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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5 /2014.05] 기획 _중국의 향촌사회 (6) 향촌통치의 문화적 논리와 정치적 동원: 예치, 관치, 자치 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3 조회수 77

기획 _중국의 향촌사회 (6) 

향촌통치의 문화적 논리와 정치적 동원: 예치, 관치, 자치 ⑥


류자오후이(劉朝暉)1) 씀 _ 중국 절강대학

강주화 옮김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명청시기까지 전통적으로 중국 현급 이하의 향토사회는 모두 현지의 유명인사(士紳)가 다스렸고 국가권력이 직접 관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치사회”(吴 晗, 费孝通, 1988)이다. 소위 예치는 군, 신, 부, 자가 각자 명분이 있고 귀천, 상하, 존비, 친소 모두 엄격히 구분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치는 사회합식(社會合式)의 행위규범으로 사회를 관리하는 것이다(费孝通, 1998). 예치는 서주(西周)의 종법제도에서 기원하여 수천 년의 역사변천과정을 거쳐 시대에 따라 그 시대만의 변천과 의미를 가지면서 현대사회까지 지속되었다. 예치의 주요이론과 사상은 유가윤리에서 유래되었다. 근대 이래 유가윤리가 향토사회에 투사(投射)되면서 구체적으로 가세(家世), 문벌(们第), 연령, 계급과 교육 등 요소가 되었고 이러한 유가윤리를 “지배”하는 족장, 유명인사, 퇴직관료, 지식인, 연장자 등은 자연스럽게 촌락(村落)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합법성은 국가가 부여한 권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배후의 문화논리에서 온 것이다. 즉 유가윤리로 백성의 일상생활과 행위규칙을 규범화 하였다. 


일반적으로, 향촌사회의 모순은 촌락을 벗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향신회(鄕紳会)가 대부분의 민간분쟁을 조정하였고, 형사사건이 발생하거나 조정이 불가하거나 또는 중대한 가족종족모순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현의 관청에 신고하였다. 때문에, 사회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향토사회는 “소송”이 없는 셈이 된다. 그러면 “국가가 없는 사회”의 향촌질서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费孝通은 횡포권력, 동의권력, 장로권력과 시세권력 등 네 가지의 기본적 역량이 존재한다고 하였다(费孝通, 1998). 여기에서 횡포권력은 국가권력을 가리키고, 동의권력은 사회계약에 기반한 “묵시적” 역량을 말한다. 장로권력은 장자의 “자연적 권위”를 말하는 것으로 사회세대교체과정 중 교화권력을 말하며, 시세권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에서 기원하여 나타나는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역량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역량은 전통적인 향토사회를 통치함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횡포권력이 국가가 향촌사회에 투사한 “그림자권력”에 불과하며 실질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의 동의권력, 장로권력과 시세권력임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향토사회는 자기만의 통치규칙을 갖고 있으며 국가권력의 실질적 개입이 없더라도 정상적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 이후, “서풍동진(西風東渐)”의 “민주, 평등, 법치”의 이념이 도입되면서 얼규(臬圭)로 칭하였다. 사람들은 전통적 향토사회에서 수천 년 계승 되어온 “예치”를 “인치”라고 하면서 마치 헌신짝 버리듯 버렸다. 이와 동시에, 국가정권이 향토사회에 대해 침투함에 따라 향신, 종족 등이 점차적으로 역사무대에서 퇴출되고 향촌사회의 통치 및 질서가 “예치”에서 “관치”로 이행하였고, “그림자권력”은 촌락사회의 전면에 등장하여 향촌사회를 직접 관리하였다. 전통적 역량이 과도하게 강대하였기 때문에 국가는 상업단체, 중개인, 묘회조직(庙会組織), 종교, 신화 및 상징적 자원 등 “권력의 문화네트워크”를 통하여 기층의 촌락사회에 영향을 주면서(杜赞奇, 2010), “관치”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관치는 법치와 동일한 것이 아니어서 관료들은 항상 법치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하였다. 20세기의 100년 향토통치체제의 과정을 살펴보면 국가가 강력한 통치체제의 적법성을 만들었다 하기 보다는 소위 현대정치제도로 전통적 문화논리를 대체하려는 의도가 존재하였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결과적으로 쌍방이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었는데 전통적인 문화논리는 해체되었고 새로운 통치체제는 효과적으로 수립되지 못하였다.


