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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53/2015.01] 기획_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 양장피(兩張皮)의 양면성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4 조회수 210

기획_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    양장피(兩張皮)의 양면성



연재에 앞서

 

중화요리라고 하면 언뜻 떠올리는 것이 북경요리, 사천요리, 상해요리, 광동요리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른바 주류계통의 요리 외에도 중화요리 안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래저래 나름의 풍미를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중국 내 지방요리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요리들이 한데 어울려 중화요리 전체의 계통과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화요리 전통이 있다. 그게 바로 ‘중국 밖 중화요리’이다. 이러한 ‘중국 밖 중화요리’는 정작 중국인에게는 ‘정통 중화요리’가 아닌 그것의 유사품 혹은 ‘중화요리 아닌 중화요리’ 쯤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현지화하고 토착화된 탓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더 이상 정통 중화요리의 방계나 모조품 따위로 격하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중국 밖에서 새롭게 ‘창조된’ 또 하나의 중화요리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오늘날 세상에서는 이러한 ‘변질된 중화요리’를 먹는 이들이 중국에서 ‘제대로 된’ 중화요리를 먹는 이들보다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중국 밖에서 창조된 중화요리는 중화요리의 외연을 풍부히 하고 확장하는데 톡톡히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한국에서 창조된 한국식 중화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련다. 중화요리는 단순히 먹거리로서의 특성뿐만 아니라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시스템이다. 따라서 그 안에는 화교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고, 그들의 역사와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돈과 권력도 어김없이 따라붙을 것이다. 이렇듯 한국중화요리와 관련해 때로는 거창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소하기도 한 이야기들을 그것도 화교들의 육필에 담아 일반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본뜻이다.


 양장피(兩張皮)의 양면성


주희풍1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동네 ‘중국집’(한국인들은 보통 중국음식점을 이렇게 부른다.)에서 쉽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2011년 미국 중국요리 콘테스트에 소개되어 많은 중국요리 전문가들과 미식가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요리를 소개한 요리사는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중식당 《Chef Lee's Peking Restaurant》의 리쉐멍(李學孟) 조리장이다. 특히, 이 요리는 미국의 인기 요리프로그램 《YANCANCOOK》의 진행자 Martin, Yan(甄文達)의 극찬을 받은 바 있고, 그의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시청자들에게 직접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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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캡쳐화면


 


이 요리는 미국 중식당에서 흔히들 ‘Double Skin’이라고 불린다. 바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양장피(兩張皮)’이다. 정식명칭이라면 ‘차오러우량장피(炒肉兩張皮)’쯤 될 것 같다. 중국에도 ‘우차이라피(五彩拉皮)’라고 이와 유사한 요리가 있지만, 해물이 없고 겨자소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양장피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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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차이라피(五彩拉皮)

양장피잡채

Double Skin


  


물론 이 글은 ‘양장피’에 대한 전문 소개 글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도 흔해빠진 동네 중국집 요리가 아니, 중국 사람보다는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먹어봤을 법한 요리가 어떤 경로로 미국으로 넘어갔고 Double Ski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지를 짚어보고자 함이다.


 


중국요리는 산동요리(魯菜), 스촨요리(川菜), 광동요리(), 푸젠요리(), 양저우요리(蘇菜), 저쟝요리(浙菜), 후난요리(湘菜), 훼이저우요리(徽菜) 등 크게 8대 요리계통으로 나뉜다. 중국 사람이라면 이 중에서 루차이(魯菜) , 산동요리를 으뜸으로 꼽는데 이론이 없을 게다. 베이징을 포함한 톈진, 다롄 등 중국 동베이(東北) 지역 쪽 요리 모두 이 ‘루차이’에 속한다. 타 계통의 요리와 비교했을 때, 루차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센 불에서 순식간에 볶아내는 ‘바오(), ‘펑()’ 등에 있을 것이다. 예컨대 깐풍기의 ‘풍’이 바로 이 펑()의 잘못이다. 따라서 깐풍기는 루차이에 속하는 요리임을 알 수 있다. 중국 다른 지역, 이를 테면 스촨요리(川菜)의 고장인 쓰촨성(四川省)에서 깐풍기를 찾으면 대번에 돌아오는 답은 이럴 것이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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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大菜系


 


루차이에는 3가지 특색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쟈오동(胶東) 특색이다. 쟈오동()은 산동반도의 연해지역을 일컫는다. 그래서일까? 쟈오동의 요리 중에는 해산물 요리들이 특히 많고 지역적 특징을 말해주는 으뜸 요리도 대부분 해물요리들이다. 해삼탕과 해물잡탕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하고 일반 중국집에서도 자주 맛볼 수 있는 메뉴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의 98%가 쟈오동 출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그동안 청요리, 중화요리, 중국요리 등으로 부르면서 중국음식의 전부로 알고 즐겨먹던 요리가 실은 루차이 그 중에서도 쟈오동 특색을 지닌 산동요리였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중국요리는 크게 르차이(熱菜, 익힌 요리)와 량차이(凉菜, 냉채)로 구분된다. 량차이 즉, 냉채는 주로 애피타이저로 식탁에 놓이는 게 상식이다. 루차이 쟈오동 특색의 량차이(냉채)는 해산물을 익히고 식혀서 냉채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해파리냉채, 3, 4, 특품 냉채가 이러하다.


