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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7/2016.03]자료와 정보_實“史”求是 - 자료의 발굴과 중국연구 (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2 조회수 32

자료와 정보_實“史”求是 - 자료의 발굴과 중국연구 (3)


國史館 소장 中日戰爭 時期 情報戰档案 및 臺灣의 연구 현황

우수펑(吳淑鳳) 씀 _ 臺灣國史館

김지환 요약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20세기는 가히 전쟁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차례에 걸쳐 발발한 세계대전과 냉전에서 승부를 가른 것은 단지 전장에서의 승패뿐만 아니라 적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정보전에서의 능력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면전장에서의 승패뿐만 아니라 정보전을 수행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에는 정보전과 관련된 당안자료를 살펴보는 일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중일전쟁 시기에 정보전에 종사한 사람들의 활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당사자들의 회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정보전과 관련된 당안자료의 봉인이 해제되어 공개된 것을 계기로 이차대전 시기의 정보전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의 전시 당안자료의 공개에 힘입어  중일전쟁 시기 정보전과 관련된 연구가 한층 심도있게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연구의 관점과 해석도 변화를 일대 전기를 맞게 되었다.


국사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일전쟁 시기 정보전과 관련된 당안 문건은 『蔣中正總統文物』과 『戴笠史料』에 다수 수록되어 있다. 『蔣中正總統文物』은 2003년부터 디지털화가 시작되어 검색 기능을 마련함으로써 본 사료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속하게 필요한 목록을 검색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결과 학자들이 본 사료를 매우 폭넓게 이용하면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어렴풋이나마 ‘蔣學’이라는 학문 분야가 새롭게 부각되게 되었다.


『戴笠史料』는 1932년부터 1946년 비행기사고로 사망했을 당시까지의 친필 명령을 수록한 것인데, 대부분의 내용이 중일전쟁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사료는 원래 軍情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軍統局의 문건 가운데 戴笠의 수필 문건이나 지시와 관련된 부분을 찾아 내어 독립적인 사료본으로 편집하여 완성한 것이다. 원래 내부적으로는 ‘戴公遺墨’이라 불리었으나 국사관의 디지털화 작업 이후 『戴笠史料』라 명명되었다. 『戴笠史料』의 성격은 『蔣中正總統文物』의 「籌筆」과 유사하며, 내용이 대부분 지시나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戴笠이 상부로부터 전달받은 지시가 주요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까닭에 보고와 지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籌筆」이 장개석 한 사람의 단독 지시인 것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첨부되지 않은 문건이나 사안 담당자의 회답 등 필요한 자료를 찾아 사건의 전후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국사관은 당안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전과 관련된 중요한 당안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주로 1)동남아시아에서 軍統局이 전개한 정보공작, 2)전시 중국과 연맹 정보기관 사이의 합작과 관련된 내용, 3)국내의 군정 정세와 관련된 관찰 보고, 4)또 하나의 전장- 경제전 등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밖에 『戴笠史料』를 연구에 활용할 경우 이 것이 가지는 한계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일 과제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서는 내용 구성이 불충분한 실정이므로, 광범위하게 관련 사료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본래 정보공작은 기밀에 속하는 사안인 까닭에 집행 항목이나 대상을 암호로 명명했을 가능성이 크며, 담당자 역시 가명으로 기재되었거나 심지어 기관 역시 암호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안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담당자의 회고는 단지 정보공작의 결과만을 알려줄 수 있을 뿐 실시과정에 대한 내용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신뢰도 높은 구술역사를 통해 그 내용을 보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구술 내용의 진위에 대한 고증작업도 필요하다. 넷째, 예하기관과 책임자 사이에 오고간 전보를 통해서는 친소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다섯째, 정보를 흘리는 행위가 경우에 따라서는 적을 기만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일 모든 사안을 정보 분석에만 의지할 경우 오류를 초래할 우려가 있으며, 적을 기만하기 위한 정보작전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본 주제와 관련하여 대만에서 나온 대표적인 연구성과로는 吳淑鳳等編,『不可忽視的戰場--抗戰時期的軍統局』(台北:國史館,2013年6月)을 들 수 있다. 이밖에 본 주제와 관련하여 몇 편의 석사학위 논문과 학술논문이 발표되었다. 석사학위 논문으로는 戴子翔,「戴笠與抗戰時期交警制度之研究(1937-1946)」(國立中央大學歷史研究所碩士論文,2014年)와 溫民焄,「抗戰期間中國在越南的情報組織與工作」(國立䑓南國際大學歷史研究所碩士論文,2014年), 林和震,「以‘軍統局’的興衰衰例說明國民黨大陸失敗的內因」(中國文化大學政治學研究所碩士論文,2013年), 鄒文穎,「特工的歷史形象─以1949年以後臺海兩岸的戴笠書寫爲中心」(國立臺灣師範大學歷史學系在職進修碩士論文,2011年), 徐吉村,「地下戰場:戰時重慶國民政府與汪政權的暗鬪」(國立政治大學歷史研究所碩士論文,2005年) 등을 들 수 있다.


학술논문으로는 范育誠,「抗戰時期的秘密通訊系統:以國防部軍事情報局档案為中心」,『政大史粹』28期(2015年6月)을 비롯하여 趙映林,「歷史的誤讀--一個真實的中美合作所」,『傳記文學』105-5(2014年11月),劉惠璇,「戴笠與中央警校之「特警班」(1937-1947)」,『警專學報』5-5(2013年4月), 范育誠,「戴笠在盧溝橋事件中的情報角色」,『新北大史學』12(2012年10月) 등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사료의 개방은 새로운 주제 연구의 진전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주게 된다. 이러한 사료를 통해 산출된 연구 성과는 새로운 역사의 해석을 가능하게 해 주거나, 혹은 과거 연구에서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재 대만에서 산출된 연구 성과는 중일전쟁 시기 중국 정보전 연구의 시작일 뿐이며, 보다 많은 연구자의 관심과 실제 연구가 절실한 실정이다. 더욱이 각국이 소장하고 있는 당안자료의 적극적인 활용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필요성이 실현된다면 중일전쟁 시기 정보전 연구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s://tw.images.search.yahoo.com/search/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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