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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2 /2014.02] 연구성과소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6 조회수 54
「만주국 수립 이전 봉천의 상업과 중국 상인의 동향」, 『中國近現代史硏究』 제60집, 2013.12, 155-193쪽.


김희신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근대도시 봉천은 淸의 ‘奉天府’를 기초로 하여 발전되었지만, 근대동북의 정치경제적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성립의 역사가 다르고 관리 경영의 주체가 서로 다른, 城內·商埠地·滿鐵附屬地라는 세 개의 도시공간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 주요한 관심은 봉천의 도시화과정 자체가 아니라 도시화과정에서 형성된 ‘복합적’ 도시구조가 봉천의 상업무역과 중국 상인의 존재양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의 문제에 있다. 본 연구는 근대 동북사회구조의 형성과 변화과정에서 중국 상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 갔는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실제 그들이 사회경제생활을 영위하는데 유효한 수단으로 작동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봉천의 상업무역은 만철 개통이후 특산물집산지로서의 시장기능은 약화되었지만 거대한 거주인구와 계속 유입되는 유동 인구를 기반으로 국내외 수이입물자의 소비지 및 중개지로서의 상업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 1920년대 후반 오사카 카와구치(大阪川口) 화상의 상업기반을 바탕으로 ‘오사카-봉천’이라는 중국 상인만의 무역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대일무역 거래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상거래상의 대변화’를 이끌어내었다. 한편으로는 奉天紡紗廠 등을 통한 동북의 면제품 생산 공급이라는 계획이 현실화되어 봉천지역정권이 목표로 했던 수입대체 산업육성 정책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봉천의 상업무역을 주도했던 중국인 상점분포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절대다수의 인구를 기초로 하여 봉천의 상업은 중국인상점이 집중 분포되었던 城內가 중심이었다. 둘째 부속지는 봉천당국의 제한이 많았던 성내와는 달리 일본의 행정관할아래 과세, 경찰 등 특권을 활용한 봉천당국으로부터의 과세회피나 철도역이라는 물자수송의 편리성이 있었다. 셋째 상부지에는 봉천당국의 상부지 개발전략의 일환으로 개설된 남?북시장을 중심으로 중국인상점이 개설되었다.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인구가 조밀하고 복잡한 성내의 인구 압력을 다소간 해소하고, 성내 상권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넷째 부속지 상점은 성내 상점과 聯號關係를 통해 상업상, 자본상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여 1920년대 후반 중국 상인들은 상업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부속지내로의 이전 및 지점 개설을 단행했다. 특히 부속지내 개설상점의 증가와 관련해서 정부 측의 과세나 장부 검열은 화폐가치의 폭락과 재원의 조달이라는 지방당국이 직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시행된 조치들이었다. 이러한 조치가 상부지와 부속지의 번영을 초래한다는 관측도 가능하지만 공고한 상권을 가진 성내를 벗어나서, 거액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점포의 이전은 하루아침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지역정권과 현실적 이해관계를 달리했던 중국 상인들이 식민영역이었던 만철부속지로의 이전까지도 감행하고 있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20년대 후반 중국인상점에 대한 과세정책과 엄격한 검열은 중국인상점의 분포양상에도 직접적 변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부속지 상점이 증가함에 따라 중국 <商會法>에 기초하여 설립된 상인단체와는 별도로 부속지에도 중국 상인단체가 설립되었다.


당시 중국 상인은 부속지나 일본에 대해 양면적 인식 태도를 보여주었다. 부속지로의 이전이나 부속지내 중국 상인단체 설립은 ‘중국의 주권을 망각하는 행위’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부속지 지배체제를 인정하고 그 아래 피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부속지 지배를 부정하기보다는 상호 공존 가능한 방법을 찾는데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민족주의적인 인식보다는 상업사회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부속지란 존재 자체가 중국의 주권과 충돌하는 것이었지만, 개별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위하여 여러 지역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개인적 결정의 공간일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봉천의 중국 상인에게 부속지도 온전한 피신처는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부속지가 갖는 다양한 특권과 물류의 편리성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봉천 성내 상점과의 유기적인 자본관계를 이용하는 등 다양한 생존 전략을 강구하였다. 선택의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의도나 작용은 의미가 적고, 개인적 결정은 중국 상인 고유의 사회문화적 토양에 근거한 매우 비정치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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