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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70/2016.06]논단_철따라 흐르는 중국인들의 삶 이야기 - 중국의 세시풍속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7 조회수 43

논단_철따라 흐르는 중국인들의 삶 이야기 - 중국의 세시풍속

 

유강하 _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HK연구교수


“까치 까치 설날은.” 오랜 시간 부르고 들어왔지만, 들을수록 새록새록 예쁜 기억들이 떠오르는 노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와 더불어 덕담을 주고받으며 떡국을 먹는다. 추석이 되면, 사람들은 송편을 먹고 달을 보면서 방아를 찧고 있을 토끼의 흔적을 달 속에서 찾아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서양의 절기들이 우리의 삶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지만, 오래된 우리의 명절은 여전히 가족과 친구, 우리의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절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에도 수많은 절기들이 있다. 춘절(春節), 원소절(元宵節), 청명절(淸明節), 단오절(端午節), 중추절(仲秋節), 중양절(重陽節)과 같은 이름을 가진 절기는, 우리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 중국의 절기는 오래된 만큼이나 그에 따른 풍습과 금기도 있고, 때로 그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숨겨져 있다. 먼 신화 속의 여신으로부터 공자까지, 다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따라 흘러온 온갖 시(詩)와 이야기, 노래들은 ‘절기’라는 특별한 날 안에 숨겨져 있다.


우리 문화의 새해에 해당하는 춘절(春節)에는 가장 많고 복잡한 이야기와 금기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조왕신(王神)에게 제사하는 풍습이다. 주방과 거실이 분리되지 않은 오늘날의 아파트에서는 조왕신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지만, 부엌이 확실히 구별되었던 옛날에는 집집마다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밥을 하고, 또 다른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여인네들은 아궁이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고단함을 달랬다. 삶의 고단함, 때때로 얻는 기쁨과 즐거움, 원망과 슬픔의 이야기들이 아궁이 앞에서 흘러나왔을 것이다. 조왕신은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쌓인 이야기와 사람들의 마음은 조왕신의 입을 통해 옥황상제에게 보고되었다. 신들의 품계에 따르면 조왕신의 지위와 권세는 다른 신들에 비할 바 못되었지만, 조왕신은 사람들의 삶과 밀착된 친근한 신이었다. ‘한 집안의 주인’(一家之主)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조왕신은 새해를 맞이하기 일주일 전에 하늘로 올라가는데, 사람들은 조왕신에게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면서 그들이 잘했던 이야기만 해달라고 부탁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조왕신 옆에는 “하늘로 올라가시면 좋은 일만 말씀해 주십시오. 다시 아래로 내려오시면 축복된 일들을 보호해 주십시오”라고 쓰인 대련(對聯)을 붙여 그들의 소망을 표현했다. 어떤 사람들은 옥황상제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게 엿을 상납하기도 했다. 잘 고아진 엿은 새해를 맞이하는 노인과 아이들의 달콤한 간식이 되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액을 막고 복을 부른다는 붉은 대련을 양문 옆에 걸고, 폭죽을 터뜨리고, 밝고 붉은 등을 달아 새해를 축하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희망은 우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온 들판이 파릇해지는 봄이 되면, 사람들은 답청(踏靑)을 하러 길을 나선다. 적당히 따뜻한 볕과 생명력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한결 여유 있게 만들어준다. 분홍빛이 도는 투명한 살구꽃잎이 빗방울과 함께 떨어지는 운치 있는 청명절. 시인 두목(杜牧)은 “청명절에 비가 보슬보슬 내려, 행인의 마음을 빼앗는다. 술집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목동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킨다.”라고 노래했다. 이름까지도 청량한 ‘청명절’(淸明節)에 사람들은 답청을 하고, 부모의 묘소와 사당을 찾아 향을 사르고, 꽃놀이를 즐겼다. 산과 물이 더없이 푸르러지는 청명절은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열어주기도 했다. 중국 사대 민간전설 가운데 하나인 ‘백사전’(白蛇傳)의 주인공인 백사 낭자와 허선(許仙)도 비가 소슬히 내리는 청명절의 한 나루터에서 만났다. 청명절은 인간이 되고 싶어 천년을 수련한 백낭자와 평범한 서생 허선이 만든 러브스토리의 배경이 되어준 아름다운 절기다.


음력 5월 5일은 단오절(端午節)이다. 두 개의 ‘5’가 겹쳐 ‘중오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중국인들은 이날 전국(戰國)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을 떠올린다.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왕과 나라를 섬기고 싶었지만, 살벌한 세력 다툼 속에서 끝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던 굴원은 결국 멱라강에 몸을 던졌다. 왕이 끝내 외면했던 굴원의 마음을 알아준 사람은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강가에 몰려들어 찹쌀을 댓잎에 싸서 강가에 던졌다. 물고기들이 굴원의 살을 뜯어먹을까 걱정한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오래전 그들의 마음은 단오절의 대표음식인 ‘쫑즈’(粽子)로 남겨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중국의 길거리와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인 쫑즈에는 이처럼 오랜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국의 ‘중추절’(仲秋節)은 우리의 ‘한가위’, ‘추석’에 해당하는 절기이다. 크고 둥근 보름달을 보며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가족들의 화목을 바랐다. 달처럼 둥글게 생긴 ‘월병’(月餠)을 만들어 가족들과 둘러앉아 먹으면서 가족들의 관계가, 그들의 모든 일들이 둥글둥글 원만하게 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우리는 달 표면의 어릿한 그림자를 보면서 떡방아 찧는 토끼를 생각하지만, 옛 중국인들은 그 그림자 속에서 아름다운 선녀의 자태를 찾았다. 남편을 지상에 버려두고 혼자 달로 훨훨 날아간 여인, 항아(嫦娥)를 말이다. 사람들은 상상 속에서 항아가 살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어주었다. 달을 ‘월궁’(月宮)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인들은 봄.여름.가을.겨울, 한 계절도 예외 없이 그 계절에 어울리는 절기를 만들고, 어울리는 음식과 놀이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철따라 어김없이 돌아오는 절기에는 먹거리와 놀이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오래되어 낡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 절기에 깃든 이야기와 노래는 절기를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 이 글은 ‘2016 시민강좌: 중국인, 이렇게 산다’ 제1강의 요약문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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