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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2 /2013.04] 기획 _ 이미지로 보는 중국 (4) 도시의 ‘마른 버짐’ 아래 가려진 파행적 교육제도와 학위 열풍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2 조회수 48

[Vol.32 /2013.04] 기획 _ 이미지로 보는 중국 (4)  도시의마른 버짐아래 가려진 파행적 교육제도와 학위 열풍 

| 기획 | 이미지로 보는 중국 (4)

 

저희 『중국 관행 웹진』에서는 2013 1월부터 <이미지로 보는 중국> 칼럼을 기획하여 연재합니다. 인천대 HK사업단 및 소속 연구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포스터, 사진, 그림 등의 각종 이미지 자료 중의 일부를 선정하여 설명과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다양한 이미지들에 내재되어 있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의미를 함께 읽어 나감으로써 중국 일상의 여러 단편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도시의 ‘마른 버짐’ 아래 가려진 파행적 교육제도와 학위 열풍

장호준 _ 인천대학교 HK 교수

 

중국의 길거리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중국어 단어는 무엇일까? 2000년대 중반 북경에 거주할 때 가끔 이런 궁금함이 들곤 했다. 당시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사회주의’도, ‘시장경제’도, 심지어는 ‘중국’도 아니었다. ‘증명서류를 만든다’는 뜻의 ‘반정(办证/辦證)’이라는 단어였다. 증서 발급은 대부분 관공서의 일차적인 행정 서비스 대상이자 수많은 용역대행업체의 중점 서비스 항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법으로서의 ‘반정’이란 단어가 길거리에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반정’은 이러한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증서 발급이 아니라, 가짜 증명서류 발급 또는 불법적인 문서 위조에 관한 것이다.

 

 

중국에 오래 머물렀던 사람이라면 도시의 담벼락, 보도 블록, 가두 광고판 등 도처에 씌어진 ‘办证’이라는 단어가 낯익을 것이다. ()초서체로 흘려 쓴 그 글자 옆에는 어김없이 11자리의 휴대전화 번호 또는 가끔은 8자리의 고정전화 번호가 함께 적혀 있기 마련이다. 일종의 광고인 셈인데, 가짜 증명서류를 발급해 줄 테니 필요한 사람은 연락하라는 것이다. 이들이 취급하는 증명서류는 신분증(份证)에서부터, 호구증(口本), 임시거주증(), 혼인증(婚姻), 학생증(), 성적증명서, 학위증(), 계약문서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렇지만, ‘반정’의 주된 대상은 역시 학위증이다.

 

 

학위증이 ‘반정’ 산업이라는 지하경제의 주된 상품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1990년대 중반의 ‘원핑러(), 즉 학위 열풍 현상이 있다. 이 학위 열풍은, 2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과거제도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지라도, 문화대혁명 기간(1966-1976)의 파행적인 교육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문혁 기간 중, 대부분의 학교들이 사상투쟁의 장으로 변질됨에 따라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의 경우, 신입생 선발시험제도가 폐지되고 4년 동안 신입생이 모집되지 않았다. 1970년부터 군중 추천 방식을 통해 이공계통의 신입생이 충원되었으나 그 자격은 실무 경험이 있는 노동자, 농민, 군인에 한정되었고 학생 숫자 역시 제한적이었다. 지식인이 ‘추악한 인민의 적(臭老九)’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학위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아니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은 그런 것이었다.

