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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1 /2013.03] 기획 _ 이미지로 보는 중국 (3) 다오반과 아이를 안고 있는여성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2 조회수 58

[Vol.31 /2013.03] 기획 _ 이미지로 보는 중국 (3)    다오반과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들

| 기획 | 이미지로 보는 중국 (3)

 

저희 『중국 관행 웹진』에서는 2013 1월부터 <이미지로 보는 중국> 칼럼을 기획하여 연재합니다. 인천대 HK사업단 및 소속 연구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포스터, 사진, 그림 등의 각종 이미지 자료 중의 일부를 선정하여 설명과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다양한 이미지들에 내재되어 있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의미를 함께 읽어 나감으로써 중국 일상의 여러 단편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다오반과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들

장호준 _ 인천대학교 HK 교수

 

다오반()은 문자 그대로는 훔친 판본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무단으로 인쇄, 유통되는 도서출판물을 일컫는 말이었다. 1990년대 들어 다오반은 무단복제 행위를 가리키는 동사로도 쓰이기 시작했으며, 점점 음반, 사진, 영화, 소프트웨어 등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제품들을 포함하여 상표권과 특허권으로 보호되는 제품들에 대한 무단복제품, 그리고 무단복제 행위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 다오반 현상은 당시의 IT 및 문화산업의 팽창과 디지털 복제 기술의 발달을 배경으로 도시는 물론 농촌 지역에 이르기까지 중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속 인터넷 망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곧 이어서는 산자이(山寨)1)담론이 확산되면서 다오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수그러졌지만, 그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필자는 다오반 현상의 문화적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1998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베이징의 중관촌(中關村) 일대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1990년대 당시에는 음반, 영화, 소프트웨어 등을 담은 VCD/DVD가 가장 대표적인 다오반 제품이었다. 1백 위안을 훨씬 뛰어넘는 헐리우드 영화를 VCD/DVD 한 장에 담아 20-30 위안에 판매했으니, 그 이윤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2-3천 위안에 달하는 MS Windows나 몇 백 위안씩 하는 소프트웨어를 그렇게 복제하여 판매하는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몇 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영화 제작비나 소프트웨어 개발비 대신, 이들에게 필요했던 건 성능 좋은 컴퓨터와 원가 1위안에도 미치지 않는 디스크면 충분했다. 여러 이유로 인해 국가 기관들 역시 형식적인 단속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당시 다오반 산업은 확실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농민공들이 다오반을 통해 한 몫 두둑하게 챙긴 후 손을 씻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일부는 본인의 회사나 가게를 열어 홍색 자본가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관촌의 다오반 업자들로부터 들었던 이러한 성공 신화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1990년대 후반,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WTO 가입을 위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하면서, 다오반이라는 거위가 낳는 알의 황금색은 점점 바래지기 시작했다. 단속은 여전히 형식적이었지만 그 빈도는 확연히 높아졌고, 다오반 관련 행위에 대한 처벌의 수위가 훨씬 강화되었다. 동네 사람을 따라 도시로 와서 다오반 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농민공들의 숫자가 점증했으며, 이에 더해 도시의 실업자들 역시 다오반 문턱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는 고속 인터넷 망이 점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 다오반 업계에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고, 단속과 처벌은 강화되는 삼중의 시련이 닥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관촌의 다오반 유통업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다음 호에 부분적으로 소개할 ‘전업’을 제외하고) 먼저, 호객 행위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고정된 가게에서 다오반 제품을 팔거나 직접 들고 다니며 행상하는 것이 위험해짐에 따라, 집이나 사무실 등과 같이 안전한 곳에 제품을 두고 길거리에서 호객하여 물건이 있는 곳으로 동행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다오반 제품을 생산하는 것 이외에도 VCD/DVD 1000장 이상을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경우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의 대상이 된다는 법률 개정에 따른 대응이다. 2002년 이후 필자가 방문 또는 면담했던 판매업자들은 이러한 법률 및 정책 변경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은 1000장 이하의 단위로 제품들을 분산하여 보관한다고 하였다.

