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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57/2015.05] 기획 _ 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5 조회수 169

[Vol.57/2015.05] 기획 _ 한국중화요리, ()’()’ (5)

짜춘권, 봄을 깨물다! : 짜춘권으로 보는 한국의 중국요리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춘권’, 언뜻 무협소설에 나오는 ‘권법’처럼 들리는 이 요리의 정식 명칭은 ‘炸春卷’이다. 중국표준어로는 ‘ZhaChunJuanr, 중국교동방언으로는 ‘ZaCunGuanr’ 한자독음으로는 ‘작춘권’으로 읽힌다. 그래서 그런지 ‘炸春卷’은 ‘짜춘권’, ‘짜춘결’, ‘싸춘결’, ‘싸춘권’, ‘자춘걸’, ‘자춘결’ 등으로도 불린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자춘쥐안’, ‘자춘취안’ 정도가 되겠지만 많은 언론과 요리책 특히 중식조리기능사 시험에서도 ‘짜춘권’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따라서 이 글에서도 ‘짜춘권’으로 쓰겠다.1)

 

봄이 되면 옛 북경 골목길에서는 “來! 蘿蔔賽梨 喲 。”라고 외치던 무장수가 다녔다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자! 무 사세요. ! 배보다 맛있는 무 사세요.” 정도가 될 것이다. 老北京(북경토박이)들은 입춘에 무를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咬得草根斷,則白事可做。(이를 꽉 깨물고 악착같이 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말처럼 봄이 찾아오는 날 무를 한입 깨물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속설이다.

 

입춘에 무를 먹는 중국 유치원생들과 선생님

 

세시(歲時) 음식을 즐기는 중국 사람들은 봄이 찾아오면 春卷(춘권)을 만들어 먹는다. 춘권은 春盤(춘반) 혹은 春餠(춘병)이라고도 하는데 봄나물과 봄채소 혹은 견과류 등을 접시에 담아 밀가루 전병에 싸 먹는 것이 춘권의 유래다. 가난한 집에서는 무를 먹고 부잣집에서는 춘권을 먹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입춘에 무를 한입 베어 물던지 춘권을 한입 크게 물어 먹든지 이것을 “咬春” 즉 “봄을 깨물다.”라고 한다. 이러한 토속적인 가정식 음식을 요리화한 것이 바로 짜춘권이다. 짜춘권은 중국 魯菜(루차이, 산둥요리)에 속한다. 춘권을 2차적으로 다시 굽거나 튀겨서 조리하여 요리화 한 것이다. 지금은 중국 전역에서 춘권하면 짜춘권을 가리키는데 전통적인 魯菜(루차이)의 짜춘권2)과 다소 차이가 있다.

 

보편적인 중국의 짜춘권

전통적인 루차이의 짜춘권

 

중국의 보편적인 짜춘권은 재료를 밀가루 전병으로 말아서 그대로 튀기거나 굽는 반면 정통 루차이의 짜춘권은 재료를 계란지단으로 말아서 다시 밀가루를 얇게 입혀 튀기거나 굽는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중국요리인 짜춘권이 정통 루차이의 짜춘권과 모양과 조리법이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비교해보자.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

 

우선 두 짜춘권의 모양이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차이 짜춘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계란지단을 조리할 때, 계란에 소금과 전분을 섞는 것인데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도 이와 똑같은 조리법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의
지단 조리 과정

루차이 짜춘권의
지단 조리 과정

 

위 사진과 같은 지단의 조리법은 지단이 얇으면서 탄력을 가지게 하기 위함인데 비단 지단의 조리법뿐만 아니라 재료를 계란지단으로 말아서 다시 밀가루를 얇게 입혀서 조리하는 과정까지 꼭 닮아 있다. 여기서 밀가루를 얇게 입히는 것은 전병을 최대한으로 얇게 붙이기 위해서다.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의
마지막 조리 과정

루차이 짜춘권의
마지막 조리 과정

 

이와 같은 조리법은 중국요리에서 “炸(튀기는 조리법)”가 가지고 있는 “外脆里嫩(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을 실현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루차이 짜춘권과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은 그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의 98%가 산둥 쟈오둥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리고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만 타국에서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그 전통을 이어온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도 루차이 짜춘권은 전통을 이어온 산동 지역의 특별한 향토음식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루차이 짜춘권과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은 식재료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루차이 짜춘권의 식재료에는 봄을 상징하는 나물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가죽나물 순(香椿芽)이다. 다른 계절에는 부추를 사용한다고도 하는데3) 한국의 중국요리 짜춘권에는 봄을 상징하는 그 어떤 식재료가 사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한국에서는 춘권(春卷/)에 대해 사뭇 다른 설들이 존재하고 있다. “춘권(春捲)이란 의미는 젊음과 인생만사의 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기원하며, 입춘(立春)과 절분(節分)에 먹는 세시(歲時) 음식이다.4)라는 설과 “춘권은 만두의 일종으로 중국 설날 음식이다.5)라는 설 그리고 “중국에서 봄에 열리는 신년 행사인 춘절에서 먹었던 것으로부터 유래하였다.6)라는 설 등이다. 이와 같은 설들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1989 4 13일자 매일경제 8(사회면)을 보면 봄철 별미라는 제목에 “…불도장요리 외에도 중국식 한방요리, 봄맛을 상징하는 ‘자춘권’ 등 중국음식 중에는 희귀한 것들이 아주 많은 편이다. …”7)라는 기사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짜춘권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간다는 증거다.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니까 재료의 선택에 있어 그 의미를 두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다.

