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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60/2015.08] 기획 _ 중국동북이야기 (9) 일본기업의 중국 동북지역 투자와역사경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5 조회수 38

[Vol.60/2015.08] 기획 _ 중국동북이야기 (9)    일본기업의 중국 동북지역 투자와 역사경험

김송죽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김지환 _ 인천대학교 HK 교수

 

인문학적 경험과 지식이 현실 사회의 이해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떠한 실마리를 제시해 줄 수 있을까? 특히 역사적 경험 등 과거의 문제가 오늘날 현실의 문제와 어떠한 실질적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기업의 투자와 경영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과거 역사적 경험과 상호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문학적 발상과 진단, 그리고 그에 대한 인문적 대응이 현실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 어떠한 가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 일본기업의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투자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기업이 특정 지역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경우에는 당연히 이를 위한 제반 기업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는 임금 수준이나 원료의 조달, 판매시장과 교통, 유통망, 세제 및 금융기관의 대출, 금리 등 다양한 기업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일본기업은 1970년대 초 오일쇼크로 인한 엔고로 말미암아 아시아 각국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와 진출에 착수하였다. 투자 분야는 주로 단순 노동집약적이며 저비용으로 기업을 설립하여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섬유, 의복, 전기전자 조립부문과 관련된 업종이 중심이 되었다.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일본기업의 투자나 진출은 1949년부터 1972년 중일국교 수립 이전까지의 경우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사실상 개혁개방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등소평의 남순 강화 이후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기업이 증가하자 일본기업 역시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일본기업의 관심 역시 점차 고조되었다.

 

1990년대 동북지역은 일본기업에게 인적, 기술적, 지리적 차원에서 좋은 투자환경을 구비하고 있었다. 임대료와 전력사용료 등 기업 운영의 측면에서도 장점을 갖추었으며, 중국 내 여타 대도시와 비교하여 면적당 평균 임대료가 3분의 1 정도 수준으로 저렴하였다. 이와 함께 지리적으로도 일본과 근거리에 위치하면서 기간산업이 집적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본은 1990년대 이후 대련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점차 동북3성으로 투자를 확대해 나갔다.

 

중국의 동북지역이 동북아시아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고 동북아시아 경제권이 단일한 지역경제공동체로 부상하면서, 동북3성에 대한 각국의 관심 역시 고조되었다. 특히 2003년 수립된 동북진흥전략에서 동북3성이 중국의 제4대 경제권으로 결정된 이후 10년 동안 매년 13% 이상의 고도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동북3성은 동북 중공업지대와 환발해경제권이 교차하며 북한, 러시아, 몽골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시에 일본과 한국과도 인접하여 동북아시아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이 지역에 항만과 철도, 도로시설의 확충 및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면서 일본, 러시아, 한국 등 주변 국가들의 기업 투자를 적극 지원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일본기업은 중국 동북지역을 동북아시아에서 투자의 거점지역으로 상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 동북지역은 역사적으로 일본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지역으로서, 양자 사이에는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과거 만주국이라 불리며 일본과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지역이며, 특히 대련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경제적 거점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이 지역에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동북지역의 정치·경제·군사·외교 문화에 관한 조사 및 연구 자료를 축적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기업은 교통, 금융, 상업, 무역 등 경제 전반을 독점적으로 장악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중공업 육성 등 공업기지로서 뿐만 아니라 비옥하고 광활한 평야의 분포로 말미암아 중요한 식량기지로도 발전하였다. 즉 중국 동북지역은 일본이 중국에 대한 군사 및 경제 침략을 확대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 적극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본기업이 동북지역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만주국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경험이 자본의 투자 및 기업의 설립 과정에서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고려 요인으로서 개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투자 및 진출, 그리고 경영이라는 경제적 문제가 역사적 경험의 토대 위에서 결정되고 이루어지는 국면이 출현한 것이다.

