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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9/2016.05] 기획_중국 행업신 이야기 ?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7 조회수 45

기획_중국 행업신 이야기 ?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3)

 

 

행업신 숭배 활동과 금기

박경석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지난 두 차례에 걸쳐, 행업신의 정의와 분류, 형성, 목적과 작용, 존재 양태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구체적인 숭배 활동과 금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행업신 제사와 축제


제사는 행업신을 섬기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흔하게 행해지는 숭배 활동이었다. 제사는 대개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치고 엎드려 절을 하고 축문을 읽는 등의 형식에 따라 진행된다. 이러한 행업신 제사 활동에는 대개 경축행사가 함께 열리기 마련이었고, 행업의 구성원들은 오히려 경축행사에 관심이 많았다. 후술하듯이, 일상적으로 제사(告祀)를 드릴 때에는 경축행사 없이 간단히 제사만 지냈지만, 주요한 제사에는 모처럼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즐길 수 있는 경축행사가 곁들여졌다. 행업신을 섬기는 활동 자체가 제사와 경축행사가 결합된 하나의 축제(祝祭)였던 것이다.


대개 행업신의 탄신일과 기일에 가장 성대한 축제가 거행되었다. 동업자들은 행업신의 생일을 ‘聖誕’이나 ‘瑞誕’(상서로운 탄신일), 또는 ‘祖師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사실 행업신의 생일은 대개 허구이거나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었다. 孔子의 생일이 아직까지도 쟁점이 되어 있듯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일지라도 확실한 생일을 고증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전설상의 인물은 말할 것도 없다. 동일한 업종에서 같은 행업신을 섬기더라도 지역에 따라 탄신일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행업신 탄신일 축제에서는 제사상에 제물을 바쳐놓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축문을 읽는 경건한 제사 절차가 이어진다. 이 뿐 아니라 연희를 개최해 행업신의 은혜에 보답하는 행사(演?酬神), 행업신을 맞이해 신상을 들고 나와 마을을 행진하는 행사(迎神賽會), 모두 모여 먹고 마시는 술잔치(飮宴聚會) 등도 포함한다. 이밖에 행업신 숭배의 특성에 맞게 행업의 공적 사무를 보고하고 의논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동업의 기예를 겨루는 시합을 열기도 했다.


행업신의 忌日은 말하자면 ‘돌아가신’ 날인데, ‘득도한 날(得道日)’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기일의 활동은 탄신일의 활동과 매우 유사하나 대개는 탄신일보다는 행사 규모가 덜 풍성했다. 이러한 축제는 대개 행업신의 이름을 따와 ‘某某會’라고 불렸다. 예컨대, 老君會, 魯班會, 軒轅會, 羅祖會, 窯神會, 牛王會 등이다. 이를 통칭하여 ‘祖師會’라고도 했다. 행업신 축제는 물론 행업신의 탄신일이나 기일에만 열렸던 것은 아니다. 설날(春節), 정월 대보름(原宵節), 청명절, 추석(仲秋節), 重陽節, 단오절 등 주요 절기를 맞이해서도 행업신에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였다. 또한 개업이나 行會 성립 기념일을 맞이해서도 제사를 포함한 축제를 벌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상적으로 제사를 드릴 때에는 경축행사 없이 제사만을 지냈다. 개별적으로 뜻깊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일상적으로 행업신에게 제사(告祀)를 지냈는데 이때에는 별도로 경축행사를 열지는 않았다. 예컨대, 學徒가 처음 들어와 공부를 시작할 때, 건축업에서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리는 이른바 ‘上樑’을 할 때, ?曲 藝人들이 공연을 시작할 때, 주술 의사(巫醫)가 부적을 쓰기 전, 武館을 개관할 때 등도 제사를 드렸다. 蠶業에서는 심지어 공정이 넘어갈 때마다 간단한 고사를 지냈다. 선박운송업에서 풍랑 등을 만났을 때, 채석장에서 돌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수사관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 때, 군인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할 때 등등 업무상에 어려움이 발생해도 고사를 드렸다. 반대로, 운송 선박이 무사히 항구에 도착했을 때, 도공이 도자기를 성공적으로 구워냈을 때 등등 업무상에 크고 작은 성과가 있을 때에도 제사를 드렸다. 폐업을 할 때도 제사를 드렸고, 심지어는 토비가 손을 씻고 도적질을 그만 둘 때에도 고사를 지냈다. 또한 많은 행업에서 매월 삭망이나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를 올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시도 때도 없이 행업신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이와 같이 행업신 숭배는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2. 경축행사 : 演戱酬神과 迎神賽會


