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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30 /2013.02] 논단 _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서열과 관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7 조회수 45

[Vol.30 /2013.02] 논단 _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서열과 관행

박승준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2013 1 21일 중국관영 중앙TV(CCTV)는 저녁 7시 전국 동시방송 뉴스 신원리엔보(新聞連播)를 통해 인민해방군 고위 지도자였던 양바이빙(楊白)의 장례식을 두 번째 중요 뉴스로 방영했다. 양바이빙은 인민해방군 상장(上將)으로 당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과 총정치부 주임을 지낸 거물이며, 국가주석을 지낸 형 양상쿤(楊尙昆ㆍ1998년 사망)과 함께 이른바 ‘양가장(楊家將)’이라는 말을 들으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에 중국 군부를 쥐락펴락 하던 인물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인물이 지난 15 93세로 세상을 떠나 21일 오전 10시 베이징(北京)시 서쪽의 팔보산(八寶山) 혁명공묘에서 진행된 장례식에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참석을 하지 않은 점이었다. 장례식 뉴스를 전하는 CCTV 뉴스캐스터는 먼저 중요 뉴스를 소개하는 멘트를 통해 “오늘 양바이빙 동지의 장례식이 열렸는데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 우방궈(吳邦國), 원자바오(溫家寶), 자칭린(賈慶林), 리커창(李克强), 류윈산(劉云山) 동지 등이 나와 애도를 표했다”고 전했다. 지난 11 8일 제18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가 후진타오에서 시진핑(習近平)으로 바뀌기 이전 중국공산당 원로 동지들의 장례식이 있을 때면 항상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다음으로 참석해서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던 장쩌민이 참석을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장쩌민의 이름은 관영 CCTV의 뉴스캐스터가 양바이빙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화를 보내온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부분에 포함돼있기는 했다. 하지만, 장쩌민의 이름은 이전의 후진타오 다음 자리에서 시진핑,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리커창, 류윈산 다음의 여덟 번째로 이동했다. 지난 2004년 장쩌민이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물려주고 권력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당 대회나 원로 동지 장례식을 포함한 당내 큰 행사에는 반드시 후진타오 다음 순서로 유족들에게 조문을 해왔고, 장쩌민이 보낸 조화는 항상 후진타오가 보낸 조화 다음 자리에 세워지던 관례가 9년 만에 바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관영 CCTV의 양바이빙 장례식 뉴스는 중국의 권력자들과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중국 관찰자들에게도 주목할 만한 뉴스였다. 안 그래도 장쩌민에게 억하심정이 많은 파룬궁(法輪功) 계열의 인터넷 매체들은 “시진핑이 후진타오와 힘을 합쳐 장쩌민을 완전히 밀어내려 한다”는 미확인 소식을 퍼뜨리고 있던 터였다.

 

그런 점을 의식한 듯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양바이빙 장례식 이틀 뒤인 123일 장례식 당시의 중국 최고 권력자들 서열을 전하던 순서의 변화에 대한 해명성 기사를 타전했다. “장쩌민 동지가 18차 당 대회 직후 지도자들 의전 순서에서 자신을 다른 은퇴한 노()동지들과 같이 대우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신화통신의 짤막한 기사는 “장쩌민 동지가 국가 지도자들 의전 순서에서 다른 노 동지들과 같이 대우해 달라고 당 중앙에 청구(請求)했으며, 이는 공산당인(共産黨人)으로서 ‘높은 품격과 넓은 가슴(高風亮節和寬廣胸懷)’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장쩌민이 보여준 겸양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21일 저녁 관영 CCTV가 방영한 양바이빙 장례식에서 장쩌민의 거명 순서가 9년 만에 처음으로 후진타오 다음 자리에서 앞에서 여덟 번째 자리로 이동한 배경을 설명한 셈이었다. 2004년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장쩌민이 참석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지도자 이름 거명 순서가 후진타오, 장쩌민, 그리고 나머지 8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던 관례가 공식적으로 장쩌민의 이름을 현임 정치국 상무위원 다음 자리로 잡았음을 공표한 것이었다.

