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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6/2016.02] 연구성과 소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0 조회수 38

연구성과 소개



이정희, <Research on Business Networks of Overseas Chinese Textile Importers in Colonial Korea>, 《Translocal Chinese: East Asian Perspectives (TCEA), 海外華人研究》 9-1, 2014.12, pp. 13-41.



조선 식민지 시기 화교 직물상의 통상네트워크


이 논문은 대만의 화교 학술지인 “해외화인연구”9-1호에 중국어로 게재된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출판사인 BRILL에 의해 출판되었다. “해외화인연구”9-1호는 ‘트랜스로컬 중국인: 동아시아의 관점(TCEA)’이라는 제목의 특집호로 전세계 화교 전문가 8인의 논문이 중국어와 영어로 게재되어 있다.


이 논문은 화교 직물상이 식민지 시기 일본인 직물상 및 조선인 직물상을 압박하는 세력을 형성한 원인에 대해 서울 및 인천 소재의 화교 직물 수입상이 면직물, 견직물, 마직물 등의 직물을 어떠한 통상네트워크를 통해 대량으로 수입했는지 검토한 것이다.


조선의 직물 소비 총액 가운데 면직물의 수입의존율은 1923년에 75%, 마직물의 수입의존율은 38%, 견직물의 수입의존율은 68%에 달했다. 일본의 대기업 방적 자본이 조선에 진출하여 직물 생산이 증가한 1936년에도 조선의 직물 소비총량 가운데 수입의존율은 면직물이 58%, 마직물이 37%, 견직물이 60%로 여전히 높았다.


기존의 연구는 조선 개항기 직물 수입을 둘러싸고 일본인 상인과 화교 상인 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식민지 시기의 직물 수입은 거의 일본인 상인에 의해 독점적으로 수입되었다고 간주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이 논문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화교 직물상이 중국, 일본으로부터 직물 수입을 활발히 전개하여 일본인 상인과 조선인 상인을 압박하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밝혀내려고 했다.


제1장에서는 화교 직물 수입상은 개항기 상해에서 영국산 면직물을 독점적으로 수입하여 일본인 직물 수입상을 압도했지만, 점차적으로 일본 면직물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면사, 면포의 수입은 일본인 직물 수입상의 손으로 넘어 갔다. 그러나 면포 가운데 최고 품질을 자랑하던 영국산 쇠금건(晒金巾)은 1920년대까지 화교 수입상에 의해 독점적으로 수입되었다. 또한 화교 수입 직물상은 일본산 면직물을 오사카의 일본 화상을 통해 수입했다.


제2장에서는 화교 직물 수입상이 중국산 견직물을 1920년대 초반까지 거의 독점적으로 수입한 것을 검토했다. 중국산 견직물 수입은 개항기 때부터 시작되어 1912-1924년에는 연평균 324만 엔에 달해 중국에서 수입하는 주요한 상품의 하나였다. 화교 수입 직물상은 상해에 직원을 파견하거나 현지 화상을 통해 독점적으로 견직물을 수입했다. 일본 정부가 중국산 견직물의 대량 수입을 막고 일본산 견직물의 대 조선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1924년 시행한 100%의 사치세 부과로 인해 중국산 견직물은 조선의 시장에서 구축되었다. 하지만 화교 직물 수입상은 일본의 견직물 생산지와 직접 거래를 하거나 오사카의 화상을 경유하여 일본산 견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제3장에서는 화교 직물 수입상이 개항기 때부터 중일전쟁 이전까지 중국산 마직물을 대량 수입하게 된 배경과 현황을 분석했다. 화교 직물 수입상은 중국산 마직물을 1912-1928년에 연평균 426만 엔을 수입했으며 1930년대에도 200-300만 엔의 수입을 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품 가운데 단일 품목으로는 최대의 수입상품이었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대량으로 중국산 마직물이 수입된 이유는 조선산 마직물의 낮은 경쟁력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과 일부 고급 마직물을 제외하고는 품질이 중국산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면직물과 견직물과 달리 마직물은 일본에서 별로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산 마직물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산 마직물은 중국산 견직물, 영국산 고급 면직물과 마찬가지로 상해에 파견한 직원과 현지 거래 화상과 계약을 맺어 수입했다.


제4장에서는 대표적인 화교 직물 수입상인 서태호, 영래성, 유풍덕을 사례로 들어 이들이 면직물, 견직물, 마직물을 어떻게 수입하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영래성과 유풍덕은 오사카의 개항장인 가와구치의 행잔에 오사카 지점을 설치하여 일본산 직물을 구매하여 조선으로 수출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본점은 산동성의 옌타이에 있었다. 조선의 직물 수입상은 옌타이의 화상 상업자본에 의해 설립된 지점이었다. 본점은 조선의 서울, 인천 그리고 중국의 상해, 일본의 오사카에 통상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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