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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57/2015.05] 논단 _ 한·중·일 근대지폐양식에서 동아시아 정체성 찾기 (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5 조회수 76

[Vol.57/2015.05] 논단 _ ··일 근대 지폐양식에서 동아시아 정체성 찾기 (4)

전근대 시기, 중국의 동전양식과 동아시아 화폐양식의 형성

김판수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동아시아 지역에서 ‘근대적 의미’의 지폐가 발명될 수 있었던 것은 시기적으로 11세기 이후 ‘중국 내 한족 왕조’와 金나라를 포함한 주변국 간의 상호작용 때문이었다. 11세기 송대 쓰촨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지역적 지폐는 12세기 금대에 이르러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는 지폐로 발전될 수 있었고, 금대에 이미 동아시아 지폐양식으로 등장했다. 즉 송대에 발명된 지역적 성격의 지폐는 금과 원 등 유목국가의 중국 장악과 더불어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할 수 있었는데, 이후 중국의 지폐양식은 약 18세기까지 유럽과 북미 등에 의해서까지 ‘모방’되거나 ‘도둑질’을 당하는 가운데 글로벌한 차원에서 화폐양식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지폐양식이 이처럼 단일국가 차원을 넘어 손쉽게 초국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전근대 시기 중국 동전양식이 동아시아 화폐양식으로 확립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사용된 화폐들은 매우 다양한 형식을 취했는데, 그 중에서도 비교적 특수한 형태로 또 많이 발견되는 것은 칼 모양의 ‘도전(刀錢)’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등장한 진 제국과 더불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통합된 화폐양식이 형성될 수 있었다.

 

중국을 통일한 진 시황제는 기원전 212-207년 사이에 원형방공(元型方孔) 형태의 ‘반냥전(半兩錢)’을 제작함으로써 화폐제도를 통일했고(<그림 1> 참조), 이러한 동전 형태와 화폐 단위 등이 중심이 된 중국 동전양식은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 지배적인 동전양식이 되었다.

 

<그림 1> 진 제국의 반냥전1)

  

이후 한무제에 의해 고조선이 멸망된 후 설치된 한사군은 약 400년간 존속했고, 이 영향으로 오늘날 ‘평양’ 지역인 낙랑군 유적에서 중국 화폐가 출토되었으며, 서기 14년 중국에서 주조된 원형방공 형태의 화폐인 화천(貨泉)은 오늘날 ‘김해’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최초로 주조된 국가 발행 주화2)는 고려 성종 시기 제작된 원형방공 형태의 철전으로 전면에는 ‘건원중보(乾元重寶)’ 배면에는 ‘동국철전(東國鐵錢)’이라고 각인되었다. 전면의 ‘건원중보’라는 명칭은 원래 당나라 숙종 건원연간에 주조 발행된 화폐 명칭이지만, 고려는 이를 수용·모방하여 전면의 경우 ‘중국적 특성’을 배면의 경우 고려를 상징하는 ‘동국’을 각인했다.3)

 

<그림 2> 건원중보 전면4)

 

진제국의 반냥전 등장 이전 고조선과 중국에서는 유사하지만 다양한 형식의 화폐들이 사용되었다. 반냥전의 등장은 동아시아 화폐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첫째, 반냥전은 중국 내 통일 국가에 의해 주조된 최초의 전국 통합 화폐였다. 둘째, ‘사각’ 주형 틀을 활용하여 대량 제작했기에 유통·운반·보관 등에 편리했기에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5) 셋째, 원형방공 형태의 반냥전은 통일된 영토 내에서 각 지방을 수평적으로 엮는 시장 네트워크 형성의 기초를 놓았다. 넷째, 균질적인 ‘무게’를 화폐단위로 각인·재현함으로써 표준적 화폐에 기반한 안정된 경제체계 건설을 시도했다. 다섯째, 반냥전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점차 동아시아 화폐양식의 전범이 되었다.

 

서구의 ‘도안 중심’의 화폐양식과 달리, 문자만 각인된 반냥전은 동아시아 화폐양식의 전범이 되었지만, 전근대 시기 동아시아 동전에서 도안 사용이 완전히 배제되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1769년부터 주조된 ‘관영통보(寬永通寶)의 경우 전면에는 문자가 배면에는 무늬가 각인되었다.

