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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8 /2013.10] 기획 _ 동북의 오늘 (10)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노동자 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3 조회수 101

[Vol.38 /2013.10] 기획 _ 동북의 오늘 (10)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 노동자

| 기획 | 동북의 오늘 (10)

 

인천대 HK사업단에서는 HK사업 2단계 기간(2012.09 - 2015.08) 동안 중국의 동북 지역(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중점 연구 권역으로 설정하여 연구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중국관행웹진』은 동북 권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동북의 오늘> 칼럼을 기획하여 2013 1월부터 연재 중입니다. <동북의 오늘>에서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 전문가들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심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일상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 노동자 ⑤

박철현 _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

 

 통강사건은 2009년 발생한 대표적인 "군체성사건(群体性事件: 집단시위 및 소요사태)"이다. 비록 선양이나 랴오닝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통강사건은 국유기업의 구조조정(重组)과 소유제개혁(改制)을 둘러싸고 최근에 일어난 대표적인 군체성사건이며, 동북지역의 노후공업기지 개조과정에서 드러난 노동자의 '저항'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해 제기된 중국 학계의 분석이 가진 의미와 한계를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_ 통강사건

 

지린통화강철집단(吉林通钢集团)은 지린성 최대의 강철생산 기업으로 지린성 창춘(长春)에 본부를 두고 있다. 통강은 바로 이 지린통화강철집단의 자회사 중의 하나인 통화강철고분유한공사(通化钢铁股份有限公司)의 약칭이며, 지린성 통화시에 있다.

 

베이징 펑타이구(丰台区)에 소재한 베이징젠룽중공집단유한공사(北京建龙重工集团有限公司: 젠룽집단) 1994년 저장성 출신의 장즈샹(张志祥)이 창업한 기업을 모기업으로 해서 전국 각지의 국유강철기업들을 인수합병하여 단시간내에 기업규모를 확대시킨 후 투자를 받아서 1999년 베이징에서 성립된 기업이다. 젠룽집단은 이후 주로 노후공업기지 개조가 막 시작된 동북지역의 강철관련 국유기업들을 인수합병한다. 2005 9월 젠룽집단은 현금으로 자산을 증가하는 방식으로 통강의 주식 36.19%를 인수하고 기업 내부에 시장화 기제를 도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린성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는 지배주주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젠룽집단이 보유한 주식은 36.19% 밖에 되지 않지만 통강의 관리운영 방식은 국유기업이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후 금융위기의 영향 하에 젠룽집단은 2008년 통강의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통강에서의 철수를 결정한다. 그런데 통강집단은 계속 누적된 적자가 점차 흑자로 돌아서서 2009 7월에는 1억위안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자, 이때 젠룽집단은 지린성 국자위와의 새로운 협의를 통해 통강집단의 주식 66%를 보유하여 지배주주가 된다.

 

7 23일 아침 통강은 간부회의를 소집하여 젠룽집단이 지배주주가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통강주주지분구조조정방안요점(通钢股权结构调整方案要点)"을 알린다. 소식을 들은 통강의 노동자와 가족들 1천여 명은 생산을 중지하고 집회를 열고 항의를 시작하다. 다음날인 24일에도 노동자의 숫자는 수천 명으로 늘어나고 시위가 계속되자 젠룽집단 출신의 통강집단의 새로운 총경리 천궈쥔(陈国君)은 통화로 직접 가서 노동자들을 무마하려 한다. 공장에서 현장 노동자와의 담판과정에서 천궈쥔은 노동자에게 조업재개를 명령하고 이에 노동자의 분노가 폭발하여 천궈진은 집단구타를 당하고 사망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하여 천궈쥔을 구출하기 위해 공장진입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과 대치를 하게 된다.

 

_ 해석과 주장

 

통강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첫째, 지방정부와 사영기업의 "합법적 수단과 절차"에 의해서 국유기업의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이것은 기업개제(企业改制), 즉 소유제 개혁이 중국 국유기업을 "개혁"하는 중요한 기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통강집단은 인수합병을 거친 후 사영기업이 되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소속 노동자의 신분은 국유기업 노동자에서 사영기업의 계약에 기초를 둔 임금노동자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속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것을 구조조정 과정에 반영하는 노력이 부재했고 이것이 노동자의 저항을 불려 일으켰다는 점이다. 셋째, 시위가 격화되고 참가 노동자의 숫자가 급증하자 당국이 군체성 사건으로 전화될 것을 우려해서 경찰이 출동시키자, 노동자들은 시위를 멈추거나 저항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를 내걸고 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했다는 점이다. 넷째,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국유기업 개혁은 먼저 국유기업을 주식제로 전환시킨 다음, 이 주식보유지분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해서 기업지분의 소유주를 "다각화"하거나 젠룽집단 같은 사영기업에 매각하여 사영기업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은 모두 국가가 주도되었다는 점이다.

