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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56/2015.04] 논단_중국의 지폐 발전 특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4 조회수 105

논단_중국의 지폐 발전 특징


김상욱 _ 배재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화폐는 인간의 경제행위를 도와주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화폐를 통해서 거래가 이루어지며, 거래는 경제활동을 대표한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지폐를 이용하고 있다. 이미 북송(北宋) 시대에 오늘날의 지폐에 해당하는 교자(交子)를 거래에 이용하고 있다. 지난 1천 여 년의 중국의 경제발전의 특징을 지폐를 통해서 접근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지폐는 그것이 그 당시 경제상과 사회상을 대변하는 중요한 도안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도안들은 지폐의 발전 역사일 뿐만 아니라 바로 경제발전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즉 지폐의 도안을 통해서 당시의 중요한 경제사적인 의의를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원(元) 중통초(中统鈔)


중국의 봉건사회에서 지폐는 거래수단의 주(主)가 아니라 부(副)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백은(白銀)은 금융거래에 있어서 가장 안정적인 가치를 가진 거래수단이었다. 왜냐하면 백은은 태환에 대한 신용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폐는 금융기관이 태환에 대한 신용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봉건사회는 신용이 거래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물이 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원(元) 나라가 설립되면서 지폐의 유통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원은 건국과 동시에 지폐를 발행하였다. 원 은 기마문화(騎馬文化)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동전보다는 휴대가 간편하고 가벼운 지폐가 더욱 사용하기에 편리하였다. 원 지폐의 특징은 발행 시간이 장기적이고 발행 지역은 광범위하며 또한 대량으로 유통되었다는 점이다. 원 나라의 지폐는 중통초(中統?鈔, 지원초(至元鈔), 지정초(至正鈔)로 발전하고 있다. 원 나라의 지폐는 강력한 정부 주도로 발행되고 유통되었다. 기본적으로 원(元)의 지폐는 송(宋) 때부터 발전하고 있는 지폐를 제도적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특히 원은 『지원보초통행조례(至元寶鈔通行條例)』를 제정하여 지폐의 제작, 발행, 유통 및 위조에 대한 처벌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 나라의 지폐제도는 이후 중국의 지폐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봉건사회의 지폐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발행하였다. 북송(北宋)의 교자포(交子鋪), 남송(南宋)의 회자무(會子務), 금(金)의 교초고(交鈔庫), 명(明)의 보초제거사(寶?提擧司), 청(淸)의 호부(戶部)는 봉건사회에서 지폐발행을 담당한 주요 정부금융기관이다. 그리고 전당(典当)과 전장(钱庄)은 지폐를 발행하는 민간금융기관이다. 정부와 민간이 모두 지폐를 발행하기 때문에 봉건사회의 지폐는 정권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신용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민간에서 발행되는 지폐로 인해 신용도가 크게 저하될 소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특히 봉건사회의 지폐는 상업거래를 원활하게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의 성격도 가지지만 정부의 재정확충을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다. 즉 계속되는 전쟁과 황실의 막대한 자금지출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거두는 세금 이외의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하였다. 그것을 바로 지폐를 발행하여 필요한 물자와 실물을 획득하는 것이다. 봉건사회의 이와 같은 지폐발행의 폐단은 봉건사회를 지탱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너뜨리는데 직간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근대시기 즉 중화민국(中華民國, 1912∼1949년) 시기의 지폐는 매우 복잡한 역사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혁명을 통한 중화민국의 성립은 건국 초기에 수많은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지폐는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봉건사회의 붕괴로 인한 새로운 질서의 확립 과정에서 가장 문란한 것은 바로 금융질서이다. 이 과정에서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각 지역의 군벌(軍閥)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은행과 금융기관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전쟁에 필요한 군비를 확충하려고 시도하였다. 특히 중화민국 초기의 지폐발전은 정치세력과 군벌세력의 발전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청 말기 정부는 부패한 정국을 혁신하고 외국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한 신군(新軍)을 편성하였다. 그리고 지역별로 그 지역을 책임지고 관할하는 군대를 편성하였다. 청이 멸망하면서 이들 지방세력 군대가 군벌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군벌은 격변하는 정세에 편승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산하고 있었다. 장개석(蔣介石)의 군대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이들 군벌은 자신의 지역에서 군비를 확충하기 위한 금융기관을 설립하고 지폐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지역의 군벌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군벌이 설립한 은행도 함께 합병되거나 도산되었다. 


