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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57/2015.05] 연구성과소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5 조회수 32

[Vol.57/2015.05] 연구성과소개






손승희, 중국 동북의 대두가공업 同業組織과 滿鐵-1923년 ‘大連油坊聯合會’를 중심으로, 중국근현대사연구 65, 2015.3


 


철도와 이민으로 일차적인 변화의 동력을 확보한 동북사회 그 내부는 華商과 日商, 중국정권과 관동청, 중국인과 만철 등 여러 세력의 공존과 경쟁 속에서 끊임없는 상호관계에 의해 작동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동북의 다양한 세력들 속에서 ‘業緣’을 통한 근대 동북사회 구성원들의 사회관계에 주목하여, 대련의 대두가공업 동업조직인 ‘大連油坊聯合會’를 분석했다. 즉 대련의 실질적인 권력으로서의 만철과 이에 대항하는 동업조직으로서의 대련유방연합회의 관계, 그 속에서의 화상과 일상의 입장을 해명하고자 했다.


 


대련유방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원래 화상의 대두가공업 동업단체로 출발했지만, 이후 일상의 가입이 허용되어 회장을 맡는 등 일상이 연합회를 주도하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도 연합회는 만철과의 협조관계를 통해 만철과 회원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역할을 했다. 만철에게도 연합회는 필요불가결한 존재였는데, 그것은 만철의 混合保管制度(이하 혼보)의 실시에 연합회의 보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합회는 그 구성원의 90% 내외가 화상이었고, 豆餠, 豆油 등 대련 대두제품 생산량의 85% 이상이 화상이 경영하는 대두공장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연합회가 만철과의 긴밀성을 배경으로 일상 중심으로 주도되었지만, 연합회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던 화상의 존재가 무시될 수는 없었다. 그 예가 바로 혼합보관제도에 대한 화상 회원들의 저항이었다.


  


만철은 이미 대련에서 두병과 대두의 혼보제도를 강제적으로 실시한 데 이어 두유에 대한 혼보제도까지 실시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만철은 동북 대두제품을 일원적으로 통제하고 이를 상품화함으로써 대두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두병과 대두의 혼합보관제도를 이미 경험한 화상 회원들은 그것이 동북 고유의 상관습과 다를 뿐 아니라 합리적이지도 못하다고 인식했다. 더구나 각종 수수료 등을 징수함으로써 비용의 증가를 의미했기 때문에 두유 혼합보관제도의 실시를 반대했다. 따라서 연합회 내부의 소수의 일상과 다수의 화상이라는 구조적인 모순은 만철이 강행하고자 했던 두유 혼보제도에 대한 결사반대로 폭발했다.


  


결국, 만철은 연합회의 화상 회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1927, 뒤늦게 두유 혼보의 실시를 공포했다. 그러나 성적은 저조했다. 연합회 회원들의 선택은 지극히 실리적이었다. 일상 회원들은 동북에 진입할 때부터 만철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골적인 반대는 곤란했지만, 두유 혼보 비율의 저조는 그들의 반대 의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연합회의 회원은 아니지만 만철연선의 대두공장들이 생산지에서 두유 혼보를 실시하는 것을 환영했던 것도 그것이 그들에게 이익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연합회의 화상 회원들은 두유 혼보의 실시를 극렬히 반대했다. 그것은 두유 혼보제도가 전통적인 상관습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비용의 증가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만철에 저항하면서 종전과 같이 ‘油籠’에 두유를 담아서 거래하는 고유의 상관습을 고수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화상은 중국의 상관습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전통’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될 때는 합리적인 면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대로 ‘근대’라는 외피를 쓰고 불합리한 면을 강요받을 때는 ‘상관습의 維護’가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 논리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었다.


  


한편, 일본의 입장에서는 혼보제도의 순조로운 실시에 예상외의 제동이 걸린 셈이었다. 일본은 철도를 통해 동북을 경영한다는 방침을 수립했고 만철이 그 경영의 주체가 되었다. 만철은 일상이 대련의 상업과 무역의 주도권을 잡고, 대련이 동북과 일본 내지를 직결시키는 동북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대련을 만철의 물류와 수송체계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기본 정책 하에 항만, 교역소, 금융, 수송 등등 가능한 한 모든 편의와 시설을 대련항에 집중 제공했다. 이러한 대련중심주의 기조에 따라 동북산 대두제품을 상품화, 규격화하고 대련에 집중시켜 일률적으로 만철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시행되었던 것이 혼합보관제도였다.


  


그러나 현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추진되었던 만철의 혼합보관제도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연합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화상의 입장을 도외시했던 만철의 밀어붙이기식 두유혼보의 실시가 화상의 강력한 저항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만철은 이 혼합보관제도에 대해 동북 산업 경제계는 물론 만철의 수송과 보관상에 상당한 효율을 가져왔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한 두병의 혼보 이외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화상의 상관습에 부합하지 않았던 대두의 혼보는 그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고, 두유의 혼보는 화상의 반대와 일상의 비협조로 실시 자체가 무력해졌다. 대두, 두병, 두유에 대한 혼보제도를 실시함으로써 동북의 대두제품에 대한 일원적 통제를 하고자 했던 만철의 의도는 두유 혼보 실시의 저조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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