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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6/2016.02] 기획_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10 조회수 206

기획_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2)



설음식으로 보는 한국 화교의 설문화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가끔 “중국에도 설날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중국에서는 설을 춘제(春節) 혹은 궈녠(過年)이라고 한다. 한국 화교사회에서는 궈녠이 다가오면, 한국의 설과 마찬가지로 제사상 준비하랴, 명절음식 준비하랴 분주해진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라서 지역마다의 풍습이 다르다. 어느 지역은 우리의 가래떡과 같은 녠가오(年糕)를 먹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지역은 찹쌀가루 등을 새알 모양으로 소를 넣어 빚은 탕위안(湯圓)을 먹고, 어느 지역은 중국의 만두격인 자오쯔(餃子)를 먹기도 한다.


녠가오(年糕)탕위안(湯圓)자오쯔(餃子)


중국에서는 음력 12월 30일, 한해의 마지막 날이 가장 분주하다. 이 날을 추시(除夕) 혹은 싼스얼(三十儿)이라고 하는데, 제사상을 비롯한 모든 음식은 이 날 자정까지 반드시 마치어야 한다. 한국과 달리 자정에 온가족이 모여 제사를 올리고 명절음식을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때 온가족이 모여서 먹는 음식을 녠예판(年夜飯) 혹은 퇀위안판(團圓飯)이라고 한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집 안의 모든 불을 밝히고 밤을 지킨다는 뜻의 서우예(守夜)가 시작된다. 서우예의 풍경은 설날 아침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며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놀이판이 열리고 때론 소소한 도박(마작)도 하면서 밤을 지킨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볜파오(鞭炮, 폭죽)을 터뜨린다. 이러한 일련의 의식들이 현재 중국의 보편적인 설풍경이다.

  

한국 화교의 설문화는 중국 자오둥반도(膠東半島) 지역의 설문화와 매우 닮아 있다. 또 대만의 설문화와도 비슷하다. 이는 냉전시대 이념대립의 시기 한국 화교는 대만의 해외동포로서 즉, 재한화교(在韓華僑)의 신분을 취득하고 중국 국민당(國民黨)이 집권하는 대만을 조국으로 인식하는 이데올로기적 사고가 가져온 결과이다. 대만의 반공(反共)교육은 한국 화교의 전통적인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고, 여기에 한국이라는 커다란 문화적 울타리의 영향이 더해져 한국 화교의 정체성은 ‘모호한’ 면을 띄게 된다.


자오둥반도 지역은 제노문화(齊魯文化)에 속한다. 때문에 한국의 화교사회의 설문화에는 제노문화만의 독특한 설날 의식과 금기(禁忌)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화교 1세대가 가지고 있었던 제노문화의 설 풍습을 회상해보고자 한다. 추시(싼스얼), 설 전날에는 ‘신을 모시다’의 의미의 ‘청신(請神)’을 한다. 귀신(貴神), 희신(喜神), 재신(財神)들을 모시는데 해가 떨어지면 잡귀(雜鬼)와 악귀(惡鬼)까지 같이 온다는 속설이 있어 이 날은 반드시 해가 떨어지기 전에 큰댁에 도착해야한다. 이 의식은 대문 앞쪽 바닥에 원을 그리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원을 그릴 때는 반드시 입구를 그려놓아야 하고 황뱌오즈(黃表紙)와 향(香)을 그 안에서 태운다. 황뱌오즈는 ‘금(金)’을 상징하고 향은 ‘기리다’를 의미한다. 청한 신들은 설날 다음 날에 혹은 그 다음 날 새벽에 보낸다. 이 의식을 송신(送神)이라고 하는데, 대문이 아닌 현관에 막 삶아낸 자오쯔(만두)를 젓가락과 함께 둔다.


황뱌오즈(黃表紙)향(香)


한편, 해가 지기 시작하면 조신(灶神, 부엌신), 재신(財神, 재물신), 천지신(天地神, 천지신명)등을 모신다.


조신(?神)재신(財神)천지신(天地神)


이 때 사용되는 것은 제노문화만이 가지고 있는 만터우(饅頭)이다. 보보(鋍鋍)라고도 하는 만터우는 대추를 꽂아서 찌기도 한다. 대추 ‘오래동안’을 상징하는 숫자 9에 맞춰 아홉 개를 꽂는다.


만터우 饅頭 (보보 鋍鋍)


조신을 비롯한 신들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음력 12월 24일까지 모셨다가 보낸다. 이제 자정이 다가 오면 중국의 만두격인 자오쯔를 싸고 끓이기 바쁘다. 일부 자오쯔 속에 동전, 대추, 밥, 땅콩, 사탕 등을 넣는다. 자오쯔의 모양은 중국의 전통금괴 모양을 닮아야 한다.