중화민국은 대립과 모순으로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시기이다. 이 시기의 지폐발전은 아래의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중화민국 초기 군벌의 대립은 군사적 목적을 가진 은행을 우후죽순처럼 설립하였으며 이는 금융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중화민국 초기 북양정부(北洋政府)와 혁명정부 사이의 대립은 전쟁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은행의 설립을 무분별하게 조장하여 서민들의 금융질서를 문란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설립한 은행은 충분한 준비금이 없기 때문에 태환이 보장되지 못하였다.


둘째, 국가의 화폐발행을 통일하는 중앙은행의 설립이 실질적인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중화민국은 국가가 성립됨과 동시에 중국은행(中國銀行)을 설립하여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으나 교통은행(交通銀行)과 중앙은행(中央銀行) 그리고 중국농민은행(中國農民銀行) 네 개의 국가은행이 공동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체제는 194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중앙은행 하나의 체제로서 조정되었지만 당시 항일전쟁(抗日戰爭) 시기였기 때문에 제대로 역할을 담당하기가 힘들었다.


셋째, 중화민국 시기 중국 대륙은 일본에 의해 동북(東北) 지역을 점령당하여 지폐 발행에 의해서도 국토가 분리되었다. 이는 만주국(滿洲國)이 설립한 만주중앙은행(滿洲中央銀行)으로 인해 동북지역의 금융이 침탈당하게 되었으며, 화북(華北) 지역과 화동(華東) 지역도 일본군의 점령으로 금융기관이 설립되고 지폐가 발행되면서 서민들의 경제는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넷째, 중화민국 시기에는 중화민국이라는 주권 국가가 성립되었지만 국민당(國民黨)과 공산당(共産黨)의 대립으로 인해 해방구정부(解放區政府)가 존재하는 이원적인 체제가 성립되었다. 국민당 정부는 1928년 북벌을 성공함으로 형식적으로는 중국 전국토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금융의 통일은 여전히 미완성된 과제였다. 국민당 정부는 화폐발행의 통일을 위해 1935년 법폐정책(法幣政策)을 실시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반면 공산당은 해방구의 건설과 해방구 내의 금융을 통일하는 은행을 설립함으로써 중국 내에 또 다른 ‘중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해방구에서 발행된 지폐는 상대적으로 열악하였다. 심지어 홍군(紅軍)의 유격대가 설립한 은행이 발행한 지폐 중에는 천에 기름을 바른 종류도 있었다. 해방구의 은행과 지폐는 중국의 지폐발전역사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즉 해방구의 지폐는 후일 인민폐의 전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지역성 은행의 설립과 지역성 지폐의 발행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지방정부의 세력이 강하였다. 봉건사회에서 지방의 세력이 때로는 중앙을 전복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중화민국 초기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지방의 군벌은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각 지방정부들은 자신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은행을 설립하고 지역 내에 주로 유통되는 지폐를 발행하였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역성 은행을 설립하였으며 1935년 법폐정책을 실시하면서 대부분은 영업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의 영향력이 전국의 금융을 통일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몇몇 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역성 은행이 지폐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1942년 화폐통일정책이 실시된 후 국민당 정부의 세력에 있는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성 은행이 더 이상 지폐를 발행하지는 못하였다.


여섯째, 중화민국 시기에 중국에는 외국자본과 공동출자 한 은행도 지폐를 발행하고 외국은행의 지폐도 유통되었다. 제국주의 세력과 자본은 아편전쟁부터 중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청 말기에는 은행설립을 통하여 중국의 자산을 획득하기 시작하였다. 중화민국 초기에 북양정부는 심지어 외국은행들에게 지폐발행 권한을 비준하였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외국은행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영업시간이 길지는 못하였다. 이들 외국은행들은 주로 홍콩, 마카오, 그리고 상해 등 지역에서 영업을 전개하였다.


지폐는 한 사회의 발전과정을 반영하는 거울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봉건사회에서부터 지폐를 발행하고 실제 거래에 이용하고 있다. 특히 봉건사회에서는 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비상시에는 지폐가 거래에서 구축되고 은화가 더욱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본격적인 지폐사용은 청나라 말기부터 시작되고 있다. 특히 중화민국 시기에는 사회의 대립과 모순을 지탱하는 주요한 경제적 기초로서 지폐가 이용되기도 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 성립된 후 비로소 중국의 지폐는 하나로 통일되었다. 봉건사회에서 지폐는 거래의 부수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지만 근대시기에서는 주요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봉건사회에서 지폐는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근대시기에서는 오히려 복잡한 사회구조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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