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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9/2016.05] 기획_華北 농촌 관행 조사 (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7 조회수 49

기획_華北 농촌 관행 조사 (4)

 

 

산파개혁을 통해본 중국 혁명, 그리고 국가와 향촌 권력 - 1

안병일 _ Saginaw Valley 주립대학


필자가 가르치는 학교에는 ‘동아시아 여성사’라고 번역할 수 있는 “Women in East Asia” 라는 과목이 있다. 필자는 매번 이 과목의 첫 번째 수업에서 중국에는 women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을 당황시키곤 한다. 굳이 Tani Barlow의 유명한 주장-중국에는 원래 women 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서 기혼 여성을 의미하는 婦와 미혼 여성을 의미하는 女를 합하여 婦女라는 단어를 만들었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실제 역사상에 존재했던 중국 “여성”은 어떤 집단적인 정체성을 지닌 존재라기 보다는 아내나 딸, 며느리와 시어머니, 과부 등의 형식으로 국가와 사회에 의해 규정되고 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지난 20세기 후반 중국 공산혁명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물을 때면, 필자는 과연 어떤 범주의 여성을 가리키는지 되묻곤 한다. 이는 “중국 여성”이라는 타이틀 속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다양한 경험이 종종 농촌과 도시라는 지역의 범주, 노동자나 농민이라는 직업의 범주, 그리고 아내나 딸, 며느리와 같이 가족 관계에 따라 파생되는 지위의 범주 등에 따라 어느 정도 수렴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필자는 지난 20세기 중국 농촌 사회의 변화를 설명할 때 지난 세 번의 연재에서 설명한 “생존, 혁명, 그리고 마켓”이라는 씨줄과 함께, 아내, 며느리, 시어머니, 딸, 과부, 그리고 농촌의 농민 등 여성들의 다양한 존재양식을 날줄로 하는 기본 틀을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서설이 길어진 이유는 앞으로 몇 번의 연재를 통해 중국공산당이 혁명의 과제 중 하나로 “부녀해방”을 내세웠지만, 그러한 과제가 실제로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과연 , 나아가 아내, 딸, 시어머니, 며느리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여성들의 복잡하면서도 자칫 충돌할 수 있는 이익을 어떻게 조정하고 일치시켜 나가는가를 살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여성들의 이익을, 다수의 농민 남성을 포함한 “인민 대중”의 이익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는지가 공산혁명과정에서 공산당이 경험한 가장 치열한 딜레마 중의 하나였다. 필자는 마치 3차 방정식과도 같이 복잡한 이러한 과제를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처리하고 또 실패했는지,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여성과 남성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 받았는지, 다시 한번 “생존, 혁명, 그리고 마켓” 이라는 도식과 연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그 소재가 산파술이다. 특히 출산을 보조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20세기 중반 이전을 중심으로 보자면, 그 핵심은 역시 생존의 문제였다. 전통시대 중국에도 물론 산파를 직업으로 하는 여성이 존재했고, 또 의학서적에도 출산을 포함한 부과(婦科) 존재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농촌 마을에서 그러한 전문적인 도움은 존재하지 않았고, 출산은 대부분의 농촌 여성과 그녀의 아이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실제, 1936년에 보고된 하북 정현(定縣)지역의 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15%가 출산과정이나 그 직후 사망했고, 약 25%의 영아들이 첫 번째 생일을 맞지 못했다. 필자가 현지조사를 진행한 하북 지역의 촌락 A에는 50년대 이전까지 아이들이 죽으면 버리는 곳이 따로 있을 정도로 영아사망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A촌의 피면담자


그러나 산모와 영아의 사망률이 높았다고 해서 가족들 입장에서는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 지식들이 동원되었다. 하북의 A촌은 산모가 출산 후 자리에 앉아있게 함으로써 오염된 혈액을 최대한 빼도록 했고, 산서의 C촌에서는 가족들이 옆 마을에 있는 사당에 까지 가서 神像에 기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출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출산 보조 즉 “산파”라는, 마을마다 거의 비공식적으로 정해진 “숙련된” 여성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물론 시어머니가 가족의 중요한 행사인 출산을 전반적으로 감독하기는 했지만 그 역할은 물을 끓인다거나 그런 숙련된 여성을 모셔오는 역할에 제한된 경우가 많았다. 


필자가 인터뷰과정에서 누가 그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일반적인 대답은 대체로 마을 아주머니들의 동의에 의해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주로 그러한 역할을 했던 여성의 자녀들의 말에 의하면, 그 조건은 똑똑하고(脑子好), 수완이 좋거나 일 처리를 잘해야 하며(能干), 그리고 대범 (肚子大)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하북의 B촌이나 산서의 C촌의 사람들은 정확히 그들을 그러한 조건에 맞는 “여장부”들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B촌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아이가 거꾸로 나와서 산모와 아이가 둘 다 죽게 된 경우 낫으로 아이의 팔을 잘라서라도 산모를 살려야 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산서 C촌에서 그러한 일을 맡았던 한 할머니의 딸은 자신의 어머니가 예전에 그 일을 맡던 할머니가 돌아가실 즈음이 되자 주변 분들의 권유로 30대 후반에 비공식 산파일을 맡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C촌의 奶奶(삼신 할머니) 사당


필자의 논문 심사위원이었고 만주지역에서 필드웍을 한 바 있었던 인류학자Yan Yunxiang의 기억에 의하면, 그런 할머니들은 대개 부녀들 사이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들로 종종 중매를 부탁 받는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하북의 B촌이나 산서의 C촌의 할머니들의 경우는 매파의 역할까지 맡지는 않았지만, 매우 신망 받는 위치에 있었다고 그들의 가족들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부녀들의 진술에 의하면 꼭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산파들은 마을의 대소사에 일종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 할머니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젊은 사람아 생각해 보게나. 우리가 애를 낳을 때 그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데 당연히 보통 때에도 그 분 말씀을 잘 듣지 않았겠나.”


이렇게 필자가 부락의 “비공식” 산파들을 통해 확인한 것은 바로 여성들 사이에 통용되는 비공식적인 부락의 권력체계였다. 공식적으로는 마을에 촌장이나 남성 어르신들이 있겠지만, 그들의 집에서도 아이를 낳아야 했고, 이러한 산파들은 특히 임신중인 여성들과 그들의 시어머니, 나아가는 남편들로부터 중요한 권력을 지원받았던 것이다. 실제 그들은 아이들이 출생할 때나 생일에 선물이나 혹은 특별한 음식을 대접받았고, 가임기 여성들 사이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마을의 구성원들이 비공식 산파들에게 권력을 부여했던 것은 바로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산모 스스로의 목숨이 걸린 일에 조금이라도 경험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심리가 평상시에도 그들의 권위가 작동하게 하는 기제가 되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는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혁명”과 “부녀해방”이라는 대의에 따라 이러한 일상적 권력관계에 도전하고 또 이용했는지를 그들의 산파개혁 과정을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참고 문헌

C.C.Chen. “The Rural Public Health Experiment in Ting Hsien, China", The Milbank Memorial Foundation, Quarterly 14, no.1 (1936): 66-80

Ahn, Buyngil. “Modernization, Revolution, and Midwifery Reforms in Twentieth-century China.” PhD diss.,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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