 

4인방의 처형 이후 실권을 잡게 된 덩샤오핑 등 개혁파의 교육ᆞ과학관은 오랜 역사 기간 동안 축적된,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부정되고 억눌린, 인민들의 학위에 대한 열망을 다시 자극하였다. 1977 10 12, 국무원(国务)이 교육부의 <1977年高等校招生工作的意>을 인준함에 따라 성() 단위의 대학입시제도가, 그 이듬해에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입학시험 제도가 10여 년 만에 부활되었다. 이에 따라 1977년 겨울과 1978년 여름 중국 현대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의 대학입시가 치러졌다. 이 두 차례의 시험에서 총 1160만 명의 응시자 중 1/29에 해당하는 40만 명만이 선발되어 1978년 가을부터 동시에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중국 지도층 인사들 중에 유난히 ‘77학번()’ 또는 ‘78학번’이 많고, 또한 자신을 ‘77학번,’ ‘78학번’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에게서 미묘하게 풍겨나는 자신감은 이러한 과정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이제 ‘과학기술은 제1의 생산력(是第一生)’이며, 과학과 교육은 국가를 중흥시킬 수 있는(教兴国) 핵심 열쇠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1985년 중공중앙의 <制改革的>을 통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 과정에 대해 의무교육 방침이 결정되고, 1990년부터는 농촌과 산간벽지의 가난한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자는 ‘희망공정(希望工程)’이 전국적으로 추진되었다. 교육과 지식이 더 이상 사치나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서도,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열망과 추구의 대상으로 다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교육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그러나 이제 중국 사회의 주축으로 성장한, 이른바 ‘문혁에 의해 지체된 세대(的世代)’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의 일련의 사회경제적 변화는 이들 지체된 세대의 교육과 학위에 대한 열망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시장경제체제가 급속히 확산되고 동시에 단위제도가 약화되거나 실질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직장 및 직업 유동성이 현격하게 높아진 것이다. 이직과 구직 또는 승진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이력서 학력 난의 ‘초졸’, ‘중졸’, ‘고졸’은 이제 더 이상 개인 당안()의 대중정치활동 경험에 의해 만회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졸, 고졸의 학력으로 고졸, 대졸의 신입 직원을 관리, 지도하는 것 또한 그다지 체면 서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1990년대 이러한 변화의 최대 수혜자는 대학이었다. 입학 정원이 법률로 고정된 상황에서, 각각의 대학은 점점 증대하는 학위 수요에 부응하여 서로 경쟁적으로 야간과정, 특별과정 등을 편법으로 설치하고 상당한 재정적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의 학위 열풍은 또 다른 기형적 현상을 초래했다. 야간 학위 과정에 들어가더라도 어차피 대리 출석, 논문 대필을 하는 바에야, 굳이 2, 4년씩 소모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통합적인 학위 관리체계가 없다는 당시의 제도적 허점을 배경으로 그리고 디지털 복사 기술의 발전에 편승하여, 학위증 위조업체들이 반공개적으로 유혹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办证 131xxxxxxxx, 办证 86xxxxxx... 물론 이러한 ‘반정’ 업체들이 1990년대 중후반 학위증 수요만을 대상으로 하여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필자가 장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베이징 중관촌 지역의 경우, 1980년대 후반 수많은 민영기업체들의 설립과 도산, 소유권 분쟁 등을 배경으로, 은밀하게 문서 및 도장 위조(刻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1990년대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 ‘반정’ 업체들이 길거리에 반공개적으로 광고를 내고 그들의 존재를 일반 대중들에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확실히 1990년대 중후반 학위증과 관련해서다.

 


 

