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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58/2015.06] 출판물 특별기획 _ 『근대중국 동북지역사회와 민간신앙』, 박경석·류양 著, 學古房, 2015.05.2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5 조회수 36

[Vol.58/2015.06] 출판물 특별기획 _

『근대중국 동북지역사회와 민간신앙』, 박경석·류양 著, 學古房, 2015.05.29.

『근대중국 동북지역사회와 민간신앙』

박경석 _ 인천대학교 HK 교수

 

자료명

저자

출판사

출판일자

총서사항

판형

근대중국 동북지역사회와 민간신앙

박경석·류양

學古房

2015. 5. 29

중국관행연구총서 9

신국판

 

이 책은 작년(2014) 초부터 필자와 중국 길림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류양(劉揚) 교수가 진행한 공동연구의 산물이다. 1부의 여섯 장과 제2부의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근대시기 동북지역의 민간신앙을 개괄적으로 서술하였다. 민간신앙의 유입과 사원의 분포, 숭배대상, 특성 등에 대해 우선 서술했다. 더 나아가 민간신앙의 속성 내지 기능에 주목하여 민간신앙을 제사의례, 민속·풍속, 경제 시장, 일상생활, 여가 오락, 공익사업 및 공공생활의 공간으로서 파악했다. 또한 민간신앙에 대한 사회 엘리트층의 비판과 정부당국의 개조라는 근대의 침습에도 불구하고 민간신앙이 완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지속되었음을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주목했는데, 동북지역의 민간신앙이 가진 지역적 특성과 근대시기 민간신앙이 지속되거나 변용되면서 발생하는 전통과 근대의 긴장관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국가권력 내지 사회적 지배층이 민간신앙에 끼친 영향도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였다. 7장에서는 우선 동북지역 민간신앙의 전반적인 특성에 대해 살펴보았고, 8장에서는 동북지역 특유의 신앙 공간으로서 백두산신앙을 다루었다. 9장에서는 비밀스런 민간종교결사의 양태를 고찰하면서 지방당국의 대응에 주목했고, 10장에서는 국가제사와 관련된 전통의 지속과 근대적 변화가 빚어내는 긴장관계에 주목했다. 한편 제11장에서 만주국 성립 이후 민간신앙의 변화 양상을 별도로 다루었다.

 

본서의 서술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첫째, 중국사회에서 민간신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왕에 ‘동북’이라는 특정 권역에 주목한 바에야 민간신앙을 통해 동북지역의 지역적 특성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셋째, ‘관행’의 근대적 재구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근대시기에 들어서 민간신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지속성과 단절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근대적 전환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통과 근대의 긴장관계와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우선 중국인에게 민간신앙이란 무엇인가? 민간신앙은 민중의 일상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사실 도저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이자 현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제사의례로서의 민간신앙이 존재했는데(2) 제사활동은 민중생활의 필수불가결한 일부였고 민간신앙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일상의 다양한 풍속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민속으로서의 민간신앙이기도 했다.(3) 그리고 민간신앙은 출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의 생로병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고, 개인의 생애주기별로 치러야 하는 각종 의례(冠婚喪祭)와도 깊은 관계를 갖는다. 게다가 민간신앙은 경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시장으로서의 묘회, 즉 묘회 시장(廟市)이 매우 활성화되어 상업 발전과 인민의 경제생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4) 상대적으로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동북지역에서는 특히 묘시가 열릴 때마다 대성황을 이루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민간신앙의 사원 공간이 일상적으로 다양한 민중생활의 영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말하자면 일상으로서의 민간신앙이 존재했던 것이다.(5) 구체적으로 정신적 위안을 주었고 여가 및 오락을 제공했으며, 공공생활의 공간으로서 공익사업을 벌이거나 공공의 사무를 처리하는 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민간신앙은 다양한 사회조직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민간신앙은 근대 이후 여러 가지 우역곡절 가운데에서도 강력한 생명력과 적응력을 보였다. 민간신앙이 가진 장기지속성은 사람들의 현실적 필요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는 ‘관행’도 마찬가지리라!

 

둘째, 민간신앙을 통해 이민사회 특유의 ‘복합성’이라는 동북지역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내지의 민간신앙이 이민과 함께 유입되면서 중국의 민간신앙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구성과 특성을 기본적으로 공유하였다.(1) 하지만 근대시기 동북지역의 민간신앙이 단순히 내지에서의 이식과 복제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고, 동북 토착의 신앙체계 및 자연 지리적 조건이 작용하면서 동북지역 나름의 지역성이 나타났다.(8장 제2) 특히 이는 동북지역 특유의 백두산신앙으로 잘 나타났다.(7)

 

내지에서 유입된 민간신앙의 형식과 내용이 밑바탕을 이루고, 동북지역 토착의 샤머니즘이 상대적으로 강한 영향을 끼치고, 이주와 개척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개입되고, 자연 지리적 조건도 작용하고, 일본의 식민통치(만주국시기)와 같은 외부적 요인이 작용하면서(11) ‘복합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결과 나름의 독특한 ‘복합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복합성’이야말로 동북지역의 민간신앙이 가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이밖에 국가권력과 민간신앙의 관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민간신앙이 근대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도 국가권력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9) 다만 국가권력의 영향력은 주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은 그다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동북지역에서 민간신앙과 관련된 ‘제도화’가 상대적으로 더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셋째, 민간신앙을 통해 전통과 근대의 긴장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고, 그 가운데 중국사회 ‘장기 지속적’ 토대로서의 민간신앙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회 엘리트층과 정부당국의 강력한 사원 개조에 직면하여 민간신앙의 생존이 위기에 몰리는 듯했으나, 현실의 일상생활에서 민간신앙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계속되었고, 매년 廟會는 예년과 다름없이 개최되었다. 어느 정도 정부당국의 방해와 통제를 받았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廟會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튼 민간신앙도 근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나, 서구근대가 전통을 단선적으로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측면에서 전통과 근대의 뒤섞임이 나타났고, 긴장관계를 보였다. 그 가운데 현실적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민간신앙의 기본 틀, 즉 본령은 기본적으로 지속되었다. 이는 민간신앙의 문화적, 일상적, 현실적 생명력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이 여전히 대체 불가한 지위를 가졌음을 보여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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