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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8 /2014.08] 기획 _ 썩어 문드러진 상처 - 중국향촌분규의 최대 피해자, 여성 (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4 조회수 50

[Vol.48 /2014.08] 기획 _ 썩어 문드러진 상처 - 중국향촌분규의 최대 피해자, 여성 (3)

사건 3. 도로 분규와 婚喪事의 禁忌1)

장샤오훙(張曉紅) _ 중국 화남사범대학

손승희 옮김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형사 판결문에는 “여성 범죄자 Sly 집과 이웃 趙文學 집은 가옥 流水와 도로문제로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로 인해 조문학의 동생 趙文書의 부인 林福英과 피고 Sly 사이에 여러 번 언쟁과 몸싸움이 있었다”고 쓰여 있었다. 여성 범죄자 Sly는 인터뷰 중에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원래 두 집안은 사이가 좋았는데 자신의 집은 바깥쪽이었고 조문학네 집은 안쪽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집은 담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옆집은 들어오고 나갈 때 자신의 집 문 앞으로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어머니의 친정집에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이 나가는 날과 제삿날 옆집 어머니가 상복을 입고 자신의 집 문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Sly 집 사람들이 굉장히 마음이 상했다. 농촌에는 이와 관련된 금기가 있는데, 상복을 입고 어떤 집을 지나가면 곧 그 집안사람들에게 재앙(액운)이 닥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후 Sly 집은 자기 집 마당에 담장을 치기로 결정했다. 이는 곧 옆집의 길을 막는 것이어서, 옆집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면 자신의 집 앞마당을 돌아서 뒤로 나 있는 길로 나와야 했다. 이 때문에 두 집안이 원수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옆집은 쇠갈퀴로 그 담벼락을 무너뜨려 버렸고 Sly집은 또 다시 담장을 쳤다. 결국 옆집 조문학 집안사람들이 와서 소란을 피웠을 뿐 아니라 조문학의 동생, 동생댁, 조문학의 어머니, 아버지 등 온 식구들이 종일 문제를 일으키고 걸핏하면 담 밖에서 한참씩 욕을 퍼부어댔다. Sly 남편은 향 중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집안에는 그녀와 노인, 아이들만 있었다. 한번은 춘절기간에 옆집이 자기 집 마당에다 더러운 물을 쏟아버리고 바깥에서 또 계속 욕을 퍼부었다. 그녀는 나가서 싸우고 싶었지만 남편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필자와의 면담 중 Sly가 계속 강조했던 것은 자기 집 문 앞은 결코 길이 아니고, 촌의 가가호호 모두 규획이 잘 되어 있는데 자기 집 문 앞은 마당일 뿐 원래 길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 후 필자는 Sly의 집안 상황을 잘 알게 되었고 Sly의 남편도 만나게 되었다. Sly의 남편은 70년대에는 여기에 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필자에게 말해주었다. Sly의 남편 얘기는 나중에 집 마당 오른쪽에 두 칸짜리 주방을 짓게 되자 집안을 싸고 있던 담을 아예 허물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또 몇 년 전 촌에서 도로를 건설하기로 했다가 향에서 동의하지 않아 촌에서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향에 가서 촌 건설계획 관련 문건을 찾아보았는데 어디에도 그 집 앞에 길을 만들 계획이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Sly집 문 앞이 도로인지 아닌지에 대해 두 집안사람들은 각각 다른 주장을 했다. 그래서 두 집은 담을 사이에 두고 늘 마주쳤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언쟁이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몸싸움을 했다. 村委의 민사조정 주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도 “촌에는 그녀들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걸핏하면 두 집이 촌으로 달려오거나 향에 찾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조정을 해도 소용이 없고 모두 고집불통들”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Sly와 옆집이 크게 싸우다가 충돌이 발생했고 옆집 며느리, 남편, 어머니, 동생, 동생댁 등과 Sly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급기야 Sly가 농사일에 쓰는 예리한 칼로 옆집 어머니를 찔렀고 결국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되었다. Sly도 이로 인해 사형 구형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촌에서는 조문학의 집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고 이로 인해 두 집은 왕래가 완전히 단절되었다.

 

