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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7 /2014.07] 논단 _ 동북지역의 사구건설: 선양의 사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4 조회수 80

[Vol.47 /2014.07] 논단 _ 동북지역의 사구건설: 선양의 사례

박철현 _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

 

1 _ 단위체제의 해체와 사구건설

 

199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도시부문 개혁의 심화로, 국유기업을 핵심으로 하는 단위체제의 점진적 해체와 공유제 주택제도의 폐지로 단위 구성원들의 소속감도 크게 약화되자, 기존의 단위를 통해서 인민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지배하던 국가가 변화된 시대적 상황에 적합한 도시의 기층사회관리 기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사구(社區)”가 기존의 단위체제를 대체할 유력한 기제로서 제기된다. 사구는 서방의 커뮤니티(community)를 번역한 말로 도시지역 주민의 거주지역에서 국가와 사회가 만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도시지역의 기층정치공간인 사구정치의 행위자는 가도판사처, 거민위원회, 업주위원회, 주택관리회사로 대별된다.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는 도시지역 지방정부의 최말단 행정기구로 거민위원회의 사구업무를 지도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가는 단위를 통해서 사회를 관리했고 도시주민의 대부분은 단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 가도판사처가 관리를 하는 대상은 실업상태와 빈곤층 주민뿐이었다. 거민위원회(居民委員會)는 주민들의 선거로 구성되는 대중자치조직인데 주민복지 치안유지 분쟁해결 등 사구의 각종 업무를 담당하는데, 기본적으로 기층의 국가행정조직인 가도판사처의 지도를 받는다. 업주위원회(業主委員會)의 업주는 주택소유주를 가리키는 말로, 업주들의 주택과 거주공간이라는 합법적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는 대중적 자치조직이 바로 업주위원회다. 주택관리회사(物業公司)는 업주위원회의 위탁을 통해서 설립된 기업으로 해당 주택지역의 관리와 유지보수를 담당한다.

 

중요한 점은 거민위원회가 “사구자치(社區自治)”의 핵심적 주체로서 상정되고 있는데 주민들의 선거로 구성된다는 점이 특히나 강조된다. 그런데 사구에도 공산당 당위원회 지부가 설치되어있으며 해당 당 지부의 서기(書記)는 상부에서 임명되는 것인데, 당 지부 서기가 선거로 선출되는 사구거민위원회 주임(主任)을 겸임하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한다. 또한 사구거민위원회 위원들은 가도판사처로부터 월급을 받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렇게 보면 사구거민위원회가 사구 주민에 의해서 선출되는 기구라고는 하지만, 사구에 설치된 당 지부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고 국가 행정권력의 말단인 가도판사처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 때문에, 사구거민위원회는 사구 주민들의 진정한 자치를 위한 자치기구라기보다는 변화된 사회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국가가 주민들을 관리하는 도시 관리체제의 대리기구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2 _ 선양 사구건설의 실제

 

위와 같은 사구건설은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형태이며, 실제로는 해당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을 반영한 사구건설이 추진된다고 볼 수 있다.

 

동북지역의 사회정치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이 중화학공업 위주의 중대형 국유기업이 밀집한 이른바 전형단위제(典型單位制)가 자리잡은 노후공업기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형단위제란 사회주의 시기 중국의 중국인의 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직인 단위제도가 전형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1990년대에 들어서 제기된 사구건설도 이러한 동북지역의 전형단위제를 배경으로 이뤄진다.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선양의 사례를 보면, 중국 측 연구문헌에 나타나는 2000년을 전후로 선양 시정부가 추진한 사구건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사구의 범위를 가도판사처보다는 작고 거민위원회보다는 큰 층위에 둔다는 점이다. 이유는 원래의 거민위원회는 규모가 지나치게 작고, 구역경계가 불명확하며, 자원이 부족하고, 주민의 종속성도 떨어져서, 사구기능을 발휘하는데 불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도판사처는 정부의 파출기관으로 정권조직이기 때문에 가도판사처 층위에 사구를 건설하면 사구의 자치를 확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과거 이 지역의 거민위원회의 설치는 사구의 특징과 규칙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따라서 선양 시정부는 사구의 기본요소에 근거하여, 자연지역, 인구집단, 관리기구, 정체성에서 출발하여 사구자치, 사구관리, 사구서비스 및 사구기능발휘에 적합하도록 새로이 사구를 획정했다. 사구의 인문과 지연의 내재적 관계, 자원배치 및 발전추세를 획정의 기준으로 삼아서, 원래 있던 거민위원회 기초 위에 구역 내 단위와 시설 및 적절한 인구상황 등을 고려하여 상호인접한 거민위원회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구를 건설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구는 주로 다음과 같은 4가지로 나뉘었다. 주민의 거주와 단위의 자연지역에 따라 획분한 “구역형(板塊型) 사구”, 폐쇄적인 주민의 주택단지를 단위로 하는 “주택단지형(小區型) 사구”, 직공 가속(家屬)의 거주지역을 주체로 하는 “단위형(單位型) 사구”, 사구의 서로 다른 기능과 특징에 따라 획분한 “기능형(功能型) 사구”.

 

이러한 4가지 유형에 따른 획분의 결과, 당시 선양에는 구역형 사구 976, 주택단지형 사구 99, 단위형 사구 170, 기능형 사구 32개가 확정되었고, 사구의 관할규모는 평균 1000~1500가구였다.

