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0/2015.08] 출판물 특별기획 _ 『중국의 동향상회 - 길림성 동향상회 면담조사 자료집』 ; 『중국 민간조직의 단면 - 길림성 동향상회 구술집』, 장호준·손승희·둥윈성, 學古房, 2015.05.

『중국의 동향상회 - 길림성 동향상회 면담조사 자료집』 ; 『중국 민간조직의 단면 - 길림성 동향상회 구술집』

손승희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본서는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 HK중국관행연구사업단과 중국 길림대학 철학사회학원 사회학과(吉林大哲學社會學院社會學系)와의 협동연구의 산물이다. 두 기관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약 13개월 동안 중국 길림성에 소재한 타지역 관적(貫籍)의 상회(동향상회) 중 광동상회와 하남상회의 임원, 일반 회원 및 기타 관련자 35명을 대상으로 40회에 걸쳐 심층면담을 진행한 바 있다. 본서는 이 면담조사의 결과를 정리하여 출판한 것으로, 두 권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 즉 『중국의 동향상회-길림성 동향상회 면담조사 자료집』은 이 면담조사 자료 중 1차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33회의 인터뷰 및 회의를 선별, 편집하여 그 내용을 원문의 형태로 수록한 것이다. 『중국 민간조직의 단면-길림성 동향상회 구술집』은 그 후속편으로, 원문 중 중요한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말하자면 전자는 원문 자료집이고 후자는 번역 구술집이다.

1 _ 동향상회 연구는 ‘관행의 근대적 재구성’ 양상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소재

인천대 HK사업단은 2000년도에 들어 중국 각지에 동향상회가 설립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전국적이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인구, 물자, 자본이 광범위하게 이동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1980-90년대에 걸쳐 사회단체, 민판비기업단위(民辦非企業單位), 기금회(基金會) 등의 민간조직이 집중적으로 증가하는 이러한 경향은, 인구 이동과 함께 대량의 지연조직 혹은 지연관계를 유대로 하는 현상이 출현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명청시대 상품경제의 발달과 함께 원거리 상업에 종사했던 진상(晉商), 휘상(徽商)을 연상케 하고, 좀 더 가까이는 청대 중국인의 대규모 인구 이동을 불러일으켰던 ‘틈관동(闖關東)’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새로운 이주지에서 생계와 생존을 도모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정보가 필요했는데, 이를 획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은 혈연이나 지연 조직을 통해서였다. 현대 사회에서도 혈연과 지연을 완전히 배제하고 공리적인 필요성만으로 중국인을 설명하는 것은 어딘지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혈연과 지연의 전통적인 요소가 여전히 중국인의 사회관계나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인의 사회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혈연, 지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한 전통적 요인에 의지하여 결합된 각종 조직들이 당대 중국에서 부활하고 있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인천대 HK사업단이 고찰하고자 하는 관행의 연속성과 단절성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지역이 근대의 대표적인 이민사회라는 사실은 동향상회 중 동북을 그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동북은 타 지역에 비해 국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관철되고 있는 지역으로 국가-사회-시장 관계에 있어서 보다 분명한 동북의 지역성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동향상회는 현지에 뿌리내리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와의 관계, 특히 현지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향상회가 현지사회에서 성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2 _ 당대 민간조직의 운영과 사회경제적 네트워크의 작동방식에 대한 생생한 심층면담

상술한대로 본서는 길림성 동향상회의 면담조사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되었다. 길림성 동향상회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문제점들이 노정되고 있는지 등에 관한 관련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담아낸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피면담자의 생각과 감정들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현장감과 생동감을 높이고자 했다. 동북권역의 동향상회에 대한 이러한 심층면담은 지금까지 중국학자들에 의해서도 시도된 바가 없는 선구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연구 방법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당-국가 중심적인 접근이나 국가-사회의 이분법적 틀에 기반한 접근법이 시도되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길림성 동향상회와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과 그 관계를 역동적으로 파악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또한 향후 민간조직에 대한 중층적인 양상을 탐구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3 _ 민간조직에 대한 국내외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인 기초자료 제공

길림성 동향상회는 동북지역의 타지 출신 상공업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작동 원리는 전통시대의 지연조직의 그것과 흡사하다. 따라서 인천대 HK사업단의 2단계 아젠다가 관행의 근대적 재구성 양상을 파악하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지조사를 통한 1차 문헌의 발굴과 수집, 참여관찰, 심층면담 등의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본서는 바로 그러한 동북지역의 동향상회에 관련된 현지조사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더욱이 본서는 실제 동향상회의 기능, 운영방식, 발전 가능성,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 동향상회의 문제점 등 동향상회의 실질적인 현상을 관련자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해냈기 때문에 아젠다 중심의 연구를 심화하기 위한 기초자료로서의 학술적 가치가 있다. 이를 통해 혈연, 지연을 결합원리로 하는 전통사회의 동향조직의 관행이 오늘날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근래, 민간조직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학술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에 대한 국내외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인 기초자료로서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4 _ 국제 학술협력사업의 모범적인 사례

인천대와 길림대의 이 협력사업은 조사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섭외, 준비, 면담조사, 그리고 관련 학술대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두 기관이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진행되었다. 길림대 사회학과와 같은 민간조직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기관을 만나지 않았다면 실현이 어려울 수도 있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양 기관의 학문적인 열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학술적으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국제 학술협력사업의 모범사례로도 소개할만하다. 인천대-길림대 공동조사연구 사업의 결과물인 본서가 국내의 중국 전문연구자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