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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4 /2013.06] 논단 _ 중국 특색의 비공식경제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2 조회수 77

[Vol.34 /2013.06] 논단 _ 중국 특색의 비공식경제론 *

장호준 _ 인천대학교 HK 교수

 

최근 사회경제사가 황종즈(宗智; Philip Huang)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비공식경제(非正規經濟; informal economy)의 팽창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비공식경제 현상에 주목하지 않고서는 현대 중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고 역설하였다(2010, 2011). 좀 더 이르게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변 경제학자 후안강(胡鞍) 2000년대 중반 도시 비공식경제가 중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 이상이며, 중국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실질적인 동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2006). 한편으로는 이러한 저명한 학자들의 과감한 주장을 디딤판으로 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비공식적’ 경제 현상의 지속적인 확산에 주목하여,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이와 관련된 수많은 연구 논문들이 생산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약 20여 년간 서구 사회과학계에서 논쟁적인 주제의 하나였던 비공식경제론이 약 20년의 시차를 두고 중국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비공식부문/경제라는 개념은 영국의 인류학자 하트(Keith Hart) 1971년 가나(Ghana) 도시 지역의 고용 현상의 특징을 개념화하면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 그는 1960년대 가나에서 급속한 도시화가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도시민들이 자본주의적 임노동 관계에 편입되지 않고 토착적인 자원을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수입창출 행위에 종사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이를 비공식부문이라고 칭하였다. 하트는 이러한 비공식 경제활동은 임노동 고용으로 특징지어지는 공식부문으로부터 자율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파악했다. 하트의 주장과 비공식부문/경제라는 용어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정책 개발자들에 의해 곧바로 수용되었다. ILO는 이후 급속한 도시화의 결과로 생겨난 도시 잉여노동력을 비공식부문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1970-80년대에 걸쳐 아프리카 및 중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비공식부문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들을 입안하여 해당 국가들에 권고, 시행하도록 하였다.

 

ILO에 의해 세계적으로 유포된 비공식경제론은 이후 서로 다른 정치적, 이론적 지향을 지닌 기관들과 학자들에 의해 수용되면서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포르티스(Portes), 카스텔스(Castells) 등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후기구조주의자들은 비공식경제를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변동의 산물로 파악하고 당분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간주하였다(1989). 이와 달리, 페루의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 에르난드 데 소토(De Soto)는 비공식경제가 국가의 과도한 규제와 까다로운 관료제적 절차로 인해 팽창되지만, 인민들이 법률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부를 축적하는 이러한 비공식 경제 활동은 오히려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기업가적 역동성의 산물이라고 찬양하였다. 그런가 하면, 구소련 및 동구권의 체제전환 문제가 관심을 끌면서 ‘second,’ ‘parallel economy’ 등의 개념이 비공식경제와 혼용되기 시작했다. 세계은행 등 다양한 기관 및 학자들은 공식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비합법적인 경제활동을 개념화하기 위해 ‘unofficial,’ ‘underground,’ ‘shadow,’ ‘non-observed,’ ‘hidden,’ ‘gray,’ ‘moonlight economy’ 등의 용어를 고안하여 비공식경제와 구별하거나 혼용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ILO는 통계상의 필요 및 정책적 전환에 따라 1993년과 1999년 최소 2차례에 걸쳐 비공식경제의 개념과 그에 대한 관점을 대폭 수정하기도 하였다. 논의가 이렇게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됨에 따라, 공식-비공식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가 하면, 그 개념상의 혼란으로 인해 이 용어/개념이 학술적 대화의 도구로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제기되고 있다.

 

서구학계에서 비공식경제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소강상태에 접어든 2000년대에 들어 중국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서구자본주의 및 그 주변부 국가의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출현했던 사회경제적인 현상들이 시장경제의 도입이 늦어졌던 중국에서 뒤늦게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요인도 작용했는데, 서구에서 활발히 논의되던 비공식부문/경제론은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학자들과 관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장경제체제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비공식 부문/경제와 같은 용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계획경제체제의 불완전성과 부작용은 물론 당-국가 관료주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영어의 ‘informal sector/economy’에 상응하는 중국어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중국에 새롭게 등장한 비공식경제 개념이 학계와 사회의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1996년 공식적인 정부기관인 상하이 시정부가 국유기업 실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사업을 실시하면서부터다. 실직 노동자들이 개체호 및 사영기업 부문에 재정착하는 것을 지원하는 데 한계에 직면한 상하이 시정부는 1996 ILO와의 연합 심포지움을 계기로 ILO의 비공식부분에 대한 정책적 권고를 수용하여 실직노동자들의 비공식부문 취업 장려정책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상하이 시정부의 관련 부서는 실직 노동자들이 공상국에의 등록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 비공식취업노동조직(非正业劳动组织)’라는 범주의 경제활동조직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고 각종 정책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흔히 ‘상하이 모델(上海模式)’로 불리는 이 사업은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데, 중국의 언론들이 그 성과를 연달보도하면서 비공식부문, 비공식취업, 비공식경제 등의 용어가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상하이 시의 재취업 사업을 계기로 촉발된 비공식취업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 초반 중국 내 사회과학계에 수렴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편으로는 비공식경제에 관한 ILO 및 서구학계의 다양한 관점들이 소개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9차 경제개발 5개년 기간(1996-2000) 동안의 사회경제적 변화 내용이 논의에 반영됨에 따라 비공식경제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시각이 다변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서 언급한 비공식경제에 관한 서로 다른 관점들 또는 용어들을 차용하여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변화 양상을 분석하는 논문들이 출판되고 있다. 서구학계에서의 비공식경제라는 용어와 함께 그 혼란스런 관점과 용법도 함께 수입된 것이다.