 

셋째, 새로운 사구조직체계를 수립했다. 우선 “정책결정층”으로, 사구성원대표대회(社區成員代表大會)를 가리킨다. 이 조직은 사구주민과 사구단위의 대표로 구성되고, 매년 정기회의를 소집하며, 주요 직책은 사구관리위원회(社區管理委員會)를 선출하고 사구의사협상위원회(社區議事協商委員會)를 구성하여, 사구건설과 관련된 제반사항을 토론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집행층”으로, 사구관리위원회(社區管理委員會)이다. 사구관리위원회와 거민위원회는 하나의 조직체계가 두 개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동일기구가 두 개의 명칭을 가진 것이다. 이 조직은 선출된 인원과 호적담당 경찰(戶籍民警) 및 주택관리회사 책임자로 구성되는 것으로, 사구성원대표대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업무보고를 한다. 사구관리위원회 아래에 치안, 환경위생, 문화교육, 계획생육, 재경관리 등의 공작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사구관리위원회의 기본특징은 “교육, 서비스, 관리, 감독”이다.

 

다음으로 “의사(議事)층”으로, 사구의사협상위원회이다. 이 조직은 사구 내의 인민대표대회대표, 정협위원, 유력인사, 주민대표, 단위대표 등으로 구성되어, 사구대표대회 폐회기간에 사구사무에 대한 협상과 의사 기능을 행사하고, 사구관리위원회의 업무에 건의를 제출하고 감독을 진행할 권한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지도층”으로 새로이 건설된 사구당조직(社區黨組織)이다.

 

넷째, 사구간부를 공개선발한다는 점이다. 『거민위원회조직법(居民委員會組織法)』에 따라서, 선양 시정부는 200~300가구 마다 1명의 사구 전임간부를 두었고, 최초의 “사구관리위원회” 성원(호적담당 경찰과 주택관리회사 간부는 추천방식을 통해 “사구관리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음)을 선발했다. 또한 사구의사협상위원회 성원을 선발하여, 1개의 사구마다 평균 9.1명의 성원이 확정되었는데, 당선된 사구관리위원회 주임 중 사구당조직 책임자를 겸임하는 비율은 69.9%에 달했다.

 

3 _ 선양 사구건설의 의미

 

흔히 중국 정부가 가장 선호한다고 얘기되는 사구건설 모델은 상하이 사구건설이다. 이것은 시()정부와 구()정부의 관리기능의 상당부분을 가도판사처 층위로 이관하여 가도판사처의 권력, 지위 및 역할을 강화시킴으로써 사구의 위상을 가도 수준에 등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상하이 모델에서 사구건설은 곧 “가도사구(街道社區)”를 건설하는 것이며, 정부가 가도판사처를 통해서 사구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상하이 모델로 대표되는 사구건설의 일반적 모델과는 달리, 선양의 사구건설은 사구의 범위를 가도판사처보다는 작고 기존의 거민위원회보다는 큰 층위에 둔다. 또한 사구건설의 주체인 사구성원대표대회, 사구관리위원회, 사구의사협상위원회, 사구당조직에게 고유한 기능을 부여하고 이들 사이에 수직적 권력관계를 구축하면서도, 동시에 이들 주체들 사이의 업무분담과 긴밀한 협의를 강조한다.

 

상하이 모델과 구별되는 선양 사구건설 모델의 이러한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진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선양의 경우 앞서 지적한 전형단위제에서 나타나듯이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대형 국유기업 위주의 단위체제가 강고하게 남아있던 곳이기 때문에, 개혁기의 시장경제에 적합한 기층의 사회정치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정부와 기업이 담당하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필요했다. 물론 다른 지역의 경우도 사구건설의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축소하고 이를 다른 기구와 조직에 이관했지만, 동북지역은 다른 지역들보다 기존 단위체제에서 정부와 기업이 담당하던 비중이 훨씬 컸다. 따라서 기존 전형단위제에서 정부와 기업이 담당하던 기능이 대폭 축소되면서 생겨난 커다란 공백을 담당할 주체들은 다른 지역들의 사구건설 모델에서보다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큰 자율성이 부여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다른 지역의 사구건설모델보다 선양 사구건설에서 정부와 당을 제외한 다른 주체들의 자율성이 더욱 크다는 점은, 앞서 선양 시정부가 사구조직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구건설의 주체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즉 사구건설의 주체를 “정책결정층”, “집행층”, “의사층”, “지도층”으로 나누어 주체들 간의 역할분담과 일정한 상호제약이 가능한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은, 설사 그들 사이의 일정한 수직적 위계가 전제되어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의 사구건설 모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징인 것이다.

 

셋째, 이와 같이 다른 지역의 사구건설 모델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회의 “일정한 자율성”이 선양 사구건설 모델에 제도화되어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러한 자율성을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수준의 “사회의 자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선양 사구건설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사구당조직 건설에 대한 요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선양 시정부는 사구당조직을 공산당의 기층조직인 가도당공작위원회(街道黨工作委員會)의 지도하에 두고, “정책결정층”, “집행층”, “의사층”에 각각 해당하는 사구성원대표대회, 사구관리위원회, 사구의사협상위원회를 지도하는 사구건설의 “지도핵심”으로 위치 지움으로써, 사구건설에서 당조직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넷째, 따라서 선양 사구건설에서 발견되는 사회의 “일정한 자율성”의 제도화는 비록 다른 지역 사구건설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긴 하지만, 기층정치공간에서의 “사회의 자치”를 의미하는 권력분점이라기보다는, 동북지역 전형단위제의 해체와 함께 생겨난 기층정치공간에서의 국가 기능의 공백을 국가 주도로 수립한 사구건설의 주체들에게 이관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www.nipic.com/show/3/81/6361906k33cdd43d.html

http://www.erqi.gov.cn/userSites/erqi/html/4028814acf0afd267d012bdagpdfdsf7/2011-11/402882b3338205450133823f9fe801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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