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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4/2015.12] 자료와 정보_중국학술원소장 사진자료 소개: 1955년 인천화교소학의 재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9 조회수 63

자료와 정보_중국학술원소장 사진자료 소개: 1955년 인천화교소학의 재건


이민주 _ 중국학술원 연구코디네이터

    

<사진1> 인천화교 신 교사 공사 모습<사진2> 구 교사 앞에서 휴식하는 인천화교

 

1902년, 한국 최초의 화교학교인 인천화교소학(仁川華僑小學)이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 인천화교소학의 학생은 약 30명 정도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학교 전용의 교사(校舍)가 없어 인천중화회관 건물의 일부 공간을 빌려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후 학생 숫자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공간으로는 더 이상 학생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교민으로부터 약 1만元을 모금, 1923년 인천영사관 동측에 교사를 신축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1955년 1월, 화재로 인해 훼손되어 새로운 교사가 필요했다. 인천화교사회는 인천화교자치회장인 여계직(呂季直)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교사 재건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인천화교자치회는 교사 재건 추진을 결정한 후, 건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화교자치구를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전개, 인천 현지의 모금액을 포함하여 약 1,500만원이 모금되었다. 또한 인천에 주둔 중이던 미군과 교섭하여 물자지원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절차상 원조신청은 인천시를 통해야만 가능했기 때문에 당시 김정렬 인천시장이 인천화교소학 교사 재건사업을 지지하여 허가증을 발급해 주었다. 이로써 인천화교자치구는 미군으로부터 약 5,000달러의 건축 자재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사진3> 정초식(定礎式) 기념사진

왼쪽부터 인천화교자치회장 여계직, 미군물자지원사령관, 인천화교소학교장 류영규(劉永奎)


이 새로운 교사의 공사는 1955년 8월 6일 시작되었다. 기초 공사가 약 한달 간 지속되었으며, 9월 19일에는 정초식(定礎式)이 진행되었는데 이 행사에는 미군물자지원사령관이 참석했다.

 

이후 건축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10월 21일 많은 인천화교들이 모인 자리에서 상량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주한중화민국대사인 왕동원(王東原)이 공사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착공 4개월 만인 12월 17일 마침내 인천화교소학의 새로운 2층 교사(校舍)가 완공되어 낙성식 기념행사를 가졌다. 본 건물의 공식 명칭은 ‘부흥당(復興堂)’으로, ‘복국중흥대업(復國中興大業, 나라를 다시 중흥하는 대업(大業)’의 뜻이 담긴 교사라는 의미다.


<사진4> 인천화교소학의 신 교사인 부흥당의 낙성 기념 단체 사진 



<참고문헌>

仁川華僑小學校校舍復建委員會(1955.12),「韓國仁川華僑小學復建工程誌略」, 『華僑學校書類編』(인천화교협회 소장자료).

송승석(2012), 「1945년 이전 인천의 화교교육과 화교사회 - 인천화교소학을 중심으로」, 『역사교육』, 124.

이정희·송승석(2015), 『근대 인천화교의 사회와 경제: 인천화교협회 소장자료를 중심으로』, 서울: 학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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