 

과거 침략의 역사적 경험이 현실의 기업 투자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배일운동이 발발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중일 외교관계의 악화를 초래하고 각 사안별로는 현지 투자 기업 및 유통망의 손실로 이어졌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 현재의 기업 투자 및 경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다음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중일관계는 센카쿠(중국명: 조어도) 및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이어져 왔으며, 2005년에는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일시위가 발생하였다. 중국의 『環球時報』는 중일수교 40주년 기념일인 2012 9 29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중일수교 40주년의 양국 현주소’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응답자 32,000명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의 응답이 중일관계의 최대 걸림돌로서 역사적 원한(47.4%)을 들었다. 2013 8월 차이나데일리와 일본언론NPO(日本言論NPO)가 공동으로 실시한 ‘중일관계 여론조사’에 따르면 역사인식 문제의 영향으로 상대국에 대한 감정은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또 다른 조사에서 중국인은 “중국을 침략한 역사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 점(63.8%)”을 배일감정 형성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2012 9 18일 북경에서는 수천 명의 중국인들이 ‘만주사변 81주년’을 맞이하여 일본대사관 앞에서 반일시위를 전개하였다. 때마침 중일 사이에 조어도의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적 갈등이 첨예화된 상황에서, 일본의 동북침략에 항의하는 반일시위는 역사경험이 해묵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문제와 관련하여 언제든지 돌출하여 나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현안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일본제품의 불매를 외치며 산토리(suntory), 도요타, 소니 등 일본상품 목록을 열거하며 일화배척운동을 주창하였다.

 

이러한 반일시위는 1949년 이전 국민정부 시기의 일화배척운동과 그 양상과 전개가 매우 흡사하였다. 일화배척운동으로 말미암아 중국 내의 일본기업은 속속 영업을 중지하거나 임시휴업에 돌입하였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와 혼다자동차는 반일시위 중 영업을 중지하였으며, 파나소닉 등 일본의 전자관련 공장과 상점들도 속속 휴업에 돌입하였다. 마쓰다남경공장도 생산을 중단하였으며, 미쓰비시, 미쓰이 등도 중국에서의 영업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사회, 문화적 갈등이 중국에 진출한 일본자동차회사 및 항공사, 기타 일본기업의 경영악화를 가져오는 주요한 요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동북지역에 대한 일본기업의 투자와 기업의 설립, 경영은 자연히 이상의 제반문제의 고려 속에서 입안되고 시행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에 일본기업은 최대한 역사적 이슈와 중일관계 등과 같은 외적변수의 개입을 억제하면서 전략적인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러한 결과 일본기업은 중앙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배제하는 한편, 지방정부 및 민간차원에서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이를 통해 경제교류를 위한 인적 ·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자매도시와 같이 지방정부 간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기업의 투자 및 진출을 위한 문화적 ·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고, 중일 간 협회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종국적으로 투자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기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지방정부들은 엔고로 인한 수출 감소에 대처하기 위하여 중국 각 성시와 자매도시 협약을 체결해 나갔다. 일본이 추진한 자매결연정책의 목적은 선린우호관계를 조성하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정치·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는데 있었다. 일본은 국지경제권(局地經濟圈)으로 지방정부를 내세움으로서 과거 만주국 건설과 침략전쟁으로 야기된 기억들을 불식시키고 경제적 실리를 추구해 나갔다. 자매도시는 지방도시 간 교류를 중심으로 협력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우호적 성격을 내재함으로써 경제적 진출을 보다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다.

 

지방정부를 매개로 한 통로 이외에도 각종 협회를 통한 교류 역시 일본기업의 동북3성 진출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일본기업은 각종 협회를 통해 중국 동북3성에 진출하였는데, 대표적인 사례로서 1984년 설립된 ‘중일동북개발협회’와 2000년도에 설립된 ‘중일경제협력회의’를 들 수 있다. 이들 두 단체는 1984년 대련의 개방도시 지정을 계기로 일본과 중국 동북지역 사이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에서 발족되었다. 회칙에서 “일본과 중국 동북지역 간의 경제 기술 교류를 촉진하고 양국 간 경제관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경제협력회의의 개최나 인적교류를 통해 일본기업의 중국 동북지역 진출을 다방면으로 지원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기업은 동북3성으로 진출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중일 국가 간 관계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제 문제를 회피하는 동시에 지방정부 간, 혹은 경제단체와의 협조를 통한 실질적인 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중국 동북3성에 대한 일본기업의 투자는 현재까지 상존하고 있는 중일 간의 역사문제와 반일감정으로 말미암아 중앙정부 보다는 지방정부 및 협회 등의 네트워크를 통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상호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투자를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중일 간의 역사적 갈등이 잔재하는 상황에서 양국이 어떻게 경제협력을 증진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img4.imgtn.bdimg.com/it/u=841976414,1261330346&fm=21&gp=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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