 


이제 양장피가 어떤 경로로 미국으로 넘어갔는지 보기로 하자. Double Skin과 양장피 그리고 우차이라피를 비교했을 때, Double Skin과 양장피는 매우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반면, 우차이라피는 그렇지 않다. Double Skin과 양장피에는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잡채볶음이 중앙에 있는데 반해, 우차이라피는 잡채볶음이 없다. 그리고 해산물이 Double Skin과 양장피에는 들어가지만 우차이라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Double Skin과 양장피는 같은 종류의 요리인 셈이다. 더군다나 요리이름 또한 매우 흡사하다. 따라서 쟈오동 출신의 재한화교들이 루차이에 속하는 쟈오동 특색의 요리 기술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고 다시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 갔을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60, 70년대 상당수 한국화교들이 한국을 떠나 미국, 일본, 타이완 등지로 재이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2011년 미국 중국요리 콘테스트에 양장피를 소개한 리쉐멍 조리장의 억양이 재한화교와 매우 닮아있다는 점도 공교롭다.


 


다음으로는 양장피가 왜 그렇게 중국요리 전문가들과 미식가들의 호평을 받았는지 짚어보기로 하자. 양장피의 조리법은 매우 특이하다. 먼저 냉채요리기법으로 요리를 하는데 신선한 야채와 해산물 등이 재료가 된다. 가지런히 접시에 준비하고 다시 별도의 야채와 고기를 루차이 특유의 조리 기법인 바오()로 뜨겁게 달구어진 팬에서 순식간에 조리하는 것으로 요리를 마무리한다. 다시 말해 양장피는 ‘르차이’도 ‘량차이’도 아닌 셈이다. 이 양면성을 갖는 어설픈 조화에 매개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양장피의 ‘피()’이다. 양장피의 피()는 양장피의 주재료이다. 통상 중국요리의 이름은 주재료가 뒤에 따라붙는다. 마치 탕수육의 주재료가 고기()인 것처럼 말이다. 중국에서는 라피(拉皮) 혹은 펀피(粉皮)라고 한다. 중국 북쪽에서는 주로 라피라고 부르고 남쪽에서는 주로 펀피라고 부른다(이하, 라피). 라피의 원료는 전분이다. 라피는 전분을 물에 희석시켜 온수로 가열하고 다시 냉수로 응축시키는 방식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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拉皮(라피)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액체인 전분을 고체로, 고체인 전분을 다시 액체로 그리고 다시 투명한 고체인 라피로 만든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매개체가 되는 양장피의 피() 또한 양면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피는 지에모(芥末, 겨자소스)에 버무리게 되는데 이 지에모의 ‘지에()’는 통상 “소개하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介’와 중국어발음이 같다. 그런데 이 ‘介’는 “∼ 사이에 있다” 혹은 “의지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겨자에 버무린 라피가 양장피를 르차이와 량차이 ‘사이에 있도록’ 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고, 르차이와 량차이가 서로 ‘의지하여’ 이 요리의 맛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른바 우의(寓意)적 해석이다. 이 ‘우의’는 중국의 명명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현대중국어에는 이른바 ‘양장피현상(兩張皮現象)’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가지 일을 두 가지 관점으로 보거나 한 가지 일에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때 쓰는 말이다. 동네 중국집에서 쉽게 배달 시켜 먹을 수 있는 양장피가 미국의 중국요리 전문가와 미식가들을 그토록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조리의 방법과 주재료의 선택에 덧붙여 혹시 이러한 우의(寓意)적 명명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양장피가 그렇듯 모든 요리에는 그 나름의 정보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요리를 먹으면서 그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까지 새길 수 있다면 이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www.56.com/u87/v_NTkwMjg1NDA.html(동영상 캡쳐화면)


http://baike.baidu.com/


http://blog.naver.com/


https://www.google.com 


http://baike.baidu.com/


http://baike.baidu.com/


 




1 주희풍, 1975년생. 인천화교소학, 인천중산중학 졸업.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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