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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5 /2014.05] 논단_근대 중국의 글로컬라이징 캐피탈리즘과 내부 식민: 경제 제도의 재구성과 관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3 조회수 55

논단_근대 중국의 글로컬라이징 캐피탈리즘과 내부 식민: 경제 제도의 재구성과 관행



이병인 _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


1 _ 근대 중국의 경제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서구의 침략 이후 중국 경제의 변화를 바라보는 눈은 몇 차례 변화를 겪어왔다. 반식민지론, 이중 경제론을 거쳐, 중국의 전통 소농 경제와 상업이 선진 생산기술을 이용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했던 모습을 수량적으로 확인하며 중국 경제의 변화과정을 분석했다. 이런 논의들은 중국의 경제를 재조명하고,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주며 중국 경제의 생명력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중국의 전통 경제 제도와 근대를 분리하여 사고하고 있으며, 서구식 기준과 용어를 사용하여 중국을 분석하고 서구와 중국을 비교한다.


그런데 서구의 근대 제도를 받아들였던 토양이 중국의 전통 경제였던 만큼, 중국의 경제 발전과정을 그 내적인 토양에서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여 재구성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가는 중국의 독특한 이행 과정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충격’으로 기존의 금융, 상업, 산업과 관련된 제도의 복합으로 만들어진 구조에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어 균열을 형성했다. 이 균열이 경제 행위의 지속을 위해 새 제도와 전통 제도가 결합하여 이전과 다른 방식의 제도 구성으로 메워지면서 제도의 이행이 나타난다. 이 제도 이행 과정은 특정 제도가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행위 규칙과 습관(관행)을 구성하며 행동의 표준으로 작용하다가 새로운 요소의 등장에 따라 기존 제도의 일부와 결합하여 재구성되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어떤 고정적 혹은 ‘유형화’된 발전 과정을 상정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자원과 제도(관행)를 활용하여 새로운 제도를 재배열하고 구성한 ‘제도 복합 구조’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중국 고유의 경제 구성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훨씬 더 용이한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근현대에 새로 구성된 제도 복합 구조가 생산성 향상이나 제국주의의 경제 침략에 대응할만한 경쟁력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만일 경쟁력이 없다면 경제 성장은 정체되고, 제도는 파괴, 재편성되는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정치 문란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는 견해와 최근 중국의 부상은 청말 민국시기의 제도 재편 과정을 재평가할 여지를 제공한다. 중국은 어떤 제도 복합 구조를 만들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가?


2 _ 경제 제도의 재구성과 제도 복합 구조의 변화


아편전쟁 이후 청 말의 민간 상인은 국가의 보호 없이 직접 국내 시장이 노출된 상태로 외국상인을 맞이했다. 그런데 외국 상인은 중국어와 중국의 상관습, 상인의 신용도 등에 익숙치 못했다. 이에 중국인 대리자로서 매판을 고용하여 위탁판매 등을 행했다. 또한 물품대금으로써 전장이 발행했던 장표를 수용하면서 국제 교역이 진행되었다. 중국 상인, 전장, 서양 상인, 근대 금융이란 연결 조합이 만들어졌다. 매판이나 전장은 중국의 경제제도나 상관습에 익숙했기 때문에 중국의 기존 제도는 큰 손상 없이 근대 제도와 맞물려 운영될 수 있었다. 아울러 중국인들은 고율의 이자와 이윤을 보장하며 친인척 혹은 동향관계를 이용하여 자금을 모집하여 회사를 설립하고 전장과 거래하며 농촌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제조했다. 상인, 제조업자, 전통 금융, 근대 금융 제도의 상호 의존 관계는 시기에 따라 경제 여건에 따라 상호 이용 방법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결합 방식은 청말, 일차대전시기, 남경국민정부시기, 그리고 항일전쟁시기에 새로운 제도 복합 구성을 형성한 것으로 생각한다. 


