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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29 /2013.01] 논단 _ 근대 시기 만주(국)지역의 연구동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7 조회수 125

[Vol.29 /2013.01] 논단 _ 근대 시기 만주()지역의 연구동향

윤휘탁 _ 한경대 교양학부

 

먼저 근대 시기 만주()지역에 대한 연구동향에 관해서는 국내외의 몇몇 학자들에 의해 이미 정리된 바 있다. 즉 국내학계의 경우, 김기훈은 한국, 일본, 중국, 영어권 학계의 「만주국사 연구의 국제적 동향」(『중국사연구』 제16, 2001), 신주백은 연변지방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지방 역사학계의 연구동향과 자료현황: 연변지방을 중심으로」(『역사와 현실』 15, 1995), 윤휘탁은 중국학계의 만주국 사회경제사 연구동향(「中國의 ‘滿洲國’ 社會經濟史 硏究成果와 課題」, 『중국근현대사연구』 제8, 1999)을 정리했다. 일본학계에서는 田中隆一이 자신의 저서(『滿洲國と日本の帝國支配』, 有志舍, 2007) 도입부에서 일본, 한국, 중국학계의 만주국 연구동향을 정리했다. 전중륭일의 연구사 정리는 동아시아 각국의 최근 연구동향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만주에 대한 최근의 연구경향을 일별할 수 있게 해준다. 중국학계에서는 李力의 「在中學術界對僞滿洲究動態和現存的僞滿資料」(『만주연구』 제8, 2008)가 있다.

 

다음으로 만주지역을 포함해 중국의 案자료(사료) 소장현황과 자료수집 현황, 그에 따른 문제점 등에 대해서도 일부 학자들이 정리한 바가 있다. 즉 井村哲郞의 「滿洲國關係史料の現狀と課題」(만주학회 편, 『만주연구』 제8, 2008), 윤휘탁의 「중국의 案자료 소장현황과 수집의 문제점」(『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0, 2009) 등이 그것이다. 또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의 수집현황과 문제점을 다룬 것으로는 송면권의 「국가보훈처의 독립운동자료 수집현황과 과제」(『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7, 2001), 유병호의 「중국 당안관에 소장된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27, 2001), 장세윤의 「독립기념관의 자료수집 현황과 과제」(『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7, 2001) 등이 있다.

 

중국의 국가기관에서 만주지역 당안관의 목록을 정리한 것들로는 吉林省社會科學院 滿鐵資料館이 편찬한 『吉林省社會科學院滿鐵資料館館藏資料目錄』 1~3(吉林人民出版社, 1995), 大連市案館이 편찬한 『大連市案館指南』(中國案出版社, 1996), 遼寧省案館이 편찬한 『遼寧省案館指南』(中國案出版社, 1994), 黑龍江省案館이 편찬한 『黑龍江省案館指南』(中國案出版社, 1994)이 있다.

 

그렇다면 근대 시기 만주()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연구 경향을 살펴보자. 우선 만주국을 개괄한 개설서로는 姜念東의 『僞滿洲國史』(吉林人民出版社, 1980), 陳本善의 『日本侵略中國東北史』(吉林大學出版社, 1989), 解學詩의 『僞滿洲國史新編』(人民出版社, 1995), 常城 등의 『現代東北史』(1986), 滿洲國史編纂刊行會가 편찬한 『滿洲國史』(總論, 各論)(滿蒙同胞援護會, 1970)가 있다

 

만주국의 성격과 관련해서, 최근 만주국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만주국을 일본의 괴뢰 국가로 인정하면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만주국의 특성을 들추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실례로 프래신짓트 두아라(Prasenjit. Duara)는 만주국의 정치를 논하는 기준으로 권력 구조, 체제 형식, 국가 형식, 주권 주장(sovereignty claims)을 제기하면서 만주국을 ‘동아시아적 근대(East Asian modern), 특히 국가ᆞ민족ᆞ정체성의 형성이라는 근대적 과정들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전형’으로 인식한다.1)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는 ‘민족협화’, ‘왕도낙토’, ‘일만(日滿)일체’, ‘일만일덕일심(日滿一德一心), 일만불가분관계(日滿不可分關係) 등 만주국 건국이념의 허상, 만주국을 형성한 각 민족의 협화와 반목이라는 양면성에 주목해 만주국의 초상(肖像)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메라(Chimera)’로 묘사하고 있다.2) 한석정은 국가를 사물(조직이나 물리력 혹은 사회를 새겨내는 힘)이나 어떤 관계(사회의 계급 역학이 반영되는 앙상블)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효과(效果)’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만주국은 실제 구조로서가 아니라 그런 구조로 보이게 하는 시각적ᆞ언술적(言述的) 실행으로 ‘국가로서의 효과’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다.3) 유선영은 만주국을 제국과 식민의 각기 다른 시간성과 공간성으로 구성된 트라우마적 기억과 경험의 공간으로 이해한다.4)

 

루이스 영(Louise Young)은 만주국을 가장 선진적인 형태의 디자인ᆞ동원ᆞ실험의 장소로서 본국 일본의 담론과 태도, 야심만만한 군부의 가변적인 환경ᆞ요구ᆞ전략들과도 커다란 상관성을 지니고 있었던 곳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만주국의 개혁은 많은 개혁가들과 극단적 군