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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9 /2014.09] 논단 _ 북경똥장수의 일상과 관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4 조회수 45

[Vol.49 /2014.09] 논단 _ 북경똥장수의 일상과 관행

신규환 _ 연세의대 의사학과

 

 

20세기 전반 북경사회에서 똥장수[糞夫]는 물장수, 장례업자와 더불어 北京三閥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민들의 일상에 밀착하여 시민들과 고락을 함께 한 직종이면서, 북경의 대표적인 하층민 중 하나였다. 북경똥장수는 청대에 들어서 정식 직업군으로 정착했고, 독특한 사회구성과 직업적 관행을 구축하였다. 청대로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북경똥장수 사회에 대한 연구는 북경사회의 구조와 일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북경똥장수는 山東省 황하강 이북의 서북 지역 출신이 대다수를 이룬다. 황하의 범람, 각종 자연재해, 전쟁과 토비 등의 잔악행위 등을 피해 북경으로 이주했다. 산동인들은 북경사회에서 가난하고 무식하고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다. 산동인은 상대적으로 동향조직도 강고하지 않아 사회적 출로 역시 상대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었다. 산동인들에게는 이주민들의 보호와 편의기구로 작동했던 會館이 타 지역에 비해 극히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산동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배타적인 동향집단을 형성해 나갔다.

 

산동인들이 배타적인 동업집단을 구성한 곳 중의 하나가 똥장수 사회였다. 그들은 분뇨채취구역에서 자신들의 영업권을 설정해 나갔다. 이른바 糞道라는 이름으로 분뇨채취구역을 나누었는데, 분도는 청 乾隆帝이래로 분뇨처리업자들에 의해 임의로 획정되어 임대, 양도, 매매 관행을 확립해나갔다. 이러한 관행은 똥장수사회의 안정과 수익창출에는 기여했지만, 시민갈취의 지속과 시정개혁의 난항으로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똥장수 사회는 자본가인 糞廠主, 분도를 소유한 糞道主, 임대 분도에서 일하는 똥장수 노동자 등으로 구분되었다. 분도주는 관행적으로 분도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적지 않은 분도주들은 사실상 똥장수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분도주 대부분이 스스로 똥지게를 졌고, 분창주와 종속관계였다. 분창주는 똥장수에게 숙식과 월급을 제공하는 보호관계였으나, 똥장수 노동자는 분창주의 일상적인 착취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똥장수 노동자들은 계급적 이해관계에서는 분창주와 대립관계에 있었지만, 열심히 일해서 분도주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따라서 시정부의 분도개혁은 똥장수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삶의 희망을 빼앗는 일일 수 있었다.

 

똥장수들은 분뇨채취구역에서 독점적인 영업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웃돈을 요구하거나 태업을 자행함으로써 시민들을 상대로 일상적인 갈취와 횡포를 가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시정부는 분뇨처리업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하였다. 南京國民政府 성립 이후 北平市政府는 분뇨채취구역을 시정부로 환수하고, 분뇨처리업을 시정부가 관리하는 糞業官辦 개혁안(1차 개혁안)을 선포하였다. 이 개혁안은 기존의 관행을 일소하고, 분뇨처리업을 시정부의 직접적인 관리하에 두는 것으로 시정부, 시민, 똥장수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시정부의 개혁안에 대해 똥장수들은 대규모 시위로 응대했다. 똥장수들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분창주들의 입장에 섰다. 결국 시장과 위생국장이 사임하면서 제1차 개혁안은 실패했다. 이후 시정부는 분업관판안이 좌절되자 분뇨처리업의 주도권을 똥장수들에게 넘기고 시정부는 관리감독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새로운 개혁안인 官督商辦(2차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2차 개혁안은 분도회수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제1차 개혁안에 비해서 개혁의지가 쇠퇴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똥장수 등기, 분도등기, 분구개량 등 분뇨처리업에 대한 일정한 개혁을 진행하기도 했다.

 

분뇨처리업의 개혁안을 둘러싸고 똥장수 사회는 단결과 분열을 경험했다. 일부 분창주들은 시정부에 협력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내기도 했다. 중일전쟁 이후 똥장수사회는 또다른 위기와 기회에 직면했다. 점령당국은 똥장수사회에 자율과 복지를 제공하면서, 점령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점령당국은 분뇨처리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분뇨처리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은 신중국 성립 이후의 일이었다.

 

 

* 이 글과 그림은 신규환, 『북경똥장수: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푸른역사, 2014)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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