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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4 /2013.06] 기획 _ 동북의 오늘 (6)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노동자 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2 조회수 41

[Vol.34 /2013.06] 기획 _ 동북의 오늘 (6)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 노동자

| 기획 | 동북의 오늘 (6)

 

인천대 HK사업단에서는 HK사업 2단계 기간(2012.09 - 2015.08) 동안 중국의 동북 지역(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중점 연구 권역으로 설정하여 연구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중국관행웹진』은 동북 권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동북의 오늘> 칼럼을 기획하여 2013 1월부터 연재 중입니다. <동북의 오늘>에서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 전문가들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심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일상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 노동자 ①

박철현 _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

 

_ 동북지역의 전형단위제와 톄시구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톄시구(鐵西區)는 개혁개방 이전 사회주의 중국의 대표적인 공업기지로, 중화학 공업 위주의 중대형 국유기업들과 소속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1990년대 들어 중국의 급격한 자본주의적 변화와 함께 국유기업의 시장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업경영의 비효율 문제가 대두되면서 톄시구의 많은 국유기업들은 개혁의 압박을 받지만 이 지역 특유의 전형단위제(典型單位制)로 인해 산발적인 개혁만 이뤄지다가 중앙정부 차원의 동북진흥정책이 실시되는 200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국유기업 개혁이 진행된다.

 

전형단위제란 중국의 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직인 단위제도가 전형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데, 사회주의 시기 중국에서 특히 동북지역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동북지역은 때로는 수만 명에 달하는 소속 노동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주로 중앙정부 소속의 국유기업들이 있던 곳으로 시장화 개혁의 심화와 함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국유기업 개혁 압박을 받지만 종종 성급(省級) 혹은 시급(市級) 지방정부 차원의 개혁요구에 저항하는 현상이 빈발했다. 이로 인해 톄시구로 대표되는 동북지역의 전형단위제는 다른 지역의 국유기업 개혁이 시작된 지 이미 상당 시간이 흐른 2000년대 초반까지도 온존되어 있다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노후공업기지의 개조를 그 핵심내용으로 하는 동북진흥정책이 실시된 후에야 비로소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_ "선진적 영도계급", 노동자

 

톄시구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중화학 공업기지였기 때문에, "동방의 루르", "공화국 공업의 큰아들", "공화국 장비부" 등으로 불려졌고, 소속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중국 건설의 "영도계급"이자 "선진적 모범노동자"가 되었다. 즉 사회주의 시기 중국의 국가는 톄시구에 대한 "공간생산(production of space)"을 통해 노동자를 하나의 계급으로서 "호명(interpellation)"한 것이다. 공간생산이란 공간을 사회적 생산의 과정이자 결과로 보는 것으로, 톄시구의 경우에도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공간은 국가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생산된다. 또한 톄시구의 노동자는 이러한 공간의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계급적 주체로서 호명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동북진흥정책에 따라 본격적인 개혁이 진행되면서 톄시구에서도 국유기업 개혁이 이뤄지는데, 톄시구 토지사용권 매각으로 확보한 수익을 재원으로 톄시구에 있던 국유기업들을 선양경제기술개발구로 옮기는 공간생산 방식을 통해서, 자본주의 지향의 산업구조조정과 소유권 개혁을 달성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상 자본주의화에 다름 아닌 시장화 개혁으로 인해 노동자는 사회주의 영도계급이자 선진적 모범노동자에서 "계약"에 의한 임금노동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노동자를 계속해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선진적 영도계급이 될 것을 요구하고, 톄시구는 여전히 이러한 모범노동자의 공간이자 과거의 "빛나는" 공업문명의 계승자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임금노동자가 되어버린 톄시구의 노동자들은 국가가 톄시구에 대한 공간생산을 통해서 자신들을 개혁기에도 선진적 영도계급이자 모범노동자로 계속 "호명"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들은 결코 국가가 그들을 호명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저항"하는 매우 혼란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에는 국가가 톄시구 공간에 대한 해석하고 의미 부여하는 것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그 내용을 직접 제시하고, 그 각각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신문, 인터뷰, 조사 등의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_ 공화국의 모범적 공업문명정신의 공간

 

중국공산당 선양시 톄시구위원회 선전부는 『공업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톄시문화의 소프트파워를 제고하자』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톄시구는 이미 국가의 중요한 공업기지와 국내 최대의 도시공업집중지역이 되었으며, 공화국 공업사상 500개가 넘는 최고를 달성하여 공화국 공업의 큰아들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기초가 튼튼한 공업문명이 누적되었으며...공업문명의 계승해야 할 중대한 의미를 부여 받았다..."

