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환 _ 인천대학교 HK 교수

_ 동청철도, 남만주철도, 길회철도의 상호관계

근대 중국에서 철도의 부설과 발달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철도부설권은 단순한 교통운수를 넘어 그것이 관통하는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배타적 지배권을 의미하며, 따라서 철도부설권의 분포는 바로 각 지역간 열강의 세력범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러시아는 淸日戰爭 이후 삼국간섭을 주도하였으며, 그 대가로 1896년의 청러밀약을 통해 東淸鐵道(China Eastern Railway)¹⁾ 부설권을 획득하였다. 러시아는 1898년 동청철도 부설에 착수하여 마침내 1902년에 철도 전선을 완공하였다. 東淸鐵道는 赤塔에서 시작하여 滿洲里, 海拉爾, 齊齊哈爾, 哈爾濱, 牡丹江, 綏芬河를 거쳐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시베리아철도 만주통과 노선이다. 동청철도는 구러시아, 이후 소련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세력권을 형성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결과 일본은 장춘에서 대련에 이르는 동청철도의 지선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였으며, 이 철도 노선이 바로 남만주철도이다. 이후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동청철도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세력과 남만주철도로 대표되는 일본의 세력이 북만주와 남만주에서 첨예하게 대치하였다. 중국 동북지역의 농산품 등이 남만주철도를 통해 대련항으로 운송되어 이출되거나 혹은 동청철도를 통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항으로 이출되면서 양 철도는 이 지역의 상품 운송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중반의 통계에서도 대련항과 블라디보스톡항의 상품 운송량의 비중을 비교해 보면, 전자가 55%, 후자가 45%로서 여전히 치열한 경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909년 9월 4일 일본은 중국과 <圖們江中韓界務條款>을 체결하고 한국과 중국의 국경을 圖們江으로 획정하는 동시에, 그 대가로 吉會鐵道의 부설권을 획득하였다. 조선총독부 寺內正毅 총독은 길회철도의 개통에 대비하기 위해 咸鏡線, 즉 元山으로부터 會寧에 이르는 철도노선을 1925년 이전에 완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1915년 9월 북부기점 웅진에 철도국 건설사무소를 설립하여 철도의 기공에 착수하는 동시에, 남으로는 원산으로부터 철도의 부설에 착공하였다. 길회철도가 북만주의 물동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동청철도와의 경쟁을 회피할 수 없음은 당연하였다. 이렇게 볼 때, 길회철도의 부설은 당초부터 동청철도를 겨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_ 중국 동북지역 商品流通網의 변화

길회철도는 吉長鐵道의 연장선상에서 부설된 만주횡단철도로서, 吉敦鐵道, 敦圖鐵道의 완성을 통해 전 구간 노선을 개통할 수 있었다. 일본은 1907년의 <新奉 및 吉長鐵路에 관한 협약> 제2조 및 1909년 9월의 <간도에 관한 협정> 제6조에서 길회철도의 부설권을 획득하였으며, 1933년 2월에 전 노선이 개통되었다. 길회철도의 완성은 북만주에서 동청철도와 병행하는 새로운 유통망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하였다.

신설 유통망은 당연히 새로운 종단항구의 정비 및 축조가 필요하였으며, 이에 따라 나진항이 核心 終端港으로 선정되었다. 길회철도를 통해 나진항으로 운송된 상품을 태평양을 통해 일본이나 유럽, 미주 등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해운업계는 기존 선박의 편수와 항로를 크게 증설하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설하였다. 이와같이 길회철도는 바로 만주와 한국 북부지역, 태평양을 연결시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북만주와 北鮮 간의 교통기관에 일대 새로운 기축이 출현하는 것으로서, 종래 대련항이나 혹은 블라디보스톡항을 경유하여 해외로 운송되던 북만주의 상품 운송 경로에 일대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길회철도는 명확하게 동청철도를 견제하기 위한 병행선이었으며, 북만주에서의 상품 유통을 상당 부분 분담함으로써 동청철도의 발전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부설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북만주의 물동량을 둘러싸고 동청철도와 길회철도는 상호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_ 상품 운송량의 감소와 동청철도의 매각

길회철도의 각 구간이 점차적으로 완공됨에 따라 부설의 목적인 동청철도의 견제라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동청철도의 경영에 적지않은 타격을 주게 되었다. 이미 1927년 길돈철도가 개통되면서 북만주의 상품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분담하기 시작하였으며, 더욱이 1933년에 마침내 길회철도의 전구간이 개통됨으로써 동청철도를 견제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길회철도의 연선이 지나는 琿春, 汪淸, 延吉, 和龍, 敦化, 樺旬, 額穆, 永吉, 磐石, 海龍, 雙陽, 舒蘭, 長春, 五常, 楡樹, 阿城, 雙城, 濱江, 呼蘭, 巴彦, 蘭西, 綏化, 慶城, 海倫, 綏愕, 望奎, 通北, 拜泉, 克山, 龍鎭, 訥河 등 지역은 대두를 포함하여 두류, 고량, 粟, 옥수수, 소맥, 쌀, 기타 잡곡 등이 생산되었으며, 생산품은 길회철도를 통해 운송되었다. 따라서 길회철도의 완성과 나진항의 축조 이후 철도가 지나는 연선지역의 무역 규모는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동청철도의 경제적 가치의 하락은 비단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군사 전략적 가치의 하락을 수반하였다. 특히 만주국이 수립된 이후 동청철도가 그 영토 내에 포함됨으로써 상업적 가치로 보나, 군사 전략적 가치로 보나 모두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군사상으로 보더라도 일본은 길림으로부터 직접 東海로 이어지는 길회철도를 통해 병력을 신속히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1935년 소련은 동청철도를 명의상 만주국에, 실질적으로는 일본에 매각하였다. 철도 매각의 근저에는 동청철도의 경제적 가치의 급속한 하락과 경영의 악화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일본제국주의가 동청철도의 병행선인 만주관통노선, 즉 길회철도를 부설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초래한 결과였다. 길회철도의 부설은 북만주와 한국 북부지역, 태평양을 연결시키는 새로운 상품유통망의 출현을 의미하였다. 이에 따라 종래 남만주철도-대련항과 동청철도-블라디보스톡의 양대 유통망을 통해 수이출되던 만주지역의 상품 가운데 적지않은 부분이 장춘-길회철도-회령-나진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상품유통망으로 전환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 블라디보스톡항의 쇠퇴와 동청철도의 경영 악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길회철도 부설에 의한 동청철도의 경영 악화 등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던 소련으로서 일본의 만주침략과 만주국의 수립 등 일련의 정치적 사태에 직면하여 동청철도의 매각은 일소간의 군사적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통로와 명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 이 철도는 東淸鐵道, 東支鐵道, 東省鐵道, 中東鐵道, 北滿鐵道, 長春鐵道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웠으며, 辛亥革命 이후 중국에서는 중동철도, 일본에서는 동지철도라는 명칭으로 많이 불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