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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3 /2014.03] 기획 _ 중국의 향촌사회 (4) “다궁(打工) 경제” : 농촌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생계모델 ④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6 조회수 60

| 기획 | 중국의 향촌사회 (4)



“다궁(打工) 경제”

: 농촌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생계모델


류자오후이(劉朝暉)1)·리페이(李沛)2) 씀 _ 중국 절강대학

박경석 옮김 _ 인천대학교 HK 교수


지금 중국의 270만 모든 자연촌락에는 그 수가 많건 적건 간에 촌락을 떠나 일하고 있는 농민이 있고, 어떤 촌락은 몇 명에서 몇 십 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아 매우 적막하다. 촌락의 거의 모든 청장년 노동력이 도시로 “총출동”해 있어, 농촌에는 여자와 아이, 노인 등 허약한 노동력만이 남아 있다. 불완전하나마 통계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농민 출신 노동자(農民工)가 2억 6천만에 이른다. 가정이나 촌락의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촌락에서 이농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농촌과 고향을 떠난 농민공이 중국 특유의 ‘다궁(打工) 경제’현상을 낳았다. 현재 절대 다수 촌민의 경제적 수입은 촌락 밖에서 일해 번 돈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周大鳴이 ‘다궁경제’에 대해 선험적 정의를 내린 바 있는데, 농업을 위주로 하는 향촌에서 이농해 일하는 노동력이 총 노동력의 30%를 넘고, 이농 근로 수입이 경제구조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현금 수입의 주요 원천일 경우라고 정의하였다.(周大鳴, 2006) ‘다궁경제’의 기본 특징은 농민 가정 경제 수입 구조의 변화를 체현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다궁경제’가 “농업을 바탕에 둔” 농민의 생계모델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농민들이 농촌과 고향을 떠나서 생계를 도모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 향토 사회의 “동력”을 생각해 볼 때 그 원인은 다음 4가지에 다름 아니다. 첫째, 농촌에는 돈을 벌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일은 단지 먹고 사는 문제만을 해결해 줄 뿐, 경제적 여유를 원한다면 촌을 떠나 밖에서 일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화폐 수입이나 현금 소득이 ‘다궁경제’의 원동력인 것이다. 둘째, 농한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농업의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농민이 일 년 중 농업생산에 종사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이와 같이 농한기가 늘어남에 따라 농민들이 계절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농촌에 “유휴 노동력”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촌락의 농업 활동은 그리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잉여”인간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사람들이 농촌 밖으로 나가 비농업 산업에 종사하기를 갈망하였다. 넷째, 향촌생활에 활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농촌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현대화된 도시생활방식을 추구하였고, 스스로 향촌사회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도시에는 “흡인력”이 커졌는데, 취업할 기회와 돈벌이 할 기회가 많다는 것, 현대 문명과 생활방식 등등이 그것이었다.