演戱酬神은 행업신 숭배 활동을 구성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신령에게 복을 기원하고 신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演戱를 베푸는 것이다. 演戱를 베푼다는 것은 무료로 연극을 공연한다는 것인데, 유력한 지역에는 대규모 민간신앙 사원이나 행회의 會館·公所 근처에 ‘戱臺’라는 공연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여기에서 전통 연극을 개최하여 연희를 베풀었다. 도시나 향촌 지역 모두에서 이러한 행업신 숭배활동이 벌어졌지만, 행업신 연희는 자연히 도시지역에서 훨씬 더 성대하고 시끌벅적하였다. 아무래도 도시지역에 행업의 종류와 대규모 행회가 많고, 연희를 베풀기에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연희가 베풀어질 때에는 인근의 향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신령이 제물과 같은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오락거리도 매우 좋아한다고 여겼다. 말하자면, 신령 앞에서 연희를 베푸는 일은 신령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연희를 바침(獻戱)’이라고 하였다. 이런 ‘獻戱’라는 두 글자에는 신령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중국에는 ‘신령은 마음만 받고, 올린 제물은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있다. 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사람과 신령이 함께 즐기는 것이고, 이런 연희는 ‘제물’이라는 성격 이외에 동업 종사자들을 위한 오락이라는 기능을 수행했다.


臺에서의 演


臺에서의 演


迎神賽會는 그냥 賽會라고도 하고, 迎神廟會라고도 하는데,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민간신앙 활동과 같은 형식이었다. 즉, 儀仗(의례용 병장기), 鼓樂(악대 연주), 雜劇 등을 가지고, 행업신을 맞으러 사당을 나와 거리를 행진하는 일종의 경축 퍼레이드이다. ‘賽會’의 ‘賽’는 ‘시합하다’라는 뜻인데, 퍼레이드에 참가한 여러 행업들이 자신의 장기를 살려 더 튀어 보이려고 경쟁했던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령을 맞이하는 퍼레이드


신령을 맞이하는 퍼레이드


아무튼 이는 일종의 조직적 신령 숭배 활동인데, 그 목적은 신령의 은혜에 보답하여 복을 기원하는 데에 있다. 은혜에 보답하는 뭔가를 신령에게 바치면 다시 복을 줄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역으로 신령에 보답하지 않으면 다시는 복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집단적 두려움이 공유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민간신앙의 전통은 쉽사리 없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행업이 ‘迎神賽會’를 거행했는데, 하나의 행업이 독자적으로 거행하는 경우도 있었고, 민간의 ‘賽會’에 한 파트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행업의 賽會와 민간의 賽會는 형식적으로는 동일했으나, 행업의 경우 행업만의 특성을 갖기도 했다. 말하자면, 숭배하는 대상이 행업신이고 기원의 목적도 행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있었으며, 행업의 체계적 계통을 기반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행사는 성대하고 장중했으며 며칠이나 계속되곤 하였다. 그래서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동업 종사자들의 마음속에 행업신을 섬기는 일은 지극히 중요했고 정신적으로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한 레저(오락) 활동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도 아깝지 않았다.


