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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3 /2013.05] 기획 _ 동북의 오늘 (5) 네 집단의 상호 관계의 매개체: 한국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2 조회수 106

[Vol.33 /2013.05] 기획 _ 동북의 오늘 (5)    네 집단의 상호 관계의 매개체: 한국어

| 기획 | 동북의 오늘 (5)

 

인천대 HK사업단에서는 HK사업 2단계 기간(2012.09 - 2015.08) 동안 중국의 동북 지역(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중점 연구 권역으로 설정하여 연구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중국관행웹진』은 동북 권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동북의 오늘> 칼럼을 기획하여 2013 1월부터 연재 중입니다. <동북의 오늘>에서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 전문가들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심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일상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네 집단의 상호 관계의 매개체: 한국어

강주원 _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_ 중국 단동에서 한국어를 공유하는 네 집단

 

조선족 신문(2007)

북한 잡지(2007)

 

1998년부터 단동에서는 한국방송을 위성방송으로 청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 요녕성 당 일간지 요녕일보(遼寧日報)의 한글판 주간지인 “요녕조선문보(遼寧朝鮮文報)”가 있다. 이 신문은 조선족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에서 배달되는 신문과 잡지, “조선(북한)관광” 안내책자들을 볼 수 있다. 요동대학의 한국어과에는 약 800명의 중국 대학생들이 조선족 선생뿐만 아니라 북한과 한국에서 온 선생들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어로 만들어진 잡지들은 조선족과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진달래, 메아리와 단동 한국인회가 “한국인 소식”에서 이름을 바꾸어 2010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압록강연가”가 있다. 한국 위성 방송을 청취한 북한사람이 한국사람에게 홈쇼핑 물건을 부탁하는 곳이 단동이다. 또한 2012년 북한의 황금평을 맞대고 있는 단동의 국경지역에는 “국경언제소개”를 제목으로 표시한 안내판이 설치되었다. “언제”는 한국에서 주로 “제방”이라는 단어로 사용된다. “언제”는 단동의 북한사람과 조선족에게 통용되고 있는 말이다.

 

이와는 달리, 문화대혁명 시기에 한족 문화로 동화가 조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1970-1980년대를 보낸 조선족이 조선(한국)말을 하는 기회도 점차 줄어들었던 곳이 단동이다. 그 결과 특히 1980년대 단동시내 조선족은 조선족 학교보다는 중국 학교를 선택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곤 했다. 즉 조선족 역시 19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를 선택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와 관련되어 1997년에 이곳의 조선족 언어생활을 연구한 왕한석은 “30대 및 20대의 경우에는 한어를 듣는 것, 말하는 것, 글로 쓰는 것 모두를 다 잘하는 편이고 특히 외부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조선어보다 한어에 더 익숙한 편이다”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2010년 전후 40-50대인 단동의 토박이 조선족 중에는 한국어를 듣고 이해하지만 말과 쓰기는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_ 한국어 활성화의 배경: 북한을 상대로 한 교류의 필요성

 

문화대혁명 시기를 경험한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단동에서 한국어의 흔적은 조선족 학교 간판이 유일했다”는 60대인 조선족의 언급을 통해서, 그 당시 단동에서 한국어 사용과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단동시내 토박이 조선족조차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나의 경우(당시 20대 후반)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다시 배우고 익혔다”고 말한다. 특히 이들이 다시 한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 이유와 동기는 북한을 상대로 한 경제 교류의 필요성 때문이다.

 

이와 같이 최소한 한민족의 정체성 혹은 한류의 영향으로 정체성을 논할 수 있는 조선족이 대거 거주하는 동북 3성의 타 지역과는 다른 맥락의 요소가 단동에 존재한다. 1990년대부터 등장한 단동시내의 한글 간판들이 하나둘 생긴 배경과 이유를 보면, 이곳이 단순히 조선족이 한국어를 유지하면서 살아온 삶만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영향만으로 해석될 수 없고, 오히려 북한의 영향이 먼저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한국어 간판들의 등장 배경에는 처음에는 북한사람을 상대로 한 경제 교류와 활동의 성격이 강했다. 한글 간판의 표현들은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북한화교나 조선족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실제로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단동에서 한국어의 활성화의 배경 및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단동의 토박이 조선족이 북한사람을 상대로 경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어 간판과 한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단동의 토박이보다 한편으로는 한국어 사용이 능숙한 타 지역의 조선족과 북한화교가 단동에 이주를 하면서 중·조 국경 무역 교류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이런 토대에서 대북사업을 원하는 한국사람도 개입을 하게 되면서, 단동에는 다양한 한국어 간판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거리 풍경에 대해서 단동사람은 네 집단이 단동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양상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북한사람의 영향 즉 북한과의 교역 때문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한다.