전체 사안의 논쟁과정에서, Sly집도 그렇고 담을 사이에 둔 옆집도 그렇고 하나같이 옆집 사람이 상복을 입고 자기 집 앞을 지나갔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논쟁은 모두 Sly집 문 앞이 도로냐 아니냐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분규 쌍방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촌에서, 향에서 심지어는 현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어떻게 판정이 나더라도 결국 한쪽은 다른 한쪽이 분명 ‘꽌시’를 통해 사람을 동원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 번째 안건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전에 잘 다니던 길을 Sly집이 왜 갑자기 옆집이 지나다니는 것을 원치 않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Sly 남편은 필자와의 면담 중에2) 문득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불길한 일(白事)3)입니다. 만일 ‘길한 일(紅事)’이라면 마당으로 지나가는 것은 물론 담을 넘어서 마당으로 뛰어 들어온다 해도 우리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아한 것은 중재자와의 인터뷰에서 Sly 집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제기한 적이 없었고, 쌍방의 논쟁에서 초점이 되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길’이었다. 몇 십 년 전 Sly집 문 앞은 분명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촌에서 새로 택지를 나누게 되자 옆집 사람들이 자기 집 앞으로 지나다니는 것이 편리하고 Sly집도 별로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지나다니게 되면서 길이 되었던 것이다.’ 내심 Sly 집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옆집에게 人情을 베푸는 것이고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옆집 어머니가 상복을 입고 Sly집 문 앞을 지나갔던 것이다. 사람들의 전통 관념에서 보면 이것은 禍를 불러오는 것일 뿐 아니라 Sly 일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아마 이것이 Sly 일가가 늘 마음에 두고 있었던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분규는 이익이 충돌할 때 뿐 아니라 감정이 상할 때도 발생한다. 처음 두 집이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을 때, 여성 범죄자 Sly 입장에서는 옆집의 행위는 자기 집안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풍습 습관으로 보아도 자기 집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해를 받은 한쪽이 분규의 공개화를 결정하고, 특히 모순을 정식 분규로 승급시켜 제삼자의 판결을 요할 때는 그럴듯한 근거를 들어야 하고, 국가 법률이나 정부의 규범을 가지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분규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정이나 풍속 혹은 평소 마을 사람들의 친소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항상 마주대하는 이웃 간의 情도 사람들은 극도로 이성적이고 규범적인 행위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법제 시행 20여년 만에 실질적으로 촌민의 몸에 체현된 것이었다. 즉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농민들조차도 분규가 일단 공개화 되면 “논리()”로 자신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논리”라는 것은 바로 법률이나 국가, 정부가 만든 각종 규장제도이다. 그래서 본 안건에서, 두 집안의 모순은 시종 Sly집 문 앞이 과연 길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있을 뿐, 여성 범죄자 Sly집은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옆집 어머니와 그 친정식구들이 상복을 입고 자기 집 문 앞(혹은 그들의 관념 속에 이 문제의 근본은 곧 자기 집 마당이다)을 지나갔다는 사실을 제기하지 않았다. 옆집의 이러한 행위는 자기 집에 禍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전통적인 심리는 더더욱 말하지 않았다. 두 집안은 촌에서 혹은 향에서 각종 정책, 토지 구획방안, 촌 도로 건설 계획 등 끊임없이 관방의 것으로 자기의 ‘논리’를 찾으려 했다. 유감스럽게도 촌의 계획이라는 것은 바뀌기 일쑤이고 제정되는 것도 있고 뒤집히는 것도 있고, 결국 Sly집 문 앞이 길이냐 아니냐의 방안도 결과 없이 끝났다. 두 집안의 논쟁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고 그들은 끊임없이 상급 정부를 찾아 더욱 권위 있는 의견을 얻으려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두 집안은 상대방이 윗사람과 더욱 ‘꽌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각종 해결방안에 대한 공정성은 더욱 의심받게 되었으며 내면의 불만도 점점 커졌다.

 

촌장과 촌민조정위원회의 촌 간부를 인터뷰할 때도 그들이 계속 강조했던 것은 이러했다. “이 두 집은 촌 간부를 찾아온 적이 여러 번 있었고, 우리도 이들을 조정하고자 양쪽에 권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양쪽 집 남자들은 아무 일도 없는데 꼭 여자들이 하루 종일 싸웁니다. 향에서도 그녀들을 조정했지만 듣지 않아서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여자들은 정말 너무 고집불통입니다.

 

중국 농촌의 중재제도는 중국의 가장 특색 있는 분규 중재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학자 高見澤磨는 이것을 간단하게 “이치를 논하고, 마음으로 승복하는(說理-心服)” 과정이라고 귀결 지었다. 중재의 핵심은 당사자 쌍방이 서로 자신의 의향을 조정하는 것이다. 법규를 가지고 그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의 관계에 새로운 공동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서로간의 태도와 의향에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중재자는 당사자가 공식적인 규범을 가지고 쌍방의 향후 관계를 수긍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상호 존중하고 신뢰와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4)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중재는 담판의 연장이기도 하고, 이 ‘담판’과정에 중립적인 제삼자가 참여한다. 제삼자는 때로는 경청하고 평가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때로는 쌍방을 질책하기도 하고, 분노하고 억울하고 혼란스러운 당사자의 울화를 가라앉히는 소화기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농촌 분규의 중재에는 항상 덕망 있는 노인이나 촌장, 향장과 같은 ‘신분’의 인물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중재자가 행사하는 것은 행정 권력이나 기타 합법적인 권력이 아니라 전통 향촌사회에서의 촌민의 중재인에 대한 신임과 존중이다. 소송과정이 대항적인 성질의 것이라면, 중재는 왕왕 분규의 당사자가 자기의 권리를 쟁취하고 보호한다는 점에서 상호 타협을 의미한다. 이것이 중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중재의 독특한 매력이다.5)

 

본 안건에서는 중재인을 포함하여 누구도 분규 당사자 간의 진정한 문제의 난점을 제기하지 않았다. 쌍방 당사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 ‘법’을 찾으려 했고, 중재인은 자신의 합법적 권위를 가지고, 쌍방이 문제가 아닌 문제에 휩싸여 있는 그것이 당연히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쌍방 당사자의 말에서 더욱 심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진정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본안건의 분규과정에서 계속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

 

 


1) 안건 3은 여성 범죄자 Sly의 구술에 의거한 것이다.

 

2) 필자는 안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범죄자의 고향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3) 白事는 喪事를 의미하고 紅事는 길한 일, 즉 결혼, 출산 등을 의미한다.

 

4) []Lon Fuller, 沈恒斌主編,『多元化糾紛解決機制原理與實務』, 厦門大學出版社, 2005, 417쪽에서 재인용.

 

5) 沈恒斌主編,『多元化糾紛解決機制原理與實務』, 厦門大學出版社, 2005,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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