증명서 위조, 특히 학위증 위조 관련 광고가 중국 도시의 전신주와 건물 담장, 보도 블록 등에 황소의 마른 버짐(건선; psoriasis)과 같이 덕지덕지 씌어지고 나붙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1999 6월 중공중앙과 국무원은 <于深化育改革,全面推质教育的>에 따라 대학입학정원을 확대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1998 108.4만 여 명이었던 대학 신입생 숫자는 1999년에는 약 154.8만 여 명으로 전년대비 약 43%가 증가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 2008년에는 약 607.7만 명으로 1998년에 비해 약 5.6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대학정원 증가 방침에 대해서는 고등교육기회 확대라는 표면상의 취지도 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그 주된 목적이 무엇이든, 이 정책은 또 다른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는데, 학위의 인플레이션이 그것이다. 너나없이 고졸 학력, 대졸 학위를 가지면서 학위의 희소성이 떨어지게 되고, 또한 취업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더 높은 학위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고교 졸업장과 대졸 학위는 지식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라기보다는 교육과 학위에 투자한 시간과 금전의 척도가 되었다. 이러한 학위 인플레이션 현상은 그 또 다른 부작용으로 위조 학위증에 대한 수요를 자극했다. 위조한 학위증으로 대졸자처럼 행세해도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진 상황에서, 위조 학위증에 대한 보다 많은 수요가 창출된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크고 작은 기업체들의 직원 채용 방식의 변화에 의해 추동된 것이기도 하다. ‘직원 구함: 컴퓨터 판매 분야, , 23-30, 대졸 이상 학력’, ‘직원 구함: 경리직, , 22-27, 미혼, 전문대 졸업 이상’ 등등. 고등교육 학위 소지자가 증가하고 취업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보다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용주들이 취업 요건을 강화하는 일련의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조 학위증이 실제로 얼마나 효용이 있을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법도 하다. 필자가 면담한 베이징 중관촌의 고용주들과 ‘반정’ 업자들 그리고 위조 학위증 소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2000년대 중반 당시, 전부는 아닐지라도, 위조 학위증은 확실히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통용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베이징 중관촌에 있는 중소업체가 쓰촨성 어떤 시 소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 누구누구의 졸업 여부를 확인할 시간도,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위조 학위증이 범람함에 따라 중국 교육부는 2002년부터 전국적인 학위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면담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시스템이 완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홍보도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중소업체들의 경우 절차 상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속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학위증을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교 졸업장의 경우는 더더욱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중관촌 ‘반정’ 업자들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가장 수요가 많은 졸업증/학위증은 고교, 전문대, 대학의 순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대에 들어 중국 도시의 담장과 보도 블록에 ‘办证’이라는 단어와 13자리 숫자로 된 광고가 마른 버짐 번지듯, 옆에서 옆으로 그리고 이전 것 위에 더하고 더하여 급속하게 퍼져나간 것이다. 이 ‘반정’ 산업은, 지난 호에 소개했던 ‘다오반’ 판매업자들의 일부가 다오반 산업에서의 이윤체감 상황에 직면하여 2003년 무렵 이 사업분야로 진출함에 따라 더욱 맹렬한 기세로 확산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광고 형태도 등장했다. 매직펜으로 쓰고, 경쟁자의 광고를 페인트로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는 방식 대신, 1초도 채 걸리지 않는 스티커 부착 방식을 활용하는 업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보통 변변한 일거리가 없는 농민공들이 물량 소화 양에 따라 보수를 받고 부착을 떠맡았으니 얼마나 적극적이었겠는가? 2000년대 중반 무렵, 중국 도시의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는 확실히 ‘办证’이었다. 그것도 이제는 국가의 학위 통합관리 시스템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上’이라는 단어와 함께.(办证, 刻章이라는 단어와 함께 있는 ‘上’은 인터넷 상의 학위 확인 시스템에서 확인이 가능한 위조 학위()을 발급해준다는 말이다)

 


 

중국의 일부 언론은 이 ‘办证’ 광고를 ‘도시에서의 황소 피부 건선(城市牛皮)’이라 칭한다. 이러한 사회병리학적인 은유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일단 제쳐두자. 어쨌든 이 질병은 다른 수많은 중증 질병에 비하면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언론은 이 질병을 보기 흉하고 그래서 부끄러운 외관의 차원에서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이 내리는 처방은 한결같이 그 매개체를 척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주로 ‘소질이 낮은’ 농민공들로 구성된 불법 ‘반정’ 업자들에 대한 소탕. 그렇지만 그 마른 버짐을 닦아 내거나 매개체를 차단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놓인 생리적 불균형 상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경제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행적으로 운영된 교육제도와 그로 인해 야기된 학위에 대한 광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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