 

2012년 현시점에도 한국어 간판의 내용들은 주로 북한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이 주로 구입하는 상품명들이 상점의 유리창에 표기되어 있다. 한국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들도 북한사람 그리고 중·조 무역을 하는 북한화교와 조선족을 상대하기 위해 한국산임을 명시한다. 이에 반해서 농수산물을 제외하고 북한 제품임을 내세운 간판들은 소수이다. 이유는 북한 농수산물과 제품들은 단동시내를 거치지 않고 보세무역 방식들을 통해서 바로 한국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북한사람이 연관되지 않은 한국어 간판은 단동한국인회, 한국문화원, 한글학교, 한국교회뿐이라는 말도 있다. 이와 같이 단동시내에서 한국어의 활성화의 근간인 네 집단의 경제 교류의 방식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변화가 없다.

 

한국산을 강조한 상점의 간판(2011)

북한산을 강조한 상점의 간판(2007)

 

_ 한국어: 삶의 도구 및 관계맺음의 동기

 

한국사람은 타국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동포를 만나면 반가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 만남을 통해서 동질성 즉 민족애를 느낀다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단동에서는 이러한 만남들이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 먼저 중국어와 한국어 사용 능력은 네 집단 사이에 삶의 방식과 만남을 다양하게 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은 말이 통하는 조선족과 북한화교에게 중국어와 관련되어 일정 부분 의지를 하곤 한다. 그들은 한국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만남의 과정에서 소통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 오히려 단동에서 만날 수 있지만 남북 관계 때문에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은 공식적인 만남에 제한들이 있고 조심을 해야 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북한화교와 조선족이 중간에 개입된 간접적인 만남의 모양새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화교와 조선족은 통역자의 위치가 아닌 경제 활동의 중간자로서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중국어에 비해서 한국어가 서투른 조선족은 통역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서툰 북한화교는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가 그들의 삶의 수단이 되곤 한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네 집단은 “중국 단동에서 국경 무역을 할 때,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 통하는 사람을 조심해야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런 농담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의 관계가 주로 경제 활동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즉 네 집단은 한국어가 통하기 때문에 중·조 국경 무역과 관련된 경제 활동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은 단동에 소재하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민경련이라는 창구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네 집단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네 집단 가운데 두 집단만이 교류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사례를 한국사람을 중심으로 언급하면, 단동은 중국이지만 대북사업을 주로 추구하는 한국사람은 한국어를 경제 활동의 도구로 삼는다. 단동에는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신고서”를 제출하는 방법 이외에도 북한사람을 만나는 비공식적인 방법과 소개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중국사람인 조선족이 개입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한다. 그런데 통역을 담당한 조선족이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어가 능통하지 않고, 북한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때, 중국 국민이지만 한국어를 잘하고 북한 사정에 능통하다는 북한화교를 소개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람은 고민을 한다. 중국에서 조선족으로부터 사기를 많이 당했다는 경험담과 선입견이 강한 한국사람은 조선족에 비해 북한화교가 사업파트너이자 통역으로 적합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북한화교는 결국에 중국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하다.

 

그렇다고 그들은 북한사람을 직접 만나기에는 단동에서의 삶의 연륜과 인맥이 부족하다. 한국사람은 북한화교와 조선족이 담당할 수 있는 중국 국민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용을 해야 되는 상황이다. 그들을 중간에 둠으로써, 북한사람과 직접적인 거래를 했지만 한국사람은 북한화교 혹은 조선족과 경제 교류를 한 모양새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동원되는 한국어와 관련된 전략 가운데 하나는 소위 조선어 문체 사용하기와 철자 틀리기 그리고 중국회사 도장 찍기 등이 있다. 한국사람은 자신이 작성하였지만, 일부러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북한화교와 조선족이 사용하는 문체와 단어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단동에 나와 있는 북한사람은 공식적으로 민경련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한국사람을 만나 경제적 교류를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경우 비용이 많이 지출된다는 이유 때문에 본인들뿐만 아니라 사업 파트너인 한국사람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도 한국사람을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과정에 북한화교와 조선족이 필요하다. 그런데 북한화교는 말도 통하고 고향도 같지만, 예전부터 북한화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반면에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고 말도 통하지만, 북한화교보다 자본주의에 더 물들은 사람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을 상대하지 않더라도 중국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 북한사람은 자신들보다 중국어도 잘하고 중국 사정에 능통한 북한화교와 조선족이 필요하다.

