회·문화의 대전환을 배경으로 출현하였다. 그 중에서도 上海라는 대도시의 대중도시문화의 형성은 小報 생성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였다. 또한, 근대 도시가 초보적으로 형태를 갖추게 됨으로써 小報 생존의 물질적 환경이 마련되었다. 나아가 근대 도시사회와 시민문화의 변화 발전은 小報文化의 성숙을 촉진하였다. 근대문화의 市場機制가 건립됨에 따라, 小報 傳播의 통로가 제공되었고, 근대 신문의 발생과 영향은 小報를 세상에 나오게 한 직접적인 動因으로 작용했다.


1897년 6월 최초의 小報가 창간된 이래 1952년 11월 마지막 소보가 폐간될 때까지, 56년 동안 1천 종이 넘게 발행되었다고 한다. 민국시기에 소보가 크게 흥기했음을 알 수 있다. 민국 초기에 가장 먼저 유행했던 小報는 劇場과 遊戱場의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연예오락성’ 소보(‘戱報’)였다. 1920~30년대 사회 시사 뉴스의 비중을 늘린 ‘종합성’ 小報가 小報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고, 小報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밖에도 ‘黃色小報’, ‘社團小報’, ‘黨派小報’, ‘가정 상식 및 의약 소보’, ‘行業小報와 同鄕會小報’ 등이 순차적으로 유행하였다. 이후 중일전쟁으로 小報는 급격히 쇠퇴하였고, 전쟁 직후 일시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단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소보의 독자층은 매우 다양하였다. 기존 매체의 주요 독자인 관료, 지식인, 문인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원, 상점의 점원, 학생, 기녀, 부녀자 등을 망라하였다. 小報를 통해 매체의 독자가 겨우 문자를 깨우친 일반 시민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小報는 판매부수도 많고 내용에 따라 종류도 다양했고, 알기 쉬운 문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여러 계층의 독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보의 독자층이 광범위할 수 있었다. 소보의 유행으로 인해 상해 도시사회의 매체공간이 크게 확대되고 대중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보를 통해 매체공간이 확대되는 양상은 소보에 대한 인식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小報 특유의 통속성으로 인해 흥미 위주의 ‘시시한 소일거리’, ‘선정적인 음란물’, ‘황당무계하다’, ‘돈벌이 수단’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는데, 이런 통속성은 오히려 중하층의 접근을 자극함으로써 매체공간의 확장과 대중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上海 小報가 1930년대에 들어 大報에 비해 ‘정치적 부담이 적기 때문에 보다 직설적으로 통치계급을 비판할 수 있고, 소소한 일을 통해 큰 것을 보게 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갖게 되었다는 긍정적 인식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진보와 전환에 대한 小報의 자긍심과 사명감이 소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인식은 小報가 이전과 다른 차원의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소보의 새로운 진보가 부각되면서 새로운 독자층의 관심을 이끌어낼 개연성이 생겼고, 大報가 채워주지 못했던 빈 공간을 소보가 보완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매체공간이 더욱 확대될 여지가 생겨났다.


정부의 언론정책은 근현대 저널리즘의 전개와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처음으로 上海 小報에 적극 대응했던 것은 조계당국과 국민정부였다. 특히, 남경국민정부는 매우 일찍부터 ‘小報 問題’에 주목하여 小報를 규제하기 위한 일련의 법령을 적극적으로 제정하였다. 1933년 10월 小報를 사전검열하기 위한 제정한 ?取締不良小報暫行辦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집행은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한 듯하다. 무엇보다 이른바 ‘불량 소보’가 일찍이 단절된 적이 없다. 이와 같은 법규와 집행의 불일치는 역설적으로 小報라는 대중매체의 공간이 유지되는 데에 일조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형식 및 내용, 편집 방향에서 大報와 뚜렷이 구별되었던 小報는 大報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매체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켰고, 다양한 계층의 독자를 확보함으로써 매체의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이를 통해 전체적으로 매체공간을 확대시켰다. 이런 매체공간의 계층적 확대는 근대적 저널리즘의 형성, 즉 근대 이행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소보의 성립과 발전이 신문 독자층의 확대에 기여했다는 점에 주목해 볼 때, 소보를 통해 ‘매체 공간’ 또는 ‘여론 공간’의 사회 계층적 확대가 이루어졌고 여기에 역사적 역할 내지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지배엘리트의 거대담론에 대항해 중하층 사회에서 ‘국민 되기’의 주체성이 강화되는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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