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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4 /2014.04] 논단_동북지역 상업조직의 국가지향성: 한 창업집단의 발전과정에 대한 현지조사를 중심으로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3 조회수 54

논단 _ 동북지역 상업조직의 국가지향성: 한 창업집단의 발전과정에 대한 현지조사를 중심으로1)


조문영 _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본 발표에서는 중국 동북의 도시 빈곤을 주제로 2006-2008년 사이에 진행된 인류학 현지조사 중 일부를 소개하기로 한다. 당시 연구자는 사회주의 중국을 선도하는 중심 계급으로 칭송 받았던 도시 노동자들이 개혁 개방의 과정에서 빈민으로 전락했을 때 이들이 빈곤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빈곤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탐구하였다. ‘국가의 주인’에서 ‘시장 경제의 낙오자’로 전락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당-국가와 맺어 온 제도적, 정서적 연대는 이들의 빈곤을 (자본주의 역사에서 보듯) 사회 발전의 필요악으로 간단히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 바, 빈곤을 둘러싼 통치는 개인의 가난에 완충장치를 부여한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 국가와 인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는 치열한 경합의 장을 구성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빈곤화를 경험하는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배제하기보다는 새로운 형태로 포섭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뿐만 아니라 ‘시장’의 영역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이다. 정책성 부도 선언을 한 하얼빈 외곽 국유 기업 단위의 주거지(家属區)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하던 중 연구자가 프랜차이즈 업체 <건강낙원>(가명)을 알게 된 것은 지역 가도위원회의 재취업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 업체는 하얼빈 사회과학원 청소년발전연구센터가 주관하는 커뮤니티 서비스센터(社區服務中心)로 자신들을 소개했고, 아울러 YBC(Youth Business China), 즉 ‘중국청년창업국제프로젝트’(中國青年創業國際計劃)라는 조직의 헤이룽장성 지방 사무실을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한 주민들에게 정부의 한 부서라는 이미지를 심어 줬던 이 조직은 알고 보니 중국의 민간전통요법인 ‘과샤’(刮痧)를 이용하여 건강 마사지를 제공하는 프렌차이즈 업체였다. 실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업체의 대표는 중국의 오천년 중의문화를 계승하고(“利国”) 인민들이 당면한 의료문제를 해결하고(“利民”) 스스로를 보양한다는(“利己”) 점에서 과샤 요법의 효능을 강조했고, 더 나아가 실직 노동자들의 사업 참여(가맹점을 새로 열거나 기술을 연마한 후 기존의 가맹점에서 일하는 방식으로)를 유도함으로써 중국사회가 당면한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2년간 이 창업조직의 활동과 변화 양태를 좇으면서 연구자는 사회과학자들이 서로 상반되는 실체로 분리시켜 온 ‘국가’와 ‘시장’이 이들의 제도적, 인식론적 지형 속에서 어떻게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하는가를 관찰했다. 연구자는 이 과정에서 보건산업 업체에게 왜 국가가 중요한가, 국가는 이들에게 어떻게 상상 혹은 열망되는가, 이들이 어떤 식으로 국가를 전유하는가를 살피고자 했는데,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을 얻기 위해 조직의 구성원을 (1)개혁개방 초기에 일찌감치 시장에 뛰어들었던(下海) 개척자들 (<건강낙원>의 창립자들), (2)최근에서야 단위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뒤늦게 창업에 뛰어든 실직노동자들 (주로 <건강낙원> 가맹점을 오픈한 사람들), (3)도시에서 갖가지 일을 전전하다 온 농민공 (특히 여성) 청년들 (주로 <건강낙원>에 고용되어 마사지나 각종 허드렛일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분류했다.