 

물론 오는 3 5일 개막될 예정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가 국가주석 자리를 시진핑에게 넘겨주고, 원자바오는 총리 자리를 리커창에게, 그리고 자칭린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자리를 넘겨주고 은퇴할 경우, 중국의 지도자 거명 순서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당공식 행사에 후진타오도 참석하고, 장쩌민도 참석할 경우 중국공산당의 지도자 거명 순서는 시진핑, 후진타오, 그 다음에 6명의 현임 정치국 상무위원, 그리고 그 다음에 장쩌민을 거명하는 순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어찌 보면 당 총서기를 물려주고 은퇴한 2명의 전임 당 총서기 모두 살아있을 정도로 중국정치가 밝아졌기 때문에 중국 정치가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가게 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시대에 당직의 이름도 수시로 바뀌고, 그 자리에 앉아있던 인물도 목숨 부지가 쉽지 않던 과거와 비교하면 실로 큰 변화라 아니 할 수 없다.

 

관영 TV의 양바이빙 장례식은 또한 과거 전통 중국과는 크게 달라진 장례식 조문 의례를 잘 보여주었다. 오는 3 5일까지는 국가주석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조문한 후진타오의 모습을 보면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왼쪽 팔에는 검은 완장을 두르고, 장례식장 가운데에 붉은 바탕에 흰 낫을 그린 중국공산당 기를 덮은 고인의 주위는 붉은 꽃으로 장식했고, 조문을 하는 사람은 고인을 향해 세 번 허리를 굽혀 절하는 ‘싼쥐궁(三鞠躬)’의 예를 표하고, 잘 화장한 얼굴이 드러나 있는 고인 주위를 한 바퀴 돈 다음, 유족들과는 상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악수를 하며 조의를 표한다. 관영 CCTV가 전하는 양바이빙 장례식을 보면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장례 의식을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수입한 그대로 치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공산당 고위 지도자들의 장례의식은 ‘중국 특유의 장례의식’이 아닌 소련공산당으로부터 수입한 의례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 후진타오와 장쩌민, 즉 은퇴한 두 명의 당 총서기 사이의 권력 배분은 어떤 모습으로 정리가 되어나갈까. 한마디로 후진타오와 장쩌민 두 권력자는 지난 18차 전당대회에서 시간적 요소를 도입한 이른바 ‘격세간택(隔世揀擇)’이라는 방식으로 권력을 분할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18차 당 대회에서는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후진타오 계열은 리커창 한 사람뿐이고, 시진핑을 포함 장더장(張德江), 류윈산, 위정성(兪正聲),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 등 나머지 여섯 명은 장쩌민 계열 일색이지만, 이들 가운데 시진핑만 제외하고는 5년 뒤의 19차 당대회때 모두 68세를 넘겨 퇴임하고 그 자리에 왕양(汪洋), 후춘화(胡春華)를 비롯한 후진타오 계열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장악해서 그때부터는 후진타오가 본격적으로 수렴청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는 모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농촌지역의 중국인들은 각각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두 형제가 부모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살다가 부모가 돌아가시고 두 형제의 두 가구가 한 집에서 살게 될 경우 집도 정확히 둘로 구분하고, 마당도 정확히 둘로 나눈 다음 각자 출입할 사립문을 내어서 출입문도 따로 쓰면서 공존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경우 그런 상황이 되면 두 형제 중 한 형제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중국인 형제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정치에서 고위 지도자 이름을 거명하는 순서는 곧 권력의 크기 순서이며, 그 순서는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관례다. 따라서 앞으로 3 5일의 전국인민대표 대회에서 후진타오, 원자바오, 자칭린이 각각 국가주석과 총리, 정협 주석직에서 내려온 뒤에 공식행사에서 중국 지도자들의 이름 거명 순서는 확인해둘 필요가 있는 중국공산당의 중요한 관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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