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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6/2016.02] 연구성과 소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0 조회수 44

연구성과 소개



김판수, [중국 개조론(改造論)과 낡은 지배구조의 지속에 대한 저항(1915-1929): 공산당 내부의 개조 각축을 중심으로], 『中央史論』 42輯, 2015.12.


이 논문은 20세기 초 발생한 중국 개조론의 맥락에서, 공산당이 창당 이후 왜 당 외부와의 갈등 보다 오히려 당 내부에서 더욱 심각한 갈등을 겪어야 했는지, 나아가 1929년까지 전개된 당내 각축이 어떻게 공산당이 지향해야 할 혁명을 ‘낡은 지배구조의 지속에 대한 저항’으로 이끌었는지 분석한다.

  

중국 개조론 연구는 오늘날 중국 내 연구자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이다. 이를 몇 가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개조론 연구는 주로 신문화운동 시기 러시아혁명과 5·4운동의 영향으로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된 아래로부터의 사회변혁을 통한 새로운 국가 만들기 담론 및 그 사회문화적 효과를 다루는 것과 관련이 있다. 둘째, 혁명 시기 공산당의 사회개조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때 개조론은 공산당의 혁명 과정에 대한 동원론 및 사회경제적 개혁론 등의 시각이 다루고 있는 감조감식(减租减息), 기층 민주선거, 대중 조직화, 사회문화적 선전 및 교육, 나아가 건달 또는 한량에 대한 개조(二流子改造) 문제 등에 한정된다. 셋째,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후 공산당이 사회를 혼란스러운 공간으로 규정하고 이를 질서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다룬 것으로, 주로 위로부터의 관리 또는 통제 기제를 통해 사람과 조직 등에 대한 포섭/배제 및 전통적 관습과 기존 제도 등에 대한 개혁/제거 등과 관련이 있다. 넷째, 건국 이후의 ‘사상개조’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다섯째, 일부 지식인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회진화론의 영향으로 등장했던 ‘열등한 중국 국민성 담론’을 루쉰의 “국민성개조” 개념과 연결시켜 이를 중국 개조론의 중요한 갈래로 규정하는데, 이는 오늘날 당-국가가 주체가 되어 인민의 사회문화적 소양(素質)을 제고함으로써 문명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담론과 무관하지 않다.

  

요약하면, 중국 내 개조론 연구자들은 1919년 5·4운동 이후 지식인들의 사회변혁 담론에 불과했던 개조론이 왜 공산당의 혁명 담론으로 전환되었는지, 어떻게 당내 갈등을 유발하는 기제가 되었는지, 그 것이 당을 혁명 정당으로 성장시키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간과하고 있다. 이는 1949년 건국 이후 형성된 당-국가 및 그에 의해 구성된 공식 역사 담론이 건국 이전 시기 ‘당의 역사’ 해석을 직간접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당시 중공 내부의 갈등에 대한 분석은 회고적 접근(retrospective approach)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찾고 그 개조에 고심하던 일종의 ‘청년기’라는 시각으로부터 전망적 접근(prospective approach)을 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공식 역사를 수정·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행착오의 역사적 궤도’ 자체를 다시 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20세기 초 중국의 개조론은 사회진화론에 영향받은 지식인들이 청년 또는 대중을 가리키며 ‘나라 살리기’에 참여하라고 다그치는 담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 및 1919년 5·4운동을 계기로 지식인들은 대중을 중요한 정치사회적 역량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중 다소 급진적이었던 부류는 대중을 중요한 정치적 주체 또는 동반자로 여기기도 했다. 그 결과 중국에서 개조는 일본과 달리 아래로부터의 사회변혁적 실천의 의미로 변화되었다. 이처럼, 5·4운동 이후 중국 개조론은 점차 중국 내 정치적 소수자 집단이 ‘새로운 국가 만들기’ 또는 ‘혁명’ 등을 꿈꾸며 지배집단(또는 집단 내 다수자 포함)에 대한 적대와 비판 등을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변화되어갔다.

  

공산당은 국공합작 과정에서 장제스의 독재와 대중정치 억압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해 스스로를 개조 세력으로 부각시켰다. 나아가 혁명 시기 공산당 지도자들은 위계적 조직화 및 대중동원 방식이 위기를 가중시킬 때 개조론을 통해 대안적인 조직화 및 대중정치를 탐색·실천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국공합작 파국 이후 공산당 일부 지도자들은 당 중앙의 위계적 조직화 및 엘리트적 사상 견지 등을 ‘반혁명적’이라고 지적하며, 당 지도부가 아래로부터의 개조를 수용해야만 ‘혁명적’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개조론은 공산당이 ‘낡은 세력’으로 퇴락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혁명 세력’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중국 개조론은 공산당이 일본 천황제 및 소련 당치 모델과 구별되는 중국특색의 정치사회적 관계 만들기를 추동했고, 또 ‘낡은 지배구조의 지속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정당화하는 실천적 담론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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