이들이 각자의 역사를 통하여 ‘국가’와 맺어 온 상이한 관계는 연구자의 질문에 각기 다른 답을 제공하고 있다. <건강낙원>의 창립자들이 “유일한 복지 제공자”이자 “전능한 권력의 총체”라는, 인민들이 당-국가에 부여한 신화적 믿음을 사업을 위한 전략적 모델로 차용했다면, 창업을 개혁개방시대의 ‘혁명’으로 강제하는 사회에서 도태를 경험하는 실직 노동자들은 <건강도가>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모험으로 받아들이고, 단위 해체 이후 상실했던 귀속감을 창업자들 간의 연대를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건강도가>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씩 단위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오늘 (가맹점) 개소식에서 가도위원회 주임이 와서 연설했잖아. 예전에 내가 직접 목격했던 정부 관리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내가 단위에 있었을 땐 심지어 중앙의 링다오(領導)들도 시찰을 왔었다고.” (2006.10. 한 실직 노동자와의 인터뷰) 청년 농민공(打工妹) 집단은 이와 대조적으로 ‘국가’나 ‘인민’ 내러티브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도시 노동자와 더불어 ‘인민’의 대표체로 호명 받았으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에 대응하는 제도적 혜택으로부터 배제되어 온 이 농민의 자식들은 <건강낙원>을 공장 일에 비해 덜 힘든 임시직 노동(打工)의 하나로, 회원들 간의 연대를 도시문화의 향유로 해석했다. 그러나 농촌 출신의 외지 청년들은 이들이 원하든 말든 <건강낙원> 창립자들에 의해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 받았다. 기층 정부나 대학을 대상으로 한 PR과정에서 이들의 성공스토리는 “겉멋 든 도시 청년”과 대비되는 “신세대 농민공의 끈기와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회자되곤 했다. 


사실 ‘국가’를 모방하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초기의 창업자들은 사업이 지지부진 해지자 누구보다도 먼저 ‘국가’라는 카드를 자신들의 상업 전략에서 폐기 처분하고 다른 카드를 찾아 동분서주했는데, 한때 국가를 ‘모방’했던 창업조직의 재빠른 행보는 <건강도가>를 정부의 한 조직으로 믿었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저런 사기나 치니 공산당을 믿어선 안 된다”는 불신을 낳았다. 연구자는 이들이 ‘국가’를 열망하고, 전유하고, (쓸모가 없자) 카드를 쉽게 버리는 과정을 통해 중국의 독특한 특징으로 강조되어 온 ‘국가 중심성’이 사실 얼마나 불완전하고 유동적인가를 첨언하고 싶다. 이는 ‘모든 부문에 우선하는 실체’(overarching entity)로서의 국가를 당연한 사실이 아니라 불완전한 성취로 바라보는 최근의 인류학 논의와 공명하는 것인데, ‘중국 국가’에 대한 연구는 제도적 차원의 접근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국가’를 열망하고 전유하는가, 그리고 이것이 ‘중국 국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어떻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가에 관한 행위자적 접근 역시 필요하다.  


<건강낙원>이 보인 독특한 행보를 동북의 지역성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무리일 것이다. 다만 동북의 역사가 중국 노동자 계급의 성쇠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직 노동자들이 <건강낙원>에 결합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안정과 소속에 대한 희구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공화국의 장자’(共和國的長子)라 불리며 사회주의 계획경제 건설의 선도 역할을 자임했던 동북은 남방 연해 지역과 대비되면서 시장 경제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 취급을 받아 왔는데, “무식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동북인’과 “독립할 생각을 않고 국가에 의존하려고만 하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비판은 매스미디어나 심지어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종종 호환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서구의 빈곤 관련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의존성’(dependency)을 계획경제의 역사 속에서 ‘발견’하고자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북의 비옥한 자원”(黑土地)이나 국유기업의 ‘철밥통’ 시스템은 노동자들의 ‘의존성’을 배양한 ‘문화적’ 토양으로 함께 거론되는 것이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규범이나 생활양식이 현재에 와서 ‘동북인’에 대한 문화적, 계급적 낙인으로 여겨진다는 점은 동북의 지역성을 규명하는 작업에 있어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찰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1) 본 발표의 일부는 저자의 논문(“We Are the State”: An Entrepreneurial Mission to Serve the People in Harbin, Northeast China, Modern China 37(4), 2011)에 기반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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