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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7/2016.03] 논단_體制와 機制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2 조회수 40

논단_體制와 機制


박승준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중어중국학과

  

체제(體制ㆍtizhi)와 기제(機制ㆍjizhi). 용어의 내포와 외연이 서로 다른 말이다. 체제는 우리 말 속에 유입된 지 오래 된 단어이지만, 기제란 1992년 한ㆍ중 수교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 학술 교류가 늘어나면서 최근 들어 우리 말 속에 유입되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그 뜻이 정확히 인식되지 않고 대체로 체제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중국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 따르면, 체제란 ‘정치체제’, ‘경제체제’, ‘영도(領導)체제’등에서 사용된 것처럼 일정한 규칙이나 형식을 갖춘 제도를 가리키는 말로, 영어로는 ‘system of organization’으로 번역된다. 기제란 ‘광합성(光合成)기제’, ‘시장기제(市長機制)’, ‘관리기제’ 등에서 사용된 것처럼 생물과 같은 유기적(有機的)인 조직의 작동 구조와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원래 생물학 용어였다가 정치학, 사회학에 전용되어 쓰이게 된 용어다. 영어로는 ‘mechanism’으로 번역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월 17일 베이징(北京) 외교부 청사에서 줄리 비숍 호주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정화기제(停和機制)’라는 용어를 구사했다. “난국에 빠진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은 각 관련국들과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정화 기제 전환을 병행해서 추진하는 방안을 토의하고자 한다.…” ‘정화(停和)’란 사전에도 없는 용어다. 왕이가 말한 정화기제가 과연 무슨 말인지, 같은 날 있었던 외교부 뉴스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훙레이(洪磊) 대변인에게 질문을 했다.

  

“왕이는 오늘 한반도 비핵화와 정화기제 전환을 병행해서 추진한다고 말했다는데 정화기제 전환이란 현재의 한반도 정전(停戰)기제를 평화기제로 전환한다는 말이냐. 중국은 이 방안을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추진할 생각인가?”

  

훙레이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알기에 당신의 이해는 정확한 것 같다. 왕이 부장이 제시한 것처럼 중국은 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정화기제로의 전환을 병행해서 추진하는 담판을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반도의 정전기제를 평화기제로 전환하는 방안은 동북아에 장치구안(長治久安)을 실현하는 전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 방안은 각 관련 당사국의 주요 관심사를 균형 있게 해결해서 대화와 담판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명확하게 해줄 것이며, 조속히 담판을 회복하는 돌파구를 찾아줄 것이다. 우리는 이 방안이 반도의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6자회담 관련 당사국들과 이 방안 실현을 위해 밀접한 의사소통을 하기를 희망한다.”

  

좀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 왕이가 줄리 비숍 호주 외교부 장관에게 한 말을 더 들어보자.

  

“현재의 세계에서는 어떤 뜨거운 문제도 압력과 제재를 통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며, 군사적인 수단은 더욱 취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엄중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정부는 그동안 시종 정치적 수단으로 뜨거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해왔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유엔헌장의 평화적 해결 규정에 부합되며, 관련 당사국들과 국제사회의 공동이익에도 부합한다. 최근 일부에서 이란 핵문제와 한반도 핵문제를 즐겨 비교하는데, 이란 핵문제의 해결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10년간 담판을 해온 결과 마침내 전면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반도의 핵문제는 6자 회담이 이미 8년간 중단되어온 데다가, 현재는 우리가 보기를 원하지 않는 국면에 도달해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안보리 결의를 추진하는 동시에 회담을 회복하는 문제를 병행 고려하게 된 것이다.”

  

왕이는 이런 말도 했다. 

  

“조선(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위성을 발사해서 잇달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은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안보리는 현재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고 새로운 결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새로운 결의는 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길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관련 당사자들이 담판을 회복하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며, 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반도의 핵문제의 응어리가 중국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중국은 6자회담의 주도국으로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문제 해결이 가능한 길을 찾아왔다. 이를 위해 반도의 비핵화와 정화기제 전환을 병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 정전체제’,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말을 사용해왔다. 우리가 말하는 한반도 정전체제와 평화체제가 다소 정태적(靜態的ㆍstatic)인 개념의 용어라면, 정전기제와 평화기제는 동태적(動態的ㆍdynamic)인 개념의 용어인 것이다. 왕이가 제의한 한반도 정전기제의 평화기제로의 전환은 그동안 북한이 자주 제기하던 개념이다. 왕이의 말은 이미 6자회담 탈퇴를 선언한 북한을 다시 6자회담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북한이 선호하는 한반도 정전기제의 평화기제 전환 협상을 한반도 비핵화 논의와 함께 추진하자는 제의인 것이다.

  

왕이의 제의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와 THAAD 배치를 강력하게 추진하자, 북한을 하루 빨리 6자회담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북한이 선호하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을 6자회담 석상에서 논의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왕이의 제안은 미국에도 이미 설명을 한 듯, 미국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왕이의 제안은 북한을 6자회담으로 다시 끌어들여 한반도 정전기제의 평화기제 전환을 논의한다면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도 보인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www.dzwww.com/xinwen/guojixinwen/201602/t20160217_1384908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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