4. 행업신 숭배에서의 금기


행업신을 숭배함에 있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다양한 금기가 있었다. 이는 행업신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첫째, 업무를 수행함에 여러 가지 금기가 있었다. 그림자극을 하는 사람들은 觀音을 조상신으로 섬겼는데, 관음을 소재로 연극을 할 때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을 절대 금기시했다. 예컨대, 관음이 무대에 등장하거나 무대에서 걸음을 걸을 때에는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왔다 갔다 하게 하거나 도술을 부려 싸우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다. 반드시 무대에 등장하면 자리를 잡고 앉게 했고, 우선 ‘관세음보살 나무아비타불’을 외우고 나서 우아한 운율로 대사를 읊조리게 했다.


이밖에, 도공들은 가마에 불을 피울 때 窯神을 화나게 한다고 하여 잡담이나 농담을 금기시했고, 가마를 짓는 날에는 어린아이나 임신부가 가마 있는 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칼 만드는 장인들은 歐冶子를 조상신으로 섬기는데,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처음 3일은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한 기운이 공장에 스며들어 행업신을 해치고 불길한 일이 벌어진다고 믿었다. 심마니들은 커다란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지 않았는데 그곳이 山神이나 老把頭의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가지 금기가 있었다. 二郞神을 섬기는 극단의 배우들은 남녀 간에 떳떳치 못한 관계를 맺는 것을 금기시했다. 이런 행업신의 금기를 위반하면 장사가 잘 안되고 질병을 앓게 된다고 여겼다. 대개의 상점에서는 점포 문 앞에서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거나 문틀을 손으로 짚는 일을 금기시했다. 이는 財神이나 보살을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업에서도 일상의 금기가 많았는데, 뱃머리를 제사 지내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 이곳에서 대소변을 보는 것을 엄금하였다.


셋째, 신령의 명칭과 관련된 금기도 있었다. 극단의 배우, 창기, 巫師들이 섬기는 五大仙은 사실 동물인데, 동물 이름을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엄금했고 반드시 뒤에 ‘翁’자를 붙였다. 예컨대, 족제비(黄鼠狼)는 黃大翁이라고 했고, 뱀(蛇)은 柳七翁이라고 불렀으며, 쥐(老鼠)는 灰八翁이라고 칭했다. 湖筆(붓의 일종)를 만드는 장인은 卜香蓮을 조상신으로 섬겼는데, 공장 안에서 ‘香’자가 들어가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는 卜香蓮이라는 이름에 ‘香’자가 들어 있기 때문인데, 마치 황제의 이름을 避諱하는 것과 같다.


넷째, 신령의 몸에 대한 금기도 흥미롭다. 행업신을 숭배함에 있어 神像, 神馬, 神牌와 같이 신령의 몸을 상징하는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한, 山神으로 숭배되는 쥐나 호랑이 등을 해치지 못하기도 했다. 예컨대, 北京의 전당포 업자들은 쥐를 행업신으로 섬겼기 때문에, 쥐를 잡거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을 금지했다. 동북지역의 사냥꾼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숭배했기 때문에 호랑이를 잡지 않았고,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는 일이 발생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금기는 행업신 신앙뿐만 아니라 민간신앙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지 또는 억제라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신령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축제는 성대하고 떠들썩하게 신령을 숭배하는 데에 비해, 금기는 신비주의적, 원시적 색채가 농후했다. 그럼에도 행업신 숭배에서 표현되는 금기가 숭배하는 행업신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 행업신 금기는 동업 종사자들이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는 행업신의 존재와 위엄을 경건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행업이 번다한 금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영업이 안전하고, 사회와 자연으로부터 압력을 덜 받는 행업은 금기도 그만큼 적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금기는 신령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陶業, 벌목, 심마니, 어업 등과 같이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 낸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www.52uyn.com/xinwen/15007-1.html

http://whzt.zjcnt.com/201209_twzl/8176.htm

http://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1383079

http://images.ccoo.cn/vote/20121117/2012111701165438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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