 

<그림 3> 에도막부 시기의 관영통보6)

 

이처럼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와 반대로 ‘문자 중심, 도안 주변’ 화폐 양식이 만들어졌다. 이는 한·중·일 3국에서 발행된 ‘별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별전은 중국에서 한대 이후 주조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고려 때 전래되었지만 조선시대에 매우 활발하게 제작되었고, 일본에서도 별전이 오래전부터 주조되었다. 별전은 조선의 경우 대체로 승진과 장수 등의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 내세 불교 사상을 담는 경우가 많았다.7) 특히, 조선에서 승진과 장수 등 축원 기원을 담은 별전은 길상전으로 불렸는데, 문자로 재현한 것은 길상어전(吉祥語錢)으로 불렸고 도안로 재현한 것은 길상문전(吉祥文錢)으로 불렸다.

 

<그림 4> 조선의 복록(福鹿) 별전8), 중국 별전, 일본 별전

 

3국에서 제작된 별전들은 대체로 경제적 기능보다는 구성원들 간의 정치사회적 위계관계를 구획하여 포섭/배제하는 신분적 상징물의 기능이 강했다. 이외에 조선 왕실에서는 상평통보를 주조할 때 품질과 무게 등을 시험하기 위해 시주화(試鑄貨)로 만들거나, 왕실의 경축사나 성곽 건립 등 특별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주화로도 제작했다.

 

찰스 틸리는 중국처럼 광활한 영토 내에서 수천 년에 걸쳐 통일 국가가 지속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에 경악(또는 경이)스럽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서구의 헤게모니 국가들이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로마 제국,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근대 영국 등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은 한 번도 중국과 같은 형태의 대제국이 형성·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에서 오랫동안 대제국이 건설되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었으며 심지어 한족이 아닌 유목민족에 의해 장악되었기에, ‘중국’의 사회문화적 속성 및 그 영향력은 전근대 시기부터 이미 초국적 성격에 의해 단일국가적 성격이 지배될 수 있었고, 이러한 조건에서 동아시아적 정체성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동시에 내부화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문자 중심, 도안 주변’의 화폐양식의 토대는 중국 지역 내부로부터 구성되었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시점부터 동아시아 권역 내 정체성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즉 서구의 ‘도안 중심, 문자 주변’의 화폐양식9)과 달리, 화폐양식 자체에서 국가 간의 배타적인 지리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 경계가 강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는 고려의 건원중보와 별전 등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 참고문헌

 

월간 화동.

한국은행, 2015. 『우리나라의 화폐 - 화폐사, 화폐도감』, 한국은행.

 


1) [네이버 지식백과] 반냥 (한국의 박물관: 화폐금융, 2001.6.28, 문예마당)

 

2) “주화는 소재가치에 의해서만 화폐로서의 유통가치가 결정되는 물품화폐에서 소재가치와 상관없이 액면가치에 의해 화폐의 유통가치가 결정되는 명목화폐로 발전하는 과정중인 화폐로서 물품화폐와 명목화폐의 중간단계에 있는 과도기적 화폐제도로 파악할 수 있다(한국은행, 2015: 12).

 

3) [네이버 지식백과] 건원중보 [乾元重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4) [네이버 지식백과] 건원중보 [乾元重寶] (두산백과)

 

5) [네이버 지식백과] 반냥 (한국의 박물관: 화폐금융, 2001.6.28, 문예마당)

 

6) http://cafe.naver.com/antimaker/112424

 

7) [네이버 지식백과] 멋과 풍속이 담긴 별전 (한국의 박물관: 화폐금융, 2001.6.28, 문예마당).

 

8) “앞면에는 행복과 관직에 나아가기를 기원하면서 ‘복록’문자, 북두칠성, 삼태성을 새기고” (http://blog.naver.com/lawbar/220139854361), 뒷면에는 사슴 그림을 각인한 별전이다. 전통적으로 록(사슴, 鹿)은 녹봉(祿俸)과의 유사성으로부터 ‘관직’을 상징했고, 이외에 장수를 의미하기도 했다.

 

9) 서구의 ‘도안 중심, 문자 주변’의 화폐양식은 아테네 시기 이후 동일한 위상의 주변국과의 지속적인 갈등과 경쟁 또는 전쟁의 역사적 토대 위에서 공고해졌다. 따라서 서구의 화폐양식에는 국가 간의 배타적인 경계들이 지배자 자신 또는 그를 상징하는 동물의 표상을 빌어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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