전통금괴 모양을 닮도록 빚은 쟈오즈중국 전통금괴 金元寶


자정이 되고 만터우가 제사상에 올라가 자리를 잡으면, 여자들은 제외하고 남자들만 차례대로 조상님께 절을 한다. 이제 설 명절에서 가장 시끌벅적할 때다. 녠예판(퇀위안판)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배를 한다. 세배는 매우 단순하고 쉽다. 한국과 같이 큰절은 하지 않는다. 두 손을 공경하게 모아 허리를 숙이면서 여자한테는 “궈녠하오(過年好)”, 남자한테는 “궈녠파차이(過年發財)” 혹은 “꽁시파차이(恭喜發財)”라고 하면 홍바오(紅包)를 준다. 홍바오는 붉은색 봉투를 말한다. 세뱃돈을 중국어로 야쑤이첸(壓歲錢)이라고 하는데 중국과 마찬가지로 화교사회에서도 세뱃돈을 홍바오에 넣어서 준다. 운이 좋으면 자오쯔를 먹을 때 홍바오를 또 받을 수 있다. 동전을 넣은 자오쯔를 먹게 되면 한해 부자가 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더불어 집안에서 가장 높으신 어르신으로부터 홍바오를 받는다. 대추는 운수를, 밥은 순조로움을, 땅콩은 장수를, 사탕은 다정함을 상징한다. 중국의 해음(諧音)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의식이다.


마작(麻將)판이나 주사위 놀이가 시작된다. 마치 한국 설날에 화투와 윳놀이를 할 때와 같은 분위기다. 마작은 네 명에서 하는 것으로 주로 어른들이 하고, 주사위 놀이는 다함께 할 수 있는 놀이라서 남녀노소가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마작(麻將)주사위 놀이(色子)


이 날은 집안의 모든 불을 밝히고 밤을 새야한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옛적에 ‘녠(年)’이라는 귀신 있었는데, 추시(싼스얼) 밤에 돌아다니면서 자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고 한다. 녠한테 당한 아이들은 죽거나 큰 병을 앓고 또는 기억을 상실한다고 한다. 이러한 녠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녠이 싫어한다는 불빛을 밝히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녠의 접근을 막는 동시에 자고 있는 아이들 베개 밑에 세뱃돈 넣어 깊게 잠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야쑤이첸(壓歲錢)을 발음으로만 봤을 때 잠을 누르는 돈 즉, 잠을 이겨내는 돈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밤을 새고 난 뒤 해가 뜨면 어딘가에 숨어 있는 녠을 멀리 내쫓기 위해 볜파오를 터뜨린다고 한다.

  

금기시 되는 것들도 상당히 많다. 우선 폄의적인 의미의 단어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자오쯔가 터졌을 때 터졌다고 해서는 안 되고 ‘돈을 벌다’의 의미를 갖는 ‘쟁(掙)’자를 사용하여 “자오쯔가 돈을 벌렸네!”라고 의미부여를 해야 한다. 그릇이나 접시를 깨뜨렸을 경우에도 “세세평안(歲歲平安)! 세세평안(歲歲平安)!” 두 번을 외쳐야 한다고 한다. 중국어의 ‘깨지다’의 의미인 碎(쇄)자와 歲(세)의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우물을 길어서는 안 된다. 용왕(龍王)이 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면 안 된다. 먼지가 일어나 조상님이 길을 찾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송신, 신을 보내기 전에 가족이 아닌 사람과 밤을 보내선 안 된다. 조상신께서 낯선 얼굴의 사람을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출가외인은 송신하기 전에 집 근처에도 와서는 안 된다. 친정이 한 평생 가난하게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억 속에 있는 한국 화교 1세대의 설 풍경을 살펴보았다. 시대 변화에 따라 이러한 의식과 금기는 점차 그 비중을 잃게 된다. 물론 이는 인류 보편적 현상으로 현재의 가치와 과거의 가치가 충동하여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기존의 가치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는 일종의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침전물(沈澱物)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시간이 흐른다 해도, 시대가 변한다 해도 변치 않는 가치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비록 많은 의식과 금기들이 한국의 화교 사회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음력 1월 1일에 효(孝)를 행하고 조상을 기리며 음식을 통해 가족의 화목과 한 해를 기원하는 이러한 의식은 마치 오래토록 쌓인 침전물과 같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모두 http://image.baidu.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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