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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9/2016.05] 연구성과 소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7 조회수 44

연구성과 소개

 

김판수, [국공내전 시기 개조체계와 공산당의 대중 정치 실험], 『중국근현대사연구』 69輯, 2016.03, pp.131-163


공산당 7차대회에서 마오쩌둥은 1945년 4월 24일 ‘대중을 놓아버리는’(放手群?) 노선을 제기했다. 그 결과 내전 시기 대중은 공산당의 권력 사회화 기회를 활용하며 새로운 정치사회적 구조 만들기의 주체로 변신할 수 있었다. 항일 시기 공산당은 지역-중앙, 하급조직-상급조직, 대중-간부 등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개조 기제를 내부화하려 했고, 이는 ‘위로부터 아래로, 아래로부터 위로’의 안정된 당-대중 개조체계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내전 초기 공산당은 대중을 기층에서 당 역할을 대리하고 주도하는 ‘사회적 세력’으로 조직화하기 위한 대중 정치 실험을 전개했다. 이 논문은 내전 시기 공산당의 대중 정치 실험이 왜 아래로부터 위로의 급진적 개조로 발전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정치사회적 함의는 무엇인지 탐색한 것이다.

  

항일전쟁 종료 직전 당 7차대회에서 마오쩌둥의 당내 권위가 제고됨과 동시에 ‘대중을 놓아버리는 노선’이 선언되었다. 공산당의 ‘대중을 놓아버리는 노선’은 대중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의미를 넘어, 대중이 기층에서 당을 대리하여 다양한 층위의 역할을 수행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이에 대중은 간부를 개조했고 정부를 운영했으며, 무장군사력 역할도 담당했다. 이처럼 전면 내전 발발 직전, 당.간부.대중은 아무런 경험 없이 매우 불안정한 조건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치사회적 상황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는 국공간의 총을 겨누는 내전을 넘어 촌락 내부에서 새로운 갈등을 야기했다. 대중은 내전의 향방에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가 걸려있었기에, 기층 정치사회적 개조에 누구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층 정치는 대중이 주도하게 되었고, 공산당은 지속적으로 사후 승인을 하는 위치로 물러나야만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47년 말 국공내전이 장기전에서 단기전 양상으로 급변함에 따라, 공산당은 기층 대중에게 부여한 정치권력을 회수했고 경제적 이익을 양여하는 지배자로 변신했다. 이후 농촌 대중은 생산을 담당하는 ‘농민’의 지위로 회귀되었다.

  

국공내전 시기 공산당의 대중정치 실험은 지배집단이 어떻게 권력 사회화를 통해 권력을 확장하고 더욱 공고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로 볼 수 있다. 혁명 과정에서 공산당은 ‘혁명 정당이란 어떠해야만 하는가?’, ‘혁명적 간부는 어떠해야만 하는가?’, ‘혁명적 대중이란 어떠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들을 끊임없이 던졌고, 이 물음들은 내전 시기 기층대중이 아래로부터 위로의 개조를 전개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구조를 조성했다. 그 결과 대중은 기층에서 당 중앙이 의도하는 것 이상으로 아래로부터 위로의 개조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심각한 폭력은 대중의 잘못이라기보다 오히려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과도하게 대중의 정치세력화에 의존한 결과였지만, 이는 공산당이 내전 후기 새로운 국가 만들기에 대한 ‘독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중요한 ‘구실’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당-대중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즉 혁명 과정에서 형성되고 실천된 당-대중 개조체계는 건국 이후 사회주의 시기에도 국가-사회관계의 국면에서 따라 다양한 ‘가면’을 쓴 채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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