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알림
Information / News

열린게시판

제목 [Vol.56/2015.04] 기획_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4 조회수 60

기획_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4)



서학보 _ 인천차이나타운內 중국음식점 경영


짜장면. 한국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외래 음식 이름이다. 어쩌면 하도 익숙한 이름이라 우리 음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짜장면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따로 적을 게 있나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많이 알려진 만큼 또 잘못 알려진 것도 많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이 짜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짜장면에서 우선 면(麵)자를 한 번 보자. 면이라는 것은 필시 길쭉한 모양이다. 그런데 왜 한자에서는 평평하고 널찍하다는 뜻의 ‘면(面)”자가 들어가 있는 것일까? 사실, 중국에서 면(麵)은 본래 길쭉한 가락의 형태가 아니라 지금의 전이나 병처럼 널찍한 것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한(漢)나라 때 밀가루를 반죽해 병(餠)처럼 만들어 끓여먹는 것이 면의 시초라고 되어 있다. (그것도 서민이 아닌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수제비, 국수 등을 통칭해 면이라 한다. 오늘날 가락 형태의 국수는 당(唐)나라 때 처음 등장해 보급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 짜장면의 장(醬)에는 또 어떤 유래가 숨어 있을까? 장의 제조방법은 동진(東晉) 때 제민요술(齊民要術)이란 책에 처음 나온다. 그 방법은 한국의 장 담그는 법과 흡사하다. 장을 기름에 튀겨서 양념한 뒤에 면과 같이 먹는 게 바로 짜장면이다. 옛날에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관계로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소금을 많이 첨가했다고 한다. 염분 농도가 18~20% 정도이다. 그래서 갓 담근 장은 짜고 써서 먹기가 힘들다. 숙성시간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통 중국에서 좋은 장은 3년 이상의 숙성시간이 필요하다.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5년 아니, 7년 이상 숙성한 것도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숙성된 장은 산화작용을 통해 색깔이 짙게 변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이 장을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더 이상 수입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이때부터는 화교들이 직접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엔 갓 담근 장의 색깔이 누런빛을 띤 탓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색소를 첨가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싼값의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되도록 장을 아껴야했기 때문에 색소 첨가는 갈수록 증가했다. 한국의 짜장면이 지금처럼 까맣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의 결과이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본래의 중국 갈색 짜장면이 한국에서 검정색으로 변하게 된 데에는 그다지 좋은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닐 터이다.


중국의 짜장면한국의 짜장면


그럼 짜장면은 왜 쌍‘ㅈ’이 들어간 ‘짜’를 쓰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의 문화적 영향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짜장면이 이 땅에서 자리 잡아가던 시절이 일제강점기이다. 그래서 많은 중국음식의 이름은 일본어식 외래어 표기를 따랐다. 예를 들면, 짜장면, 탕수육, 울면, 유산슬 등등. 심지어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다. 우동, 짬뽕이 그 예이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중화요리라는 한자도 일본식 한자표기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요리(料理)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대신에 차이(菜)를 많이 사용한다.


19세기 말 인천 개항과 더불어 중국이민자들이 대량 유입되었다. 그에 따라 다른 중국음식과 함께 짜장면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당시의 짜장면은 지금과 그 형태가 많이 다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짜장면의 조리법도 많이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짜장면, 간짜장 등등이 다 그 시대에 맞게 진화를 거듭한 것이다. 중국 역사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짜장면의 시초는 청나라 중엽의 란러우미엔(爛肉麵)에서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 1905년 일본의 아지나모도(味元)라는 인공조미료가 우리 밥상에 나타나기 전 짜장면의 조리 방법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저 고기와 장 그리고 약간의 파와 생강을 기름에 볶아 양념하고 면 위에 개인적 취향이나 계절 변화에 따라 약간의 야채와 함께 비벼먹는 정도였다. 이것도 서민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때론 장을 그냥 기름에 볶아서 고기 없이 양념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처음 판매되는 짜장면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후, 미원이 보편화되면서 약간의 고기에 야채를 듬뿍 넣고 장과 같이 볶아서 만든 것을 간짜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짜장면을 대중화하기 위해 이 간짜장에 물을 넣어 미원으로 맛을 내고 전분을 풀어 넣은 것이 바로 오늘날의 짜장면이 된 것이다.


란러우미엔(爛肉麵)



미원


그러나 이 짜장면마저 한때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왜일까? 첫째, 대한민국은 면을 만드는데 필요한 밀농사가 그다지 발달된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밀가루 자체가 귀하다. 밀가루를 흔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6·25 이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6·25 이후에 소위 ‘옛날 짜장’이라는 물짜장이 한국 짜장면의 대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둘째, 짜장면의 장이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라 그 시절의 물류상황을 보면 수입품은 그다지 저렴할 리가 없다. 셋째,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량의 식용유가 필요한데 살림이 어려운 시절에는 식용유 그 자체가 귀한 식자재였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과거에 짜장면이 어떠한 형태로 있든 오늘날만큼 대중화되고 서민적인 음식은 아닌 듯싶다. 그래서 개항 때 부두노동자들이 야식으로 짜장면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화교 어르신들은 말한다. 화이트칼라층도 날마다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짜장면을 처음 팔기 시작한 곳으로 인천의 공화춘(共和春)을 든다. 그러나 사실,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옛 공화춘 집안의 종부인 우해덕원 여사도 사실이 아님을 밝힌 바 있다. 필자도 이것 때문에 많은 탐구를 했지만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지면의 제약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어찌됐건 짜장면 공화춘 창시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다만, 짜장면은 인천차이나타운 근처 어느 작은 식당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로 전해져올 뿐이다.


그럼 좋은 짜장면은 어떻게 구분하고, 또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좋은 짜장면은 일단 화학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고 그윽한 장 내음이 향긋해야하고 면발이 탱글탱글해야한다. 여름에는 면을 시원하게 해서 약간의 식초, 참기름, 겨자를 첨가하고 적당한 야채와 함께 맛있게 비벼먹으면 별미가 된다. 원래 중국에서 짜장면은 겨울에 따뜻한 육수를 부어 비벼먹지만 여름에는 차가운 우물물에 국수를 차갑게 한 다음 시원하게 비벼먹는 음식이었다. 이 한편의 이야기가 짜장면을 보다 더 맛있게, 의미 있게 접근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필자소개>

서학보(徐學寶), 1959년생. 인천화교소학, 인천중산중학 졸업, 국립타이완사범대학 중퇴.

현재, 인천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점 “만다복(萬多福)”, “본토(本土)” 경영.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image.baidu.com

http://terms.naver.com

http://live.xj163.cn

http://image.baidu.com


0 comments
작성자 패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