‘다궁경제’의 출현은 향촌사회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다궁경제’가 전통적인 산업구조와 경제구조를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국 농민이 수천 년 동안 유지해 온 전통적 생계방식과 사회구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농민의 생활방식, 심리상태, 사유방식과 가치 관념이 모두 현대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費孝通은 일찍이 1980년대에 “농토에서는 떠나지만 고향은 떠나지 않는” 소도시 발전 전략을 제기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중국 농민이 토지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했으나, 향토사회의 전통은 파괴되거나 해체되지 않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전통적 농업생산에서는 벗어나지만, 향촌생활에서는 벗어나지 않고, 고향에서 향촌 공업에 종사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費孝通, 2007) 이제 와 보니, 이런 소도시 전략의 유용성은 명확한 지역 특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동부와 남부는 개혁개방이 먼저 이루어졌고, 또 근대 이래의 역사적 원인으로 말미암아 상업화 정도가 높고, 시장의 역량이 강하며, 또 일정한 농촌 공업의 기초를 갖추고 있어, “농토에서는 벗어나지만 고향을 떠나지는 않는” 직업 유동이 효과적으로 소도시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광대한 중서부 지역은 이런 요소들이 결핍되어 있어서, 소도시의 발전이 동부 및 남부 연해지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을뿐더러, 더욱 중요한 것은 30년래 농민이 지속적으로 중서부에서 동부로 흘러 들어감으로써, “농토도 떠나고 고향도 떠나는” 자발적 직업 유동이 형성되어 있고, 그들의 고향은 고속 발전하는 도시와 비교해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발전이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農民工 大軍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는 시종일관 정부가 가장 주목해온 문제이다. 처음에 각급 정부는 이런 “농토 및 고향 이탈”의 자발적 직업 유동에 대해 지극히 우려하였다. 대량의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 것을 두려워하였다. 특히 동부 및 남부 연해 도시는 도시의 공공 자원을 모두 먹어치워 “대도시병”을 낳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에 계획경제시기의 호적제도, 사회보장, 교육과 의료제도를 답습한 도시-향촌 이원체제를 구축하여 농민의 도시 이주 노동을 “제한”하려고 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동부 지역의 각급 정부는 방대한 農民工 집단이 도시 발전에 거대한 이익을 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첫째, 저렴하고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한 노동력이 외자와 향진기업 - 발전이 장애를 만나 막혀 있을 때임 - 에 마음대로 피땀을 착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둘째, “이등 공민”신분의 노동력이 워낙에 도시 사람들은 하지 않으려는 노동, 예컨대 공사장의 막노동, 서비스업, 도시행정 잡무 등을 강제로 맡음으로써, 도시의 커다란 발전을 실현할 수 있었다.(范芝芬,2013) 사실 최대의 영향은 이런 이원화된 구조에서 형성된 ‘다궁경제’가 도시와 농촌 사이의 이원 구조를 지극히 심화시켰다는 데에 있다. 이리하여 농민이나 농촌은 도시에 ‘의존’하게 되었고, 근본적으로 농촌 스스로 발전할 가능성과 원동력을 상실하였으며, 농촌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의존적 발전’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다궁경제’ 모델은 농민을 토지의 속박에서 해방시켰으나, 동시에 향토사회의 근본 기초를 와해시켰고, 향토사회의 발전에 현실적 어려움을 초래하였다. 첫째, ‘다궁경제’는 향촌의 청장년 노동력을 대량으로 유실시켰고, 농촌 발전을 위한 인력 자본을 빼내갔다. 둘째, 향촌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자금 원천이 사라졌다. 農民工이 일을 해서 번 돈은 대개 주택을 짓거나 도시화된 생활을 추구하는 데에 사용되었고, 농업이나 농촌 생산성을 높이는 영역으로 흘러들어 간 돈은 갈수록 적어졌다. 셋째, ‘다궁경제’의 영향 아래에서 전통적인 향촌생활방식이 점차 ‘도시화’되었고, 농민은 점차 소비방식, 사회심리, 가치관 등에서 향촌사회를 저버렸고, 심지어 ‘깔보기’까지 했다. 넷째, 가장 심각한 영향은 ‘다궁경제’가 신세대 農民工으로 하여금 향촌으로 돌아 갈 수도 없게 만들었고, 또 도시사회에 진정으로 녹아들어 갈 수도 없게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다궁경제’가 본질상 자신의 배후에 숨어 있는 ‘신분제 제약’으로 인한 차별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로 들어갈 수도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도시의 사회 안정과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중의 곤경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몇 년래 ‘다궁경제’가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 農民工이 도시생활의 어려움, 예컨대 임금도 너무 낮고, 대우도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갈수록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다시는 고향을 멀리 떠나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살던 곳이나 가까운 곳에서 일할 기회를 찾는다. 그 결과 동부 연해의 어떤 도시들은 심지어 ‘民工 부족’으로 시끄럽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 전반이 농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空洞化, 노령화, 잔류 아동 등의 향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더 많은 농민들이 귀농을 선택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농민이 향촌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하자, 우리 또한 문제의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계속해서 토지에 의존해 살 것인가, 아니면 토지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인가이다. 우리는 농민들에게 다시 전통 촌락으로 돌아가 ‘농사에만 매진하라’고 할 수는 없다. 또는 ‘토지에서는 벗어나지만 향촌은 떠나지 않는’ 소도시 생활방식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길은 ‘鄕土 本位’에 발붙이는 것이다. ‘鄕土 本位’란 공간적으로 보면 촌락, 사람의 근본으로 따지면 농민, 현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산업으로서의 농업 발전에 입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향토 재건을 위해 ‘공업으로 농업을 촉진하고, 도시가 향촌을 거느리는’ 방식은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농촌이 도시에 의존해 발전하는 객체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고, 향촌에 거주하는 농민이 스스로 토지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향토 재건의 길은 아마도 귀향 농민이 자주적으로 창업하는 길일 것이다. 또한 합리적 토지 유통을 통해 농지 규모화를 실현하고 농업 전문화를 육성하는 길일 것이다. 이는 전문화된 合作社를 키우는 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향토 사회 재건의 길은 ‘토지에서도 이탈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지도 않는’ 향촌 본위에 입각하는 길이지, 덮어놓고 도시 주도 방식의 ‘도시-향촌 일체’라는 허황된 희망을 품는 것이 아니다.


    

<참고문헌>


费孝通,2007,『江村经济』,上海人民出版社。

范芝芬,2013,『流动中国:迁移、国家和家庭』,北京社会科学文献出版社。

秦晖,2006,离土不离乡:中国现代化的?特模式-秦晖文集,最后浏览日期:2013.1.17,http://www.snzg.net/article/2006/1109/article_1559.html。

周大鸣,2006,【农村劳务输与出打工经济---以江西省为例】,中南民族大学学报(人文社会科学版)』 第一期。




1) 劉朝暉: 절강대학 인류학부교수, 중국절강대학 인류학연구소집행소장,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 캠퍼스 동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학자.


1) 李沛: 절강대학사회학과 석사연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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