서양 상인이 중국의 상관습?제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중국인 대리자를 내세웠기 때문에 민국시기 내내 내륙시장은 여전히 중국 상인이 주도할 수 있었다. 중국 상인은 늘어난 국내외의 요구에 따라 시장 경제를 확대하였다. 소농민과 지방 상인이 전보다 더 시장에 접근하기 쉬워졌기 때문에 중국은 시장을 매개로 소농민의 가내 부업을 활용한 스미스적 분업에 의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소농민이나 상인은 시장을 통해 새로 전래된 기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면서 분업의 효율성을 더욱 높였다. 때문에 시장 질서를 주도하던 회관과 공소와 같은 상인단체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중국 상인과 상인단체는 영업 규칙을 정해 시장 질서를 규제하고 담합하는 이유를 외국 상인과 대항한다는 경제 민족주의로 정당화했다. 중국은 시장을 통해 농촌 인적 자원을 활용한 분업구조를 확대하고 선진기술과 제도를 일부 수용하여 경쟁력을 형성했다.


한편 거래량의 확대에 따라 중국 상인의 활동과 시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지역적 구조도 재편되었다. 개항지의 거대 도시를 중심으로 유통망이 재편되어 명?청시대에 형성되었던 경제 유통망이 점진적으로 변화되었다. 대외관계가 많은 연안의 거대 도시는 자신들의 경제적 수요에 따라 인접도시를 종속적 지위로 만들고, 연해도시의 발전을 위한 물적 인적 자원의 배후지로 만들어 일종의 내부 식민구조를 형성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아울러 연안도시에서 통용되던 경제 관행이나 제도가 거래 관계에 있던 도시, 상인, 농민에게 적용되면서 상거래 관행도 연해 도시의 관행을 중심으로 통일되어 갔다. 연안도시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제도 결합이 전국으로 확산, 유통되면서 중국은 경제 제도를 공유하는 구조로 재편되어 갔다.   


3 _ 국가의 경제정책과 제도 변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경제 주권의 회복 노력은 남경국민정부의 수립 이후 현실로 가시화되어 나타났다. 국민정부는 경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고 ‘혁명 외교’에 따라 관세자주권을 회복했다. 세법을 정비하고, 생산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각종 정책을 발표했다. 국민정부는 이전에 민간 상인이 시장 경제의 확대와 ‘독점’을 통해 외국과 대항하던 방식과 달리 근대 경제 제도를 도입하고, 새로운 생산 기술을 적극 도입하려 하였다. 시장의 확대만으론 효율성 제고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업화의 확대와 그 제도적 기초를 다짐으로써 좀 더 세분화된 분업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민정부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방해가 되거나 경제 발전을 지체시킬 수 있는 봉건적이고 낙후하다고 생각하는 구래의 제도를 제거하며 새로운 경제 제도의 조합을 시도했다. 생산력 발전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제도의 구축을 통해 외국과 경쟁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려는 ‘전형적인’ 근대화 전략이었다. 


아울러 국민정부는 시장에 자유로운 접근을 막고 자유경쟁을 방해하는 재래 요인의 제거를 통해 시장 경제의 확대를 모색했다. 전장과 같은 전통 금융은 점차 축소되었다. 회관과 공소 혹은 방파의식에 따른 인위적 시장 통제의 관행을 억제하고, 상인단체는 정부의 지도 아래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생산력 발전을 위한 부수적인 동력으로 재편되었다. 국민정부는 아직 근대 경제 제도의 확대와 정착 미비, 농촌 경제의 지속이란 상황 아래에서 생산력 발전과 함께 상인단체를 통제하고 시장경제의 확대와 건전화를 통해 분업적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방식을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간 상인이 실생활에서 생산 활동을 하며 ‘자율적’으로 구성되던 제도 재편과 달리정부의 정책에 의해 ‘인위적’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제도 개편은 향후 제도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상인과 농민 등은 예전 방식을 고수하게 된다. 국민정부가 없애려고 했던 ‘봉건적’인 방파의식은 일순간에 없앨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지만, 특정 방에 속해 이익을 얻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일종의 ‘사회 자본’으로서 경제 활동에 더 큰 실익을 주었다. 이전에 회관과 공소가 만들었던 행규도 상인들의 요청과 저항에 따라 동업공회 업규로 정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관행과 전통 제도는 법률을 통해 통일되고, 제도로서 정착했다.