 

_ 네 집단의 한국어 사용의 사례들

 

네 집단은 한국방송을 공유하기도 한다. 북한화교와 조선족은 한국어가 능숙하지는 않지만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네 집단이 서로 만날 때, 단어와 억양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네 집단 간의 대화에서 한국사람은 조선어의 어투에 적응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영어 단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오히려 조선족은 중국어가 능숙하지 않을 경우, 북한화교는 조선어를 잘하면서도 북한의 사정에 대해서 모르는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받곤 한다. 한국사람이 북한사람을 만날 때 어휘의 선택에서 몇 가지만 주의하면 대북사업을 제법 했다는 인상과 신뢰감을 그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우선 가급적 쓰지 말아야할 말로는 한국과 남한, 북조선과 북한 등 국호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낮춤 표현, 예를 들어 “김정일씨” 또는 “김일성이가……했다” 등의 표현이 있다. 한국이라는 국명은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남조선이라는 단어는 북한이 한국을 비하하거나 비난할 때 자주 쓰던 말이기 때문에, 북조선이라는 표현도 그들에게는 같은 뉘앙스로 받아들인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표현도 똑같이 한국이라는 명칭에 담긴 맥락에서 사용을 자제한다. 그래서 북한과 한국을 언급할 때는 남측과 북측 또는 남쪽과 북쪽이라는 단어를 네 집단은 많이 사용한다. 혹은 친한 관계에서는 아래 동네 혹은 윗동네라는 말을 사용한다. 특히 한국사람은 북한의 지도자에 대한 표현은 가장 조심해야 될 부분으로 간주한다. 북한과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가급적 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네 집단 사이에는 한국어 단어들 가운데, 국호 언급을 회피 전략이 구사된다. 하지만 북한사람이 자신의 나라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조선이라는 단어는 한국사람만이 피하는 단어이다. 북한화교와 조선족은 일부러 조선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사용함으로써, 북한사람에게는 신뢰감과 한국사람에게는 본인들이 대북사업의 적임자임을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활용한다. 한편 북한사람이 사업 파트너인 한국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지만, “대방 측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문서를 단동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이것은 상대방을 지칭할 때, 특정인이 아닌 대명사를 사용하는 방식의 일환이다. 한국사람 사이에서도 단동에서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핸드폰으로 할 때는 “그쪽”, “저쪽”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두고 네 집단의 사람들은 “도청 때문이다” 혹은 특히 한국사람은 “한국에 들어가서 문제가 생길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네 집단은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북한과 한국의 거래를 표현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한편, 나는 2013 1월부터 “중국관행웹진”에 5회에 걸쳐 단동과 네 집단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마무리하는 글을 다음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2013 2월 북한의 제 3차 핵실험 이후, 며칠 뒤 나는 북한과 중국의 무역과 관련되어 통역 및 번역 일에 종사하는 조선족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중국 단동의 봉제공장에 근무하는 북한 노동자의 임금 계약서를 첨부파일로 보내주었다. 그 중에 일부분을 원문 그대로 소개하면 “ 00 00성원들이 현지(단동)에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한 때로부터 로력비를 지불하며 1인당 첫 달은 650위안, 둘째 달은 950위안, 셋째 달은 1250위안, 넷째 달은 1550위안, 다섯째 달부터는 1850위안, 여섯째 달부터는 2150위안으로 이후 6개월간 고정지불하며 지불 시기는 다음달 3일전으로 00가 지정하는 구좌에 환치 혹은 현금으로 지불한다. 상기 로임에는 식비 350위안이 포함되어있다”이다. 단동에는 2013년 현재 만여 명 이상의 북한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눈을 돌려 이를 북한의 개성공단과 비교 할 수 있다. 최소한 개성공단이 북한의 유일한 현금 확보 창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단동은 현재의 남북 혹은 삼국(북한, 중국, 한국)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사람이 작성한 문서 1(2007)

북한사람이 작성한 문서 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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