 

통강사건에 대해서 중국의 대표적인 노동문제 전문가 런민대학 창카이(常凯) 교수의 논문을 보자. 창카이는 통강사건의 원인을 몇 가지 지적한다. 첫째, 국유기업 개혁 과정에서 노동자와 자본이 직접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부가 개입을 하여 합법적이고 공정한 개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국자위(国资委)"가 아니라 "사자위(私资委)"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와 자본이 결탁하여 국유기업을 노동자의 이익에 반하고 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개혁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개혁개방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합법적 권익에 대한 의식이 제고된 노동자들은 정부와 기업에 대해서 그 합법적 권익에 대해서 주장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집단행동을 할 때도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질서를 지켜서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창카이 교수는 알려진 대로 기존의 노자관계를 포함하는 모든 노동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법률에 의거한 정규화를 주장하는 인물이다. 법률에 의해 규정된 노동자의 권리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중국의 노동상황에서 노동조합을 강화시키고 법률에 의거한 노동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는 것은 현재의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빈발하는 심각한 국유자산의 유실과 노동자 권리의 침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분명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러한 창카이 교수를 대표로 하는 중국 노동전문가 및 학계의 견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카이는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본인이 지적한 대로 "사자위"가 되어버린 정부의 관리감독기능이 커다란 문제를 가진 상황에서, 노동자의 저항이 발생하는 원인을 주로 경제적인 원인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즉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물질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국유기업의 소속의 노동자라는 지위가 개혁 때문에 불안해졌기 때문에 노동자의 지위 안정을 위해서는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조치들을 정부 주도로 법률에 의거하여 진행시켜야 하고 그래야 노동자의 저항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_ 노동자의 "정치적 지위“

 

그런데 중국의 전통적인 단위제를 가진 의미를 생각해보면, 국유기업 즉 단위는 소속 노동자에게 사회적 경제적 보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했다. 설사 공산당과 국가에 의해서 "부여"되었고 당-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받는 "영도계급"이라고 하더라도, 개혁기 이전 국유기업 노동자들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넘어서서 자신들이 혁명을 영도하는 사회의 선진계급이라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공장에 대한 주인의식"으로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통강사건에서도 시위과정에서 공장과 길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내건 플래카드와 구호는 "우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자식들도 학교를 가야 한다!(我们要生活,子女要上学!). 젠룽은 국유자산을 침해한다, 통강에서 꺼져라!(建龙侵害国有资产,从通钢滚出去!)"였다. 전자의 플래카드는 자신들의 사회경제적인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후자의 구호는 국유기업 노동자인 자신들은 단지 일개 공장의 직원이 아니라 공공의 상징인 국가의 재산을 보호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공적 재산을 침해하려는 사영자본의 인수합병을 저지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통강사건에서 보이듯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저항을 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안정된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키겠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사회주의 시기 설사 "부여된" 역할과 임무라고 하더라도 중국 사회 내의 다른 어떤 계급이나 집단과 비교해서도 독보적인 정치적 지위를 가진 국유기업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당-국가를 대표해서 주인을 해 온 공장이 개혁기에 들어서 구조조정과 소유제 개혁을 통해서 사영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통강사건과 같은 국유기업 개혁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창카이의 지적은 비록 법률에 의거한 정규화로 노동문제에 대응함으로써 현재의 국유자산 유실과 노동자의 지위하락과 같은 난맥을 일정부분 해결하는 긍정적 의미가 있지만, 기존 "우리는 공장의 주인"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국유기업 노동자가 가졌던 정치적 "자부심"과 역할이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해체되었고 이것이 사회경제적 지위의 불안정만큼이나 노동자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문제점이 하겠다. 정규화 법제화에 의해서 국유기업 개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는 현재 중국 노동자들의 위기에 처한 "정치적 존엄"을 회복시키거나 저항을 줄여보는 시도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news.ifeng.com/opinion/topic/tonggangxuean

http://baike.baidu.com/view/559379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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