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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2010.12] 논단 _ ‘중국모델’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관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2 조회수 54

[Vol.4/2010.12] 논단 _ ‘중국모델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관행

박경석 _ 인천대학교 HK교수

 

근래 부상하는 중국은 전 세계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 대한 관심은 여러 차원으로 볼 수 있지만, 결국 중국의 양적 성장이 어디까지 이어져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관한 것과, 내부의 질적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특히, 30년 넘게 지속된 놀라운 고도성장 = 양적 성장이 사회주의체제의 유지, 즉 내부의 질적인 변화 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시장 개혁이나 통치시스템의 변화에 있어서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국가와는 다른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 간에 활발한 논의가 촉발되었는데, 이른바 ‘중국식 발전 모델 = 중국모델’의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관련,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보이는 정치경제적 특징들이 과연 중국 특유의 길이냐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이 문제가 논쟁적이겠으나, 보다 긴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는 비교적 명확한 듯하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중심에 있던 중국은 19세기 중반 이래 서구제국주의 세력의 침입으로 존망의 기로에 처하게 되었고, ‘救國救亡’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외부 자극으로 인해 중국에 강력한 내쇼널리즘이 생겨났는데,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모색의 유력한 대안은 근대적 ‘국민국가’였다. 근현대시기 중국의 격변은 결국 ‘강한 중국으로의 복귀’를 위한 몸부림이었고, 그 종국적인 형태는 통일되고, 독립적이며, 부강한 근대적 ‘국민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중국의 내쇼널리즘이 선택한 길은 크게 보아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서구 부강의 요체로 보이는 자본주의 경제발전과 통일된 근대국가의 수립을 위한 개혁과 건설의 길이었다. 또 하나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해방운동을 통해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 경제관계의 변동을 통해 국민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반제국주의 혁명의 길이었다. 전자는 중국국민당이 대표하고 후자는 중국공산당이 대표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양 극단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향과 움직임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반제와 혁명을 통해 민족해방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독립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근대가 중국에 안긴 역사적 과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 하지만, 경제 발전과 ‘국민주권’의 창출이라는 역사적 과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화대혁명은 신민주주의혁명에 이은 사회주의혁명의 완수, 나아가 인간 심성의 ‘개조’를 통해 ‘국민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대미문의 실험이었으나, 혁명 세력의 보수화로 실패하였다. 개혁개방은 시장 개혁과 개방을 통해 남겨진 과제 중의 하나인 경제 성장을 통한 ‘물적 기반의 구축’이라는 과제를 완수하려는 노력이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주권’의 문제는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정치가 끊임없이 이슈화되는 근본 이유이다. 정치 제도화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 민주화로서의 정치개혁’이 반드시 요구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서구식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도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중국은 ‘國民’ 또는 ‘民主’라고 했을 때 보편적으로 있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 예고편이 1989 6·4 천안문 민주화운동이었다.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런 요구를 충분히 소화하고 있지 못함에도, 이들은 ‘민족해방의 완수’라는 굳건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체제가 급격하게 몰락하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최근 중국이 보이는 ‘사회주의와 고도성장의 공존’이라는 현상은 표면적으로는 특이해 보이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근대라는 범주 안에서 무수히 존재했던 전형적인 움직임이다. 19세기 중반 이래 지속되어 온 지향의 범주 안에 있는, 지극히 근대적인 것이다. 현재 ‘중국모델’이라고 불리는 것은 서구가 만든 ‘근대 모델’ 안의 일부이다. 결코 근대에서 탈피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한눈팔지 말고 서구를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지각 있는 인사들이 곧잘 ‘G2는 어불성설이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해보는 겸양의 말만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어느덧 19세 중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의 난국을 극복하고, ‘강한 중국으로 복귀하는 길’에 이미 들어섰다. 중국이 大國化의 길로 들어 선 것은 분명하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은 서구 근대문명을 답습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낡은 문명이 새로운 문명에 의해 대체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긴 시야에서 보면, 중국이 근대 서구가 만든 세계문명의 표준을 넘어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창출하고 확산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지금의 ‘중국모델’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정한 의미의 ‘중국모델’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중국모델’을 지금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다. 다만, 중국이 세계문명의 새로운 표준을 창출한다 해도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이 오랜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기반으로 했던 것처럼, 미래의 ‘중국모델’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일정한 재료를 활용해 만들어질 것이다. 그 재료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멀게는 춘추전국시기에 기본 틀을 완성하고 유구한 역사를 통해 완결성을 갖춘 중국사상이 바탕이 될 것이다. 가깝게는 대중의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하려 했던 문화대혁명의 실험 정신도 활용될 여지가 있다. 또한 다양한 차원의 전통이 창조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이 수반될 것이다. 특히, 法과 制度를 뛰어 넘어 ‘일상생활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무형의 사회운영시스템’으로서 존재했던 전통적 慣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관행은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 전개의 양상을 규정하는 ‘장기지속의’ 토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중국모델’ 창출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것이다. 숙명적으로 중국의 문명사적 전환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우리의 현명했던 선조들처럼 중국의 전통적 관행을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이 오랫동안 중국에 복속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중국모델’에 대해서는 전성흥 편,『중국모델론 : 개혁과 발전의 비교 역사적 탐구』, 부키, 2008 ; 전성흥 편,『체제전환의 중국정치 : 중국식 정치발전모델에 대한 시론적 연구』, 에버리치홀딩스, 20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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