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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8 /2013.10] 기획 _ 이미지로 보는 중국 (10) 홍콩족(香港族)의 출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3 조회수 35

[Vol.38 /2013.10] 기획 _ 이미지로 보는 중국 (10)    홍콩족(香港族)의 출현?

| 기획 | 이미지로 보는 중국 (10)

 

저희 『중국 관행 웹진』에서는 2013 1월부터 <이미지로 보는 중국> 칼럼을 기획하여 연재합니다. 인천대 HK사업단 및 소속 연구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포스터, 사진, 그림 등의 각종 이미지 자료 중의 일부를 선정하여 설명과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다양한 이미지들에 내재되어 있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의미를 함께 읽어 나감으로써 중국 일상의 여러 단편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홍콩족(香港族)의 출현?

장정아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부교수

 

아무 데서나 쭈그려 앉는 중국본토인은 홍콩인보다

진화가 덜 된 인류라는 내용의 패러디 포스터

 

홍콩과 중국본토의 급속한 경제적 통합 한편에서 몇 년 전부터 심화되어온 본토인과 홍콩인의 갈등은 최근 종종 극단적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특히 이런 갈등은 홍콩에 온 본토 관광객과 홍콩인 사이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통로를 막지 말아달라고 한 여직원에게 본토인이 “보통화하는 사람(중국본토인) 그렇게 만만하게 보고 건드리지 마!”라고 소리치며 막말을 한 사건과 관련하여 이는 단순한 고객과 직원의 분쟁이 아니라 ‘민족과 민족간 충돌’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였고, “우리 홍콩 민족이 다른 민족의 능멸을 당하고 있다”는 선동이 온라인상에서 크게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본토와 홍콩인의 차별화 주장하는 논의는, 단지 서로 다른 역사를 지닌 지역간 정체성의 대립을 넘어서서 최근 급속하게 ‘민족(民族), ‘종족(種族) 또는 족군(族群)’의 표현을 빌어 이루어지고 있다. “홍콩민족은 존속이냐 멸망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중국공산당은 홍콩을 종족청산해버리려 한다. 홍콩인의 최우선 임무는 직선쟁취가 아니라 ‘홍콩 수호’이다! 왜냐하면 현재 홍콩의 최대 문제는 홍콩인이 멸종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콩을 수호하고 홍콩 족군(族群, ethnic group)의 완전성을 지키자!

 

이러한 주장 속에서 ‘홍콩 민족주의’, ‘홍콩족(香港族)’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홍콩인이 중국본토인과 어떤 의미에서 독립적인 ‘종족집단’ 또는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단지 서로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고 갈등이 심화된다는 이유로, 거의 대부분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끼리 서로 다른 민족 또는 종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홍콩 내에서 한편으로는 홍콩의 ‘독립’에 대한 논의까지도 나오고 있지만, ‘홍콩족’을 이야기하는 논자들은 이것이 고전적 의미에서의 ‘민족’과는 다르다며 다소 느슨한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홍콩역사박물관에 있는 홍콩의 종족집단 설명

 

본래 홍콩에서 종족집단(ethnic group, 중국어표현으로는 주로 族群을 쓰는데 최근 種族도 종종 쓰인다)은 홍콩인 스스로를 가리키는 데 쓰인 용어가 아니라 홍콩 내의 다양한 집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용어이다. 위 사진에서 보듯 홍콩역사박물관에서는 홍콩의 종족집단을 本地人・客家人・水上人・福佬人 등의 집단으로 나누고 있고, 학자에 따라 蛋家・客家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홍콩에서 중국본토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홍콩인을 가리킬 때 族群개념을 쓰는 경우는 주로 홍콩 내 본토인에 대한 차별, 또는 본토인과 스스로를 차별화하고자 하는 홍콩인의 정체성 등을 가리킬 때에 국한되어 있었고, 이 경우에도 홍콩인 스스로를 독립적인 族群으로 보는 강한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본토인과의 대립구도 속에서 홍콩인을 논할 때 族群, 種族, 民族 등의 용어 사용이 급증하여 마침내 ‘홍콩족’이라는 표현까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논자들의 설명을 보면 여전히 애매한 측면이 많다. 2013 8월 ‘홍콩족 만들기?’라는 제목의 좌담회에서 강연한 찬갱파이(陳景輝)는 “홍콩인은 분명한 애증을 가져본 적이 없고 항상 그저 가벼이 떠다니며, 아비정전 속 ‘발 없는 새’처럼, 잊혀지고 버려진 시간과 결합되어있다”고 하면서, 새로 등장하는 ‘홍콩족’ 개념의 핵심은 ‘홍콩 주류사회에서 눌린 서민공간을 찾고 억압된 과거를 찾아내고자 하는 의식’이라고 하였다. 좌담회에서 이루어진 토론에서는, 이러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홍콩인 또는 ‘홍콩족’에 대한 목소리가 이제 다양해지고 있고 서로 ‘홍콩족 만들기를 쟁탈한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이러한 다양한 상상 속에서 옥석을 가려서 의미 있는 정치적 행동과 결합시킬 수 있는 담론을 추려내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최근 중국본토와의 갈등구도 속에서 홍콩의 독립, 홍콩인의 독자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담론이 가질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홍콩 내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계 만들기를 기반으로 하는 ‘상상의 공동체’는 어느 정도의 배타성을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배타성에 대한 자기비판의식이 전혀 없이 그저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싸움’으로 인식하는 방식의 최근 홍콩정체성 담론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를 중국인으로 부르지 말라. 우리는 홍콩인이다”

 

중국본토와 대비되는 홍콩정체성은 197-80년대부터 형성되어왔지만 모호한 측면이 있었고 중국반환 이후 약화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환 이후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소속감과 국민정체성이 강화되는 동시에, 홍콩인으로서의 의식도 강화되고 끊임없는 충돌과 갈등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터져 나오기 시작한 ‘홍콩족’ 논의는 아직 애매하고 취약한 지점들이 많다. 사실 홍콩이 중국 내에서 가져온 차별적 지위와 위상은 크게 쇠락해왔고, “중국본토 내에 또 하나의 홍콩을 여러 개 만들자”는 담론에서 볼 수 있듯 홍콩은 그저 여러 ‘도시’ 중 하나로 여겨져 온 측면이 있다. 그러한 홍콩에서, 비록 독특한 역사와 홍콩 특유의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하더라도, 그리고 고전적 ‘민족’ 개념이 아니라 하더라도, 과연 무엇에 근거한 ‘族’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홍콩을 수호하고 홍콩族群의 완전성을 지키자”는 주장과 함께 제시되는 요구들을 보면 “홍콩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자, 중국 전문인력의 홍콩수입을 규제하라, 홍콩인구정책에서 주도권을 가지자, 홍콩인이 홍콩취업과 진학에서 우선권을 갖게 하라”는 층위에 국한되어 있다. 이미 하루에 최소 150명이 본토에서 끊임없이 이주해오고 있는 홍콩에서 어떤 의미에서 독자적인 ‘홍콩족’이 가능할 것이며, 감정적 대립을 넘어 보편적 의미를 지니는 독자적 집단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인가? 그것은 단지 중국본토인을 배제하자는 배타적 행동을 넘어 어떤 의미 있는 정치적 행동과 결합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홍콩에서는 다양한 입장의 논의가 혼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홍콩인’을 넘어선 ‘홍콩족’에 대한 논의는 조금씩 정립되어갈 수도, 또는 약화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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