 

중국의 비공식경제론의 개념상의 혼란과 이로 인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잠시 제쳐두더라도, 비공식경제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주의를 환기하고자 하는 점은 각종 비공식경제론자들이 서구학계의 특정 관점 및 이론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학계에서의 논의와는 달리, 비공식경제와 불법경제를 선험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상당수 비공식경제론자들이 비공식경제의 불법적 측면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반면, 중국학계에서는 공통적으로 불법경제는 비공식경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정언적(定言的)인 정의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비공식취업/부문/경제와 같은 용어가 상하이 시정부라는 ‘공식적인’ 정부 기관에 의해 도입되고 인정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2000년대 초반부터 비공식경제에 관한 학계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또한 비공식경제 담론이 급속하게 확대재생산 되기 시작한 것은 어떤 배경에서였을까? 무엇보다도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사회경제적 실재가 급속하게 변화한 데서 기인한다. 1996-2000년의 9-5기간은, 후안강(2002)이 슘페터를 인용하여 “창조적인 파괴”의 시대라 칭한 바와 같이, 중국의 기업구조 개혁과 사회구성 재편의 속도와 범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솔린저(Solinger)는 이 기간의 이러한 변화가 국가의 자유주의적 정책 전환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국가의) 명령에 의한 경제 비공식화(economic informalization by fiat)”라는 말로 요약한다(2002).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두 과제----국유기업의 지속적인 개혁과 도시 실업 문제 해소----를 동시에 다뤄야 했던 중국 정부로서는 복지 문제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는 비공식부문/경제의 성장을 방임 또는 지원하는 것이 상당히 효율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9-5 기간 동안 급속하게 진행된 경제 비공식화 현상은 국가에 의해 기획되고 추동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비공식화 과정이 순기능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1990년대의 사회경제적 자유화 과정은 도시 실업 문제 이외에도 부패, 불균형한 지역 발전, 빈부 격차 등의 문제가 심화되고 다양한 형태의 불법적인 경제활동이 증가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 부작용들은 사회 안정을 위협하고 이에 따라 체제의 정통성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심각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당과 국가는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2001년부터 매년 ‘시장경제질서정돈 및 규범화(范市经济秩序)’ 캠페인을 전국적인 차원에서 실시하기 시작했다. 후안강과 왕샤오광을 비롯한 상당수 지식인들은 시장질서 확립이라는 당-국가의 제창에 곧바로 호응하였다. ‘시장경제질서’가 어떠한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 막연한 개념으로 남겨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캠페인과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사회적 공명(共鳴)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시장경제질서 확립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무질서, 혼란, 부패 등 대립적인 현상을 기술하는 단어들과 수사(修辭)적으로 병치되어 강조되고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의 이러한 사회 상황은 왜 이 시기에 비공식경제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는지, 그리고 중국의 비공식경제론이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단초를 제공한다.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사회주의적 규획경제이론의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경제 주체들과 국가의 통제가 용이하지 않은 경제 현상들이 등장했다. 특히, 남순강화 이후 급속하게 팽창한 개체호와 사영기업은 이미 법률적 지위를 확보하고 중국경제 성장 과정의 실질적인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정치적 위상은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겨져 있었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경제현상은 사회주의적 이념체계와 정치적 여건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학술적으로도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비공식취업/부문/경제 등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설명, 기술하는 데 학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적합한 개념이었다. 이는 특히 비공식경제라는 용어가 공식경제 또는 여전히 빈(empty) 개념으로 남아있는 시장경제질서와 그 대립적 현실인 불법경제 또는 무질서 간의 임계(臨界)적 모순을 매개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관련해서다. ,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든지, 비공식부문/경제 등의 용어는----사회주의적 규획경제의 틀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법률적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더 이상 비합법적 또는 불법적(非法)인 것으로 규정할 수도 없는----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작동하며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인 경제적 실체를 포괄적으로 외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2000년대 초반 이래 중국에서 비공식경제에 대한 논의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단지 그 개념이 사회경제적 변화를 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학술적인 유용성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공식경제의 현실적인 영향력이 점점 축소되고 불법/지하경제가 날로 팽창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어 있는 개념이자 공허한 구호로서만 작동하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질서”와 체제에 위협적인 현실적 실재로서의 각종 사회경제적 무질서 간의 간극을 매개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유용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 이 글은 필자의 졸고(拙稿) 「중국의 비공식경제론과 그 사회정치적 함의」, 『국제·지역연구』 (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20 3. pp.111-149의 일부분을 요약, 수정한 것이다. 참고문헌은 이 글의 출처를 밝히는 것으로 갈음한다.

 

* 이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1. 胡鞍(2006), PPT 발표문 [The Emergence of Informal Sector and the Development of Informal Economy in China's Transition: A Historical Perspective (1952-2004)]

2. http://shxxjz.ebdoor.com/Certificates/27769.aspx

3. http://goo.gl/KCH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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