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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2/2015.10] 논단_ 격동의 중국, 영화로 읽어보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9 조회수 525

논단_ 격동의 중국, 영화로 읽어보다


이호현 _ 성균관대 현대중국연구소


올해 초 텔레비전 공중파에서 다루어진 중국특집 다큐멘터리 (MBC 스페셜 ‘14억 중국시장에서 미래를 본다’/ SBS 스페셜 ‘중국 부의 비밀’ / KBS 특별기획 ‘슈퍼차이나’), 그리고 지난 주 방영되었던 ‘대한민국 신(新)국부론, 중국 속으로’(KBS 1 다큐1)까지, 다큐멘터리 소재로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비단 다큐멘터리 뿐만 아니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요우커(游客, 중국 관광객)’문제가 빠지지 않았고, 세계뉴스에서 가장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그리스 사태’도 우리에겐 중국 증시요동문제보다 심각하진 않다고 한다. 이런 뉴스들을 들을 때면, 마치 우리의 운명, 적어도 경제적 운명이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듯한 느낌이다. 좀 과장은 있지만, 세계적 자본주의시장체제하에서 중국은 현재,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연결된 국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중국을 알고 있는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미국과 함께 G2로 거론되는 나라? 좀 거슬러 올라가 ‘공자’로 대변되는 유교문화를 공유하는 나라? 아니면 마오쩌둥이 이끈 공산당의 나라? 단편적인 정보들은 난무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궤적과 우리는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 중국 경제성장은 어떠한 배경에서 일어난 것인지, 우린 잘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앞으로 우리와 관계설정을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역사적 행보를 들여다보고, 그 바탕위에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을 진행할 때 ‘영화’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매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중친화적인 영화가 갖는 접근방법이 다소 딱딱한 역사적 접근을, 조금은 수월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적 허구를 잘 제거하면 의도적으로 그 시대를 반영한 사회비판적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사료만으로는 해석해내기 어려운 다양한 시선으로 역사를 재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 영화 속에서 근대 중국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


영화 ‘아편전쟁’은 근대 중국의 시작, 영국과 전쟁으로 시작된 ‘아편전쟁’(1840년)에 대한 중국인의 시각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화제국의 화려한 영광은 제국 말기, ‘아편전쟁’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우리와 같은 식민지시대를 겪진 않았지만, ‘반식민지(半植民地)’ 상태로 여러 서구 열강에 의해 주권을 잃어버리고, 이를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전쟁과 이념 갈등 등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영화 ‘아편전쟁’은 제작단계부터 철저한 고증과 엄청난 물량공세로 이름을 알렸으며, 명감독 시에진(謝晉)에 의해 1997년 개봉되었다. 그 해는 바로 아편전쟁으로 영국에게 할양되었던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해였다. 당시 감독은 ‘어두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 중국 민족 100년간의 굴욕을 씻어내겠다’고 제작의미를 발표했다. 영화적 내용은 사실감 있고, 무엇보다 그 의식 - 감독의 언급-은 개혁개방정책을 진행하는 정부 당국자나 중국 국민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중국 고도경제성장의 한쪽 엔진역할은 바로 이런 의식이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1910년, 우리에게 치욕스런 일본의 식민지시대가 시작될 즈음, 중국은 2천여 년 지속된 황제체제가 사라지고 공화국체제(중화민국, 1912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 사회 또한 혼돈과 전쟁의 연속이었다. 안정적인 중앙정부가 형성되지 못한 채, 군벌의 난립 그리고 뒤이은 이념 갈등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일본과 8년간 항일전쟁(1937-1945년)을 치러야만 했다. 또한 일본이 물러난 후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 내전(국공내전)이 일어나,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이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언(1949년)하였고, 패배한 국민당의 쟝졔스는 대만으로 물러났다.


이러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 중국에는 특별한 집안이 존재했다. 영화 ‘송가황조’는 실존했던 송씨 집안의 세 자매, 즉 쑨원의 부인 쑹칭링, 쟝졔스의 부인 쑹메이링, 대부호 쿵샹시의 부인 쑹아이링을 중심으로 청말부터 국공내전에 이르기까지, 남편의 의지에 맞추어, 그리고 그들 자신의 이념에 따라, 중국을 위해 활동했던 그녀들의 삶을 추적해가고 있다. 영화에서는 여성으로, 아내로서의 입장으로 세 자매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사실 감독이 말하고자 한 바는, 그녀들이 곧 중국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명망가 집안이 아닌 소시민에게 이런 이념 갈등, 정부정책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잔잔하게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 ‘인생’은 본래 위화의 ‘활착(活着)’을 중국 5세대 감독인 장이모우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장감독은 한 소시민 가족이 국공내전과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어떻게 겪어 내는지, 역사서적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러나 보다 더 공감 가는 중국 이야기를 ‘인생’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과연 ‘인민을 위한’ 정책이 인민에게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지도자의 이상적인 꿈이 실생활에서는 어떠한 악몽을 가져다주는지 영화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혼란시기를 거쳐 그 반성으로 등장한 ‘개혁개방정책’의 실시는 중국 국민에게 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덩샤오핑의 정권 장악과 ‘개혁개방정책의 실시’는 분명 중국에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성장’보다는 ‘균등’을 강조한 사회주의 중국은 이제 그들이 비난했던 ‘빈부격차 심화’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영화 ‘북경자전거’는 17세 소년의 녹녹치 않은 삶을 통해 이러한 중국 경제성장의 이면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역사의 일면을 소재로 만들어진 허구이다. 그러나 사료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있음직한 혹은 있었던 ‘이면’을, 그리고 그들 나름의 해석을 영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그 행간을 잘 읽어 낼 수만 있다면, 영화는 사료적 실증이 뒷받침되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던져줄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현 중국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단서로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이 글은 2015 시민강좌시리즈의 강연내용의 요약본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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