20세기 80년대 초기, 서방의 민주를 대표하는 선거제도가 중국의 촌락사회에 진입하였다. 광시쫭족자치구 뤄청, 이산 등 지역의 농민은 자기의 촌민위원회(村民委員會)를 수립하였고 1982년 헌법은 일부 농촌지역이 자발적으로 수립한 촌민위원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였다. 1987년의 《중화인민공화국촌민위원회조직법(시행)》은 촌민위원회의 조직, 기능, 선거방식에 대하여 명확히 규정하였고 1988년 위의 법률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그 후 전국의 거의 모든 촌락이 “선거연회”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비록 촌락선거 과정 중에서 뇌물 선거, 블랙선거(黑選), 지방권력의 행정간섭, 형식주의 등 많은 “조화롭지 않은 잡음”도 있었지만 촌민선거의 실천은 새로운 시기에 촌락을 다스리는 법치모델의 혁신이 되었다. 촌락선거가 형식적으로는 “밑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풀뿌리(草根)실천과 민간의 지혜에서 유래된 것 같지만 실질은 중화인민공화국이 향촌통치체제에 대한 개혁실패에 의한 타협이고(이를 테면 인민공사제도의 와해), 그 시기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기도 하다. 이는 20세기 80년대 시작한 농촌연합도급책임제도의 성공과 농촌사회모순의 비국가지향(非國家指向)적 특징에서 기인함으로써 촌민자치의 선택이 합리성을 갖게 되었다(党國印, 1999).


촌민선거의 위대한 실천은 중국 촌락을 통치하는 권력구조에 대해 영향을 미쳤고 일부 서방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중국 기층민주의 서막 개시, 과거의 단일한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는” 국가부권모델(國家赋权模式) 타파, 촌락정치구조의 재구성, 농민의 민주의식을 강화시켰다는 것이다(Gunter Schubert & Anna L. Ahlers 2011). 하지만 일부 중국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공동추천, 직접선거”의 촌민선거는 사람들이 본 것처럼 “매우 서방적”이고 “매우 민주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방행정권력의 컨트롤 하에 있으며 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명실분리문화”의 현대적 해석이 되었다. 많은 조사에 의하면 촌민투표는 인간관계의 친소(親疏), 가족의 경제적 이익, 사교그룹, 파벌조직 등 ”실”물(“实”物)을 더 많이 고려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이념과 행위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는 촌민선거의 열띤 풍경과 질서 정연한 예식화된 “명”의(“名”义)를 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명과 실이 분리된 기층선거의 배후는 중국 전통적 문화논리가 사회통치에 대해 심각한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재차 반영한 것이다.


촌민선거의 실질은 촌민자치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향촌통치의 제도구조의 재구성을 시도하며 절차적 정의, 권리의 항쟁 및 약자가 자기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등 현대 서방(西方)민주 가치 관념을 도입하였다. 예를 들자면, 엄격한 프로세스, 부녀와 가난한 사람의 선거권리, 최하층의 민중과 상류층 지간의 평등한 경쟁 기회 등은 최대한도로 보장 받을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촌락의 선거가 만약 답습 전통의 문화논리와 결합되지 못한다면 최종적으로 “가년화식(嘉年華式)”의 성대한 연회로 전부 몰락하고 말 것이다. 향토사회의 자치체제를 재건함에 있어서 우리가 다시 중국전통문화본위에 기반한 현대적 구조를 찾는 것이 필요하며, 촌락사회의 권리구조, 행동논리와 정치동원의 특징을 조사, 분석 및 귀납하여 배후에 있는 “지방주의”의 문화적 논리를 발굴해야 한다. 또한 서방의 선거제도가 포함하고 있는 민주관념, 절차적 정의, 평등권리 등 이념이 전통문화의 뿌리에 젖어 있는 향토사회에 융합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급선무이다.


안후이 퉁링의 “직접선거”의 실천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퉁링시의 지역선거에서 각급 당조직이 아닌 지역주민이 후보자를 추천하며 지역선거위원회는 주민이 직접 추천한 후보자를 접수하여 자격심사를 진행하며 자격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는 지역주민대표회의 선거를 통해 정식 후보자가 되며 최종 지역교체선거대회에 진출하게 되며 전체 투표자는 직접선거를 한다. 이러한 선거방식은 선거절차의 “혁명”을 실현하였으며 아래 세 가지 본질적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아래로부터 위로(由下而上) 선출하는 절차를 채택하였고, 둘째는 위로부터 아래로의(自上而下) 심사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셋째는 서방(西方)의 투표로 뽑는 민주형식을 채택하였다. 그 이면에는 지방본위주의, 국가권위주의와 서방민주절차정의가 결합되어 있다. 퉁링모델은 도시에서 발생한 것으로 과연 이 모델을 농촌지역에 이식하고 보급하는 것이 가능할지, 새로운 혁신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우리는 기대를 갖고 주목해 보기로 하자.



<참고문헌>


吴晗,费孝通等,1988,皇权与绅权,天津人民出版社.

费孝通,1998,乡土中国 生育制度,北京大学出版社.

杜赞奇,2010,文化、权力与国家:1900-1942年的华北农村,江人民出版社.

党国印,1999,中国乡村民主政治能走多远?, 中国国情国力(3)

Gunter Schubert & Anna L. AhlEr,2011,Participation and Empowerment at the Grassroots: Chinese Village Elections in Perspective. Rowman & Littlefield Pubishers. INC.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중국관행연구사업단 자료센터소장 “중국도편고”

http://shaanxi.cctv.com/20090115/108575.shtml


1) 劉朝暉: 절강대학 인류학부교수, 중국절강대학 인류학연구소집행소장,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 캠퍼스 동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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