 

언제부터인지 짜춘권에 양파, 당근, 피망, 양배추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봄과는 전혀 관련 없는 채소들이다. 다소 억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일반 중국요리 식당에서, 짜춘권 속을 만드는 재료에서 해삼과 새우를 빼고 그대로 조리하면 고추잡채가 된다. 꽃빵이 항상 붙어 다니는 그 고추잡채 말이다. 이 고추잡채에서 죽순을 빼고 당면을 더하면 잡채요리가 된다. 이것을 밥 위에 얹으면 잡채밥이 된다. 잡채밥의 재료에서 해물과 고춧가루를 넣고 볶으면 술안주로 인기인 짬뽕국물이 된다. 여기에 당면을 빼고 면에 말면 짬뽕이 되고, 고춧가루를 빼면 백짬뽕이 되고, 볶는 과정을 생략하고 계란을 풀면 우동이 되고, 전분을 첨가하면 울면이 된다. 다시 말해 식재료가 매우 한정적이다. 이 글은 이러한 원인을 하나의 조형물에서 찾는다.

 

푸성귀전 조형물

 

이 조형물을 보면, 바닥에는 양배추, 당근, 양파, 피망이 널려 있고 파는 사람의 손에는 우엉이 들려있다. 그것을 일본 사람에게 파는 사람이 바로 화농(華農) , 지금 화교의 1세대다. 그들의 고객은 주로 일본인이다. 일본인의 수요에 따라 본토에서 그 씨앗을 가져와 농사를 지었다. 다시 말해 당시 일본사람이 즐겨 먹거나 좋아하는 채소임이 분명하다. 이 채소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채소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한국의 중국요리가 어떤 수요로 인해 시작되고 어떤 요인으로 인해 지금의 모습까지 왔는가 이다. 지금 이렇게 보면 한국의 중국요리에는 일본의 요소들이 농후하다. 대표적으로 ‘다꾸앙(다꾸앙즈케, 沢庵漬け)’을 밑반찬으로 내놓는 것이 그러하다. 만약 일본사람들의 수요로 인해 한국의 중국요리가 시작되었다면 이제는 지금의 수요에 따라 변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여기 짜춘권을 조리하는 한 중국요리 종사자의 인터뷰가 있다.

 

짜춘권을 조리하는 중식요리사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라고 한탄하면서 인터뷰를 마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 중국요리의 현주소다. 현재 한국의 많은 중국요리 식당에서 짜춘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다리 달린 것은 의자만 빼고, 날개 달린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 먹는다.”라는 속된 말처럼 중국요리의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그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 또한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수요에 맞는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는 한국의  중국요리들이 나올 때이다. 한국의 중국요리 종사자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필자소개>

주희풍, 1975년생. 인천화교소학, 인천중산중학 졸업.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image.baidu.com

http://baike.baidu.com

http://image.baidu.com

http://cafe.naver.com

http://www.sbs.co.kr/main.do

http://blog.naver.com

http://life.ijntv.cn

http://blog.naver.com

http://life.ijntv.cn

http://www.sinpomarket.com

http://www.sbs.co.kr/main.do

 


1) ‘炸春卷’을 ‘자춘권’으로도 많이 쓰인다. 예를 들면 1989 4 13일자 매일경향 8면 사회기사가 그러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炸春卷’을 ‘짜춘권’으로 더 많이 표기한다. 예를 들면 2014 12 22일 방송된 sbs ‘생활의 달인’편이 그러하다.

 

2) 루차이 짜춘권은 ‘博山炸春卷(보산짜춘권)’을 말한다. 博山(보산)은 중국 산둥 성(山東省) 쯔보(淄博)에 있는 지역명이다.

 

3) 百度百科 참고.

http://baike.baidu.com/view/2913528.htm

 

4)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89932&cid=48164&categoryId=48206

 

5) 두산백과 참고.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82125

 

6) 위키백과 참고.

http://ko.wikipedia.org/wiki/%EC%B6%98%EA%B6%8C

 

7) 1989 4 13일자 매일경제 8면에서 인용.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1300099208001&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89-04-13&officeId=00009&pageNo=8&printNo=7112&publishType=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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