 

 

이것은 톄시구를 공화국의 모범적 공업문명정신과 우세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생산에 대해서 1933년 선양에서 태어나서 기술노동자로 평생을 지내온 왕자선(王家森)은 『공화국의 공업총아』라는 글에서 "...우리 톄시구의 기술노동자는 루마니아에 파견되어 공장을 수리하는 것을 도왔고, 1980년에는 일본에서 수입된 기계의 수리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세계 일류의 일본 기술자와 논쟁하여 승리하여 거액의 외화를 아끼는 승리를 거두었다."로 인식하여, 과거의 톄시구를 일류의 기술 노동자의 공간이며 그곳의 노동자는 국가를 대표하여 국위를 선양하는 존재로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과 달리, 1995년 동북지역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조사에서,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자부심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지만 국유기업 개혁의 심화와 함께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주도적 지위는 이미 하락했다..."로 인식하여, 톄시구의 과거에 대한 인식과 달리 현재의 국유기업 개혁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공장에 대한 인간관계와 주인의식에 대한 평가는 이미 매우 낮았다. 1997년의 조사에서도, 어떤 노동자는 "...나는 지금의 인간관계가 이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무슨 어려움이 있든 바로 상사들을 찾았고, 상사들은 매우 진지하게 도와줬다. 그런데 지금은 상당수의 경우 선물이나 돈이 있어야 비로소 관계를 맺으려 하고...공장에는 노동자의 주인지위는 이미 보이지 않고, 노동자의 발언은 먹혀들지 않고, 말해 봤자 말 안 하느니 못하다..."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듯 톄시구 노동자는 톄시구의 과거를 "공화국 공업의 큰 아들", "공화국 장비부"로 해석하는 국가의 공간생산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시작되었고, 2004년부터 본격화된 국유기업 개혁의 결과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노동자들이 하강(下崗: 면직)하자 과거의 톄시구의 공간생산에 대한 인식과는 다른 인식을 보여준다.

 

_ 하강의 도시(下崗之城)에서 현대적 장비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지로

 

심양일보(瀋陽日報) 2009 518일 선양중형기계집단유한책임공사(瀋陽重型機械集團有限公司)가 선양경제기술개발구로 옮겨가는 것을 보도하면서, "...톄시의 지리적 위치에는 이별을 고할 수 있지만, 톄시 6

0년의 역사에는 이별을 고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 공장이 상징하는 톄시 60년의 역사를 "...선양중형기계집단유한공사는 빛나는 과거를 가지고 있어서...동시에 고통스런 과거도 가지고 있는데 한때 3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하강을 했고...힘겨운 변신을 거치며 수백 개의 중대형 국유기업들이 계속해서 톄시구를 떠나고 있다..."고 보도한다. 심양일보는 이 같은 내용을, 테시 60년의 역사를 폐허(해방 후)⇒회복(1 5개년 계획) ⇒휘황(1960, 70년대) ⇒침륜(1980년대) ⇒진통(국유기업개혁) ⇒재생(국유기업개혁이후)라고 하는 일련의 표제어로 요약한 후, 랴오닝성 발전개혁위원회 고위관료의 말을 빌어서 톄시구 산업구조개혁을 옹호하고 기업효율을 제고하여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자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언론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공간생산은 과거를 "빛나는 과거"를 해석하고, 개혁기의 일정기간을 "빛나는 미래"로 나가기 위한 일시적인 고통으로 주장한 후, 현대적인 장비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지로 톄시의 미래를 투사하는 낙관적인 전망이다.

 

한편 심양만보(瀋陽晩報), 선양중형기계집단유한책임공사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노동자들은 공장이전을 기념하여 고로(高爐)에서 나온 황금색의 쇳물로 "톄시NHI북방중공(鐵西NHK北方重工)"이란 글자를 새기자 박수치고 환호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여기서 일한 지 곧 40년이 되는데, 이 작업장과 고로는 내 오랜 전우 같이 한평생 철강을 만들어 냈는데, 오늘 불꽃이 마구 튀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울렁거리네. 이 순간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겠고 몹시 견디기 힘들다. 나는 정말로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노동자들은 그리움의 감정으로 선양중형기계집단유한책임공사로 대표되는 톄시구의 과거를 해석하고 있다. 그럼 공장이전이 진행 중인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현재 진행 중인 국유기업 개혁과 톄시구의 미래에 대해서 국가는 『선양톄시: 노동자가 바로 주인공』이라는 글에서 개혁이 지난한 과정임을 설명하고, "...랴오닝성은 공화국 공업의 큰 아들이고, 큰아들은 부모를 위해 많은 일들을 돌봐야 하고...개혁은 노동자 계급에 달려있고...비록 우리 톄시구의 노동자들은 많은 진통을 겪었지만 개혁의 성과는 이미 노동자계급에게 보답을 했다... "고 한다. 즉 노동자들이 개혁을 위해서 우선 희생을 해야 했고 그러한 희생에 감사를 표하며 통계수치를 동원하여 공화국은 이미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보답을 했다고 하면서, 테시는 개혁기에도 영원히 노동자 계급의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국유기업 개혁에 대해서 선양시 44세의 하강 노동자는, "...요즘은 사회주의가 아닌 것 같다...아마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건너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빈부차이가 없던 마오쩌둥 시대의 사회주의에 대해서 깊은 그리움을 표하고, 언론을 통해 톄시구의 미래에 대해서 국가가 주장하는 "현대적인 장비제조업과 서비스 산업 중심지"라는 낙관적인 공간생산에 대해서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1. http://www.nen.com.cn/77972966595362816/20070822/2295348.shtml

2. http://life.big5.dbw.cn/system/2013/05/24/054788309.shtml

3. http://cn.88db.com/china/shenyang/travel/travel_package/ad-152598/

4. http://news.xinmin.cn/rollnews/2009/05/19/19775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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