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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2/2010.10] 관행기행 _ 중국 장쑤성 난퉁시 주변 향진의 석교도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2 조회수 55


[Vol.2/2010.10] 관행기행 _ 중국 장쑤성 난퉁시 주변 향진의 석교도사

송요후 _ 인천대학교 HK연구교수

 

필자는 중국관행연구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8 25일부터 9 1일까지 장쑤(江蘇)성 난퉁(南通)시 주변 향진(鄉鎮)에 분포해 있는 석교도사(道士)라고 하는 집단에 대한 현지조사를 행하였다. 장쑤성 난퉁시 일대 향진들에는 석교도사라고 하는, 근본은 불교를 바탕으로 시작했지만(불교협회에서 자격증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도사라고 하였다) 도교가 가미되면서 오히려 도교와 관련된 의식을 주로 행하는 일군의 집단이 존재해 있다. 이들의 수는 많지 않고 류차오(劉橋)진 등 3개 정도의 향진에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석교도사라 칭하며 사원의 승려나 도관(道觀)과 관련이 있는 도사와는 구별을 짓고 있었다. 지금까지 석교도사라는 명칭이 학자들의 논저나 관변에서 나온 종교지에서 이용된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현지 조사는 이들의 기원, 분포 상황, 인원수, 활동 내용 및 경권(經卷)에 대한 것을 조사하여 현재 중국 향촌에서의 민간 종교의 상황은 물론 그들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 향촌사회의 경제적 기초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 현지조사의 계기가 된 것은 올해 7월 초에 중국 산둥대 류핑(劉平) 교수와 함께 장쑤성 난퉁, 쑤저우(蘇州), 쿤산(崑山) 일대의 민간종교에 대한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난퉁 시 류차오진 장이(蔣一)촌에서 구화(顧華)라는 도사(그는 불교협회 회원증을 갖고 있었다)를 통해 류차오진을 비롯한 몇 개 향진에 석교도사라는, 촌민들에게 도교 의식을 행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가는 집단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바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천차오(陳橋)향에 사는 선() 도사가 소개해준 유작관음당(劉雀觀音堂)을 둘러보았을 때에도 많은 흥미를 느꼈다. 류핑 교수와 필자는 석교도사라는 집단에 대해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상호 연락을 통해 현지조사에 임하게 되었다.

 

필자는 7월 초에 있었던 현지조사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장쑤성 난퉁시 현지에서의 민간종교의 상황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경향은 역사적 시각에서만 연구가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인류학적 시각에서의 조사가 동시에 수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류학적 시각의 조사를 통하여 민간 종교 연구의 문헌연구를 보완하는 한편, 강남 지역의 향촌에서 나타난 새로운 종교 현상과 그것이 갖고 있는 사회ㆍ경제적인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과거 및 현재의 중국에 있어서의 민간종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역사학과 사회학의 학제간 소통을 이룰 수 있고 또한 중국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학문적 연구를 심화,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2010 8 25() 인천 국제공항 출발하여 난징시 루커우(綠口) 공항에 도착한 것이 현지시각 13:45였다. 공항을 떠나 난징 버스터미널 도착(16:40)한 후 버스를 이용해 난퉁시에 도착한 것이 20 40분경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류핑 교수의 제자 우() 선생과 저우() 선생의 안내로 가오뎬(高店) 소재의 완하오자르호텔(萬豪假日賓館)에 투숙하였다. 류핑 교수는 일이 있어서 다음날 새벽 5시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8 26일 가오뎬을 출발하여 류차오진에 도착한 후 새로운 호텔을 잡고 조사활동을 하고자 했으나 필자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현재 경찰의 외국인 투숙에 대한 통제가 심하다고 한다) 투숙을 불허하였다. 한나절만 묵으면서 그 지역의 전반적인 종교 상황을 알기 위해 진정부(政府)를 방문하고자 했으나, 담당관인 쑹() 부장이 출타 중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담당 관리와의 면담은 다음날 오전으로 연기되었다. 결국 다시 가오뎬으로 가서 완하오자르호텔에 투숙하며 이곳을 근거지로 조사활동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8 27일 오전에 중공 류차오진 당위원회 통전부(統戰部) 쑹 부장과 면담하여, 전반적 종교 상황에 대해 들었다. 그녀는 새로 승진되어 와서 상황을 잘 모른다고 하였다. 도사나 스님의 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면서도 석교도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오후에 류차오진 장이촌의 석교도사인 류더천(劉德陳)과 그의 손자 류즈펑(劉志豊)과 교담하며 석교도사의 기원, 연령대, 분포, 월간 및 연간 수입, 수행하는 법사(法事)의 종류 등에 대하여 조사하고 유작관음당을 방문하였다. 이 유작관음당은 천차오향에 있는 유작관음당과 이름이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왜 여기에 이 건물이 서 있는지 불명확하였다. 도교 사원인데 불교와 도교가 섞여 있었고 류씨 일족의 사당 역할도 하였다. 8 28일에는 류차오진 잉슝(英雄)촌의 석교도사인 왕젠(王建)과 교담하며 장이 촌의 석교도사에게 물었던 것을 다시 확인하고, 파혈호(破血湖), 파지옥(破地獄) 의식들의 진행 순서 등에 대해 질문하였다. 8 29일에는 류차오진 잉슝촌 12대대 5소대 쌍융린(桑勇林) 집에서 있었던 법사를 참관했다. 왕젠이 수장이 되어 10명 정도의 석교도사들을 거느리고 의식을 진행했다. 왕젠은 우리가 방문했을 때, 며칠 전부터 이 의식을 행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온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의식은 쌍씨 남매가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초도의식(醮度儀式)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남성을 위한 파지옥 의식을 보고 영상으로 촬영하였다. 손님을 맞기 위해 9개 탁자가 준비되었고, 7,000-8,000위안이 들었다고 했다.

 

8 30일에는 스강(石港)진 스난(石南) 5대대 7소대 산진강(單錦剛) 집과 산진청(單錦成) 집에서 있었던 법사를 참관했다. 형제인 산진강(둘째)과 산진청(셋째)이 각각 돌아가신 어머니의 90세 명연(冥延)(어머니는 85세에 돌아가셨음)을 위해 석교도사들을 고용해 법사를 행한 것이다. 모두 아들이 네 명인데 첫째 아들은 사망했고 넷째 아들은 데릴사위인데 넷째 아들도 이 의식에 참석했다. 이 의식은 각각 다른 수장에 의해 구성된 조직에 의해 두 형제들의 집에서 각각 수행되었다. 두 조직 집단은 서로 경쟁하듯이 북소리와 악기 소리를 크게 내었고 서로 호응을 하며 의식을 진행했다. 형은 9,000위안, 동생은 10,000위안 정도의 비용을 사용했다고 한다. 류차오진에 비해 스강진에서 종교 통제가 심한 것으로 보였다. 현지 조사를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와 류핑 교수가 여러 곳에 전화를 통화한 후, 남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원래 31일에 난퉁구 종교국에 방문하려던 예정을 취소하고, 8 31일에 가오뎬을 출발하여 난퉁시 버스터미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남경시에 도착했다. 저녁에 류핑 교수댁에서 식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사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필자는 이번 현지조사를 통해 중국의 현재 역사연구의 경향이 문헌 연구에만 의존하던 경향에서 탈피해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지조사로 보다 입체적인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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