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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3/2015.11] 논단_만주사변과 아이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9 조회수 72

논단_만주사변과 아이폰


                                                                                                                          조형진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중국에서 민족 감정을 건드리는 일은 엄청난 후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례로 2005년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 시도, 극우단체 주도의 교과서 승인 등으로 중국 전역에서 반일 시위가 발생했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물론 일본 자본이 투입된 상점에 대한 습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일본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홍콩 활동가를 체포하고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려 하자 유사한 시위와 불매운동이 더 크게 번졌었다. 대상이 일본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1999년 5월 8일 유고의 수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에 미국의 유도탄이 떨어져 3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족 말살 정책에 대응한다는 인도적 명분으로 세르비아에 대한 폭격을 진행하던 미국은 오폭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후의 몇몇 보도는 대사관을 이용해 세르비아를 돕던 중국에 대한 고의적 폭격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뒤이어 대규모 반미 시위와 불매운동이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베이징의 미국 대사관 건물이 파괴되고 미국 대사와 직원들이 사흘 간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올해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애국심과 민족 감정이 어느 해보다 고조된 한 해였다. 이는 얼마 전 9월 3일 대규모 열병식에서 정점을 찍었다. 다행스럽게도 폭력적인 민족감정의 표출은 없었다. 헌법 9조를 개정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노력이 가속화되고 위안부 문제도 해결의 기미가 없어 조그만 불씨만 있었어도 2012년과 같은 반일 시위가 발생했었을 수도 있다. 사실 현실화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열병식을 전후로 한 시기에 인터넷에서는 한바탕 촌극이 벌어졌었다.

  

뜻밖에도 대상은 애플사의 아이폰이었다. 중국의 SNS인 웨이보(微博)를 주요 매개로 하여 아이폰6s가 9월 18일 발매를 시작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문제는 9월 18일이 만주사변, 이른바 '918 사변(九·一八事變)’이 발생한 날이라는 점이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자신들의 관할이던 봉천(奉天) 외곽 류타호후(柳條湖)의 만주철도를 파괴하고 이를 중국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만주지역을 침략했다. 결국 만주 전역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1932년 3월 1일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수립되었다. 9·18 사변은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의 신호탄이 된 사건인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번 아이폰6s 발매일 결정은 중국을 깔보고 욕보이려는 것으로, 이래도 아이폰을 사는 사람들은 매국노라며 열을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이폰6s는 9월 12일 예약주문을 시작하고 9월 25일 발매되었다. 1차 출시 지역이었던 중국에서는 예약주문 당일 반나절만에 모든 물량이 동났다.

  

이 촌극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온갖 설레발의 온상인 신형 아이폰에 대한 보도 중 하나가 원천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 출시 몇 개월 전에 애플사가 9.11 기념일을 피해 9월 18일에 예약주문을 시작한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보도가 있었다. 아니면 애플사의 경쟁사가 조작·과장했거나, 애플사가 중국의 상황을 보고 조정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웨이보 팔로워와 방문횟수를 늘리고 주목을 끌어보고 싶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헛소동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실제 9월 18일 아이폰6s가 나왔다한들 무슨 큰 일이 있었겠냐며 코웃음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몇몇이 끄집어낸 과거의 조그만 사건은 '9·18'이 그리 만만하지 않은 숫자임을 보여준다. 2003년 중국의 이공계 명문인 항공항천대학의 교내 제5식당이 9월 18일 신입생이 입학하는 날에 맞추어 개업을 하기로 예정하면서 '918就要發'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9월 18일에 곧 연다'라는 의미였지만, '918'의 발음이 '就要發(지우야오파)'와 비슷해 일종의 언어적 유희였다. 이는 중국의 독특한 숫자 문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918에서 9(九)의 발음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래라는 의미의 '久'와 발음이 같아 장수를 의미하며, 1(一)은 최고를 의미한다. 8(八)은 발음이 비슷한 '發'을 연상시켜 '돈을 번다(發財)'는 의미이다. 918의 발음을 '곧 개업한다'는 의미와 맞추고 장수, 최고, 재부라는 의미까지 더했으니, 굳이 마케팅 담당자가 필요하지 않은 학교 구내식당이었지만, 아마도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재치를 자화자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평생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의 견결한 애국심을 무시했다. 이 어린 애국자들에게 현수막은 민족적 수치에 좋은 의미를 갖다 붙이고 '9·18 사변이 곧 발생한다'로 읽힐 수 있는 반애국적 작태였다. 결국 식당측은 사과문을 내걸고 개업을 연기하고 심지어 좌담회까지 열어 반성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이 조그만 사건이 가져온 풍파를 대입시켜 보면 애플사는 이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 비즈니스의 위기를 벗어난 셈이다.

  

역설적으로 아이폰6s를 둘러싼 촌극이 보여준 정보의 변형과 파급력은 중국 당국의 강력한 인터넷 통제가 권위주의 정권의 단순하고 습관적인 강박증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굳이 심각한 결론이나 교훈이 아니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중국에서 9월 18일에 무얼 하려면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땅히 7월 7일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 날은 일본이 만주를 넘어 침략을 확대하면서 중일전쟁이 발발하게 된 노구교(盧溝橋) 사건, 즉 '7·7 사변(七·七事變)'이 발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image.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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