4 _ 글로컬라이징 캐피탈리즘과 산업화  


중국은 청말과 민국시기에 기존 경제 제도의 토대 위에서 외부의 자극과 제도를 수용하면서,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 복합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구조는 세계 경제 발전 및 경제 제도와 상호 교류하면서도 전통 경제 제도의 발달 정도와 상응하며 중국적 특색이 반영된 제도를 만들다. 그리고 내외의 여건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이행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Glocalizing Capitalism이었다. 그런데 전통과 근대 제도가 재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제도 복합 구조의 출현은 이행과정에 있는 모든 국가에서 출현하지만, 각 국가의 자원, 경제 발전 상황, 사회문화적 환경 등에 따라 그 실상은 다르게 구현된다. 상업 발달이 미진했던 국가, 혹은 식민당국에 의한 강제 재편 과정을 겪는 국가일수록 식민당국과 식민지의 분업적, 종속적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지만, 상업, 금융 등 뿌리 깊은 경제 활동과 시장을 형성한 국가는 제도의 재배열과 재구성을 통해 다른 단계로 이행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민간 상인이 소농을 시장에 편입시키는 분업적 구조의 확대, 중국 상인과 상인단체의 시장 통제, 그리고 경제 민족주의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스미스적 분업이 무한히 확대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제도 개혁의 필요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청과 민국 초기의 북경정부는 근대 산업을 위한 제도 기초를 놓는데 기여를 거의 못했다. 국민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공업화(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제도 복합 구조를 모색했다. 그러나 장애 요인은 많았다. 더구나 일본의 침략은 국민정부의 경제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전시산업체제의 구축과 그에 따른 자원의 동원과 활용을 위한 또 다른 제도 복합 구조로 이행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제도 복합 구조의 이행이란 구상으로 중국 중국경제를 바라볼 때, 전통과 근대의 구분, 혹은 그 연장선에서 중층적 이행이란 사고를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이전의 습관(관행 혹은 제도)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의해 변형된 관습으로 정착하고, 연해 도시에서 형성된 관행과 제도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특정 지역의 관행, 전통 제도를 구분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어진, 혹은 새롭게 성장하는 모순을 해결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이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구조의 해명이 중국 내적인 시각에서 경제의 발전과 이행을 해명하는 유효한 방안일 것이다. 또한 이런 방법은 자본주의 맹아나 18세기까지의 중국 경제의 번성에 대한 해명을 넘어 19세기에 좌초(?)해 갔다고 생각했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으며, 단선적 발전론을 벗어날 가능성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민족국가 단위의 분리된 사고를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현재의 정치단위는 국민국가 단위로 되어 있지만, 경제의 경계는 국경처럼, 정치 단위처럼 구분되기 어렵다. 아편전쟁 이후 세계의 교류가 늘어날수록 제도 변동을 요구하는 새로운 자극은 끊임없이 밀어닥쳤지만, 청말 민국시기 그 파급 정도는 개방 정도에 따라 지역마다 달랐다.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권 - 연안의 과국(跨國)적 네트워크 - 내륙 지방 도시와 농촌으로 파급되는 삼중 구조(그러나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로 구성되었다. 특히 교통이나 기술적 혁신이 전국으로 파급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민국시기에 연해도시와 내륙도시의 경계선은 더욱 분명했다. 연해 도시는 때로는 국내 경제보다 인접 국가 혹은 교역 관계가 많은 타국의 대도시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과국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과국적 경제권의 형성은 국민국가 영역과 불일치하는 경제권의 형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국과 같이 크기가 큰 나라는 과국적 경제권이 여러 구역으로 분화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는 정치단위와 경제 단위의 불일치를 야기하고 경제 정책과 제도 복합 구조의 이행 과정에 새로운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www.dfzb.suzhou.gov.cn/lzp/494_5.htm

http://economy.guoxue.com/?p=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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