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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41 /2014.01] 논단 _ 淸代의 언어 사용 상황과 滿文 자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3 조회수 42

[Vol.41 /2014.01] 논단 _ 淸代의 언어 사용 상황과 滿文 자료

신용권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부교수

 

淸은 알타이 언어 계통의 滿洲語를 사용하는 만주족이 세운 국가이다. 만주족 정권의 淸代에는 漢語와 만주어를 함께 사용하는 이중 언어 현상이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청대 초기부터 집권계층은 통치자의 언어인 만주어를 중시하여 만주어 교육 기관을 설치하고 공식적인 문서에 만주어를 사용하였으며 유가의 경전, 四書五經, 문학작품 등 한문 서적을 만주어로 번역하여 보급하기도 하였다. 이후 만주족과 한족의 접촉이 심화됨에 따라 만주족과 한족은 한어와 만주어를 상호 학습하였고 이에 따라 이중 언어 화자가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청대에는 만주어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한어가 존재했는데, 이를 旗人語 또는 滿式漢語라고 한다. 滿式漢語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대의 언어 사용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초기의 滿漢 사전인 ≪大淸全書≫(1683)는 만주어에 능통한 南方 출신의 漢人인 沈啓亮이 편찬한 것인데, 이 사전의 서문에서는 “予漢人也, 且生平篤好淸書. 昔嘗荷戈浙閩, 效命不遑, 旣而奉汰歸裏, 是以得游學京師, 業館于廂黃旗下, 幸就敎于滿洲諸儒. 于玆數載, 粗識其義”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일부 한족은 공무 등의 이유 때문에 만주족과의 접촉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만주어를 학습하려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 만주족은 만주어, 한족은 한어를 제1언어로 하고 상대방의 언어를 학습하는 수준이었으나 만주족과 한족 간의 접촉이 심해짐에 따라 만주족은 모어인 만주어 능력을 점차 잃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에 만주족 지배층은 우려를 표명하며 여러 방면으로 만주어 장려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만주어 소통 능력을 상실하고 한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추세는 막을 수 없었고, 결국 한어를 제1언어로 배운 후 만주어를 제2언어로 학습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滿漢 合璧 회화서인 ≪淸語問答四十條≫(1758)에 나타난 대화에는 “眼面前的話粗懂些兒, 是聽着長輩們說話, 不知道的問問, 每日記下的”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통해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만주인은 한어를 먼저 배우기 시작했으며, 정식으로 만주어를 배우기 전에는 일상생활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간단한 만주어를 익히는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청대 중기 이후 이미 만주어가 언어 절멸의 종반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주인과 만주어에 능한 漢人 사이에서는 北方話와 큰 차이는 없으면서 약간의 특수어휘를 포함하고 있는 일종의 만주식 한어가 통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만주어는 절멸의 단계에 이르렀고, 결국 현재는 중국의 黑龍江省 등지에 10명 정도의 만주어 모어 사용자가 남아 있을 뿐이다.

 

북방민족 언어와의 접촉에 의해 유발된 한어 유형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遼, , 元을 통해 나타난 漢兒言語를 들 수 있다. 漢兒言語란 중국 북방의 漢人 또는 漢化된 북방민족이 사용했던 언어이다. 漢兒言語는 언어 접촉에 의해 한어가 북방민족 언어의 영향을 받은 사례일 뿐 아니라 口語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元代의 한어 자료에는 어휘뿐 아니라 어순과 후치사 등 유형과 관련된 핵심 부분에서 북방민족 언어의 영향에 의한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나 滿式漢語는 漢兒言語와 같이 다른 언어의 영향에 의해 유형적인 부분까지 변화가 일어난 경우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시 漢人들이 사용한 한어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특수한 표현들이 나타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대의 滿漢 회화서인 ≪淸文指要≫(1809)에서는 “這有什麽, 有話就說, 要是我能的事, 你跟前我還辭嗎?”라는 예가 나타나는데, 이 예에서 보이는 “你跟前”은 만주어 2인칭 단수 여격 표현 “sinde”와 대응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滿式漢語에 많이 나타나며 漢兒言語에 존재했던 후치사인 “根底, 根前”과도 상통한다. 滿式漢語의 존재는 북방민족 언어와 한어의 언어접촉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근대 시기 중국 共同語의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대의 이러한 언어 사용 상황을 고려하면 만주어로 기록된 많은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만주어는 17세기에 들어서서야 문자기록이 시작되는데, 만주 문자는 無圈點字와 有圈點字로 나눌 수 있다. 無圈點字는 1599(明 萬曆 27)에 淸 太祖의 명에 의하여 몽골문자를 차용하여 기록한 것인데, 이 문자는 t d, k g h, o u 등을 구별할 수 없어 매우 불편하였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하여 다하이 박시(大海 巴克什)가 왕명을 받들어 1632년에 구별되지 않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동그라미와 점을 더하여 개량한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有圈點字이다. 無圈點字의 기록은 1607년부터 1632년까지 26년간의 滿文原檔의 기록이 대종을 이루며, 1632년 이후의 滿文 문헌에서는 점차 有圈點 滿文으로 대체된다.

 

滿文 문헌 자료는 다양한 영역에서 존재하고 있다. 1991년에 나온 黃潤華, 屈六生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 소장된 1,015종의 문헌 중에서 역사에 관한 문헌이 306(30.1%)으로 가장 많고, 언어 및 문자에 관한 문헌 238(23.4%), 종교 관련 문헌 133(13.1%), 문학 관련 문헌 97(9.6%)이며, 이외에도 윤리학, 철학, 천문, 군사, 법률, 지리 등과 관련된 문헌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만문 檔案 자료와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만문 문헌 자료는 여러 나라에 두루 소장되어 있다. 가장 많고 다양한 만문 문헌이 소장되어 있는 중국에는 北京의 國家圖書館, 第一歷史檔案館, 首都圖書館, 北京大學圖書館, 故宮博物院圖書館, 瀋陽의 遼寧省案館 및 遼寧省圖書館, 大連의 大連圖書館, 呼和浩特의 內蒙古大學圖書館, 內蒙古自治圖書館 등에 만문 문헌이 주로 소장되어있다. 대만에서는 故宮博物院과 中央硏究院이 주요 만문 문헌 소장 기관이다. 중화권 이외의 국가에도 만문 문헌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일본은 여러 기관에서 만문 문헌을 소장하고 있는데, 東洋文庫, 東京大學圖書館, 學習院大學圖書館, 內閣文庫, 天理大學圖書館 등이 대표적이다. 몽골의 주요 만문 문헌 소장 기관으로는 국가중앙도서관을 들 수 있다. 이외에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헝가리 등의 구미국가에도 만문 문헌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서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 국립도서관 등 여러 곳에 주목할 만한 만문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譯官 양성을 위하여 설치한 司譯院에서 만주어를 연구하고 淸學書를 편찬, 간행한 전통이 있어서, 우리가 편찬한 매우 소중한 만문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만문 문헌 자료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역사 관련 분야에서 만문 당안이나 문헌이 한문이나 滿漢對譯으로 기록된 것보다 비밀스럽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문학 분야에서 중국의 고전을 만주어로 번역한 것은 당시의 뛰어난 학자나 번역가들의 시각이 반영되어 매우 중요한 연구 자료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청대의 역사, 언어, 문학, 종교 등과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만문 자료가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후 만문 자료에 대한 상세한 검토와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御製增訂淸文鑑

御製飜譯詩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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