 

또 다른 변화는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다오반 유통, 판매업에 여성들의 숫자가 급속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개인(남성)이 먼저 이주하여 기반을 잡은 후에 가족이 이주하는 농민공들의 도시 이주 패턴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관촌 다오반 업자들의 경우, 이러한 변화는 이주 패턴보다는 사업상의 ‘안전의식’이 강화된 것과 더 큰 관련이 있다. 단속의 빈도와 처벌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다오반 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실제 단속 상황에서 단속자들로부터 최대한의 관용적인 ‘재량’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또 다른 변화, 즉 음란물의 유통 및 판매가 현저하게 증가했다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영화 및 소프트웨어 DVD의 이윤율이 감소함에 따라, 다오반 업자들은 훨씬 위험하지만 보다 많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음란물의 유통을 늘리기 시작했다. 음란물 다오반은 일반 다오반에 비해 2-3배로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는데, 이는 고속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인터넷 검열로 인해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음란물에 대한 거래는 일반 다오반에 비해 훨씬 엄격하게 통제되는데, 이는 국가가 줄기차게 강조해 온 ‘자본주의적 풍속 오염’을 경계하고 ‘사회주의적 정신문명’을 건설하자는 이념적 통제의 연장선에 따른 것이다. 이다. 실제로 <형법> 363조에서는 음란외설물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 층위의 형사 처벌을 명시하고 있으며, 1998년 최고인민법원이 하달한 <사법해석>에서는 50장 이상의 음란 외설물을 생산, 유통하거나 100장 이상을 판매하는 자를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사업 안전성’ 확보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유아 활용’이다. 중국에서 유학하거나 오래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남자들)은 누구나 길거리에서 아이를 안은 여성들로부터 다오반 구매를 독촉 받은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보다 주의 깊게 관찰한 사람이라면, 남성 또는 일반 여성 판매업자들과 달리, 이들이 특히 음란외설물을 권유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전략 역시 법률 망의 틈새를 활용하는 것인데, <형법> 21조 및 <공공안전행정처벌조례> 3조 등에서는 한 살 이하의 아이를 양육할 책임이 있는 여성과 임신한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행정 구류대상에서 제외시킬 것을 명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심지어는 4-5세가 다 된 어린이들을 ‘보호 장치’로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필자가 면담한 공안에 따르면 이는 확실히 효과적인 전략이다. 1살이든 5살이든 어린 아이기 있는 경우라면, 밤새 울음소리나 배고프다고 보채는 소리,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말썽 부리는 상황 때문에 조서 한 장 제대로 쓸 수 없어서 대개는 바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여성들, 특히 유아나 어린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성들이 보다 위험한 일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질식할 것 같은 황사 바람 속에서, 그리고 차가운 겨울 바람이 외투 안으로 스며들 때도, 아이를 품에 안고 다가와 나지막이 “毛片, , 办证!”을 외치는 사람들. 최근 몇 년 새 확연히 줄었지만, 여전히 어느 도시에서나 마주칠 수 있다. 아이를 안고 다오반을 팔러 나온 여성들의 모습을 오랜 기간 지켜봐 왔고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혼란스럽기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아이를, 모성(母性)을 돈벌이 도구로, 그것도 불법 행위에 동원하는 모습에 대한 씁쓸함과 질책, 오죽하면 저럴까 하는 연민, 저 엄마로 하여금 어린 아이를 안고 거리로 나오게 한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대한 체념, 등등.

 

그렇게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과 심정은 확실히 각양각색인 것 같다. 피에타 상에서부터 ‘모성’이라는 제목의 수많은 그림들, 육아 블로그의 사진들, 아이를 안고 팔 아파하는 주부들, 그리고 아이를 품에 안고 길거리에 나선 다오반 판매업자들에 이르기까지.

 

 

* 이 칼럼에서 활용한 사진은 2002-2005년 사이에 필자가 촬영한 것임.

 

 

 


1) 산자이는 중국의 모방복제 현상의 또 다른 차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2000년대 후반 이래 널리 회자되고 있다. 다오반과 산자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각각의 현상과 관련하여 형성된 담론의 정치적, 문화적 의미에 대해서는 최근에 발표한 졸고(拙稿) “중국의 모방·복제관행과 지적재산권의 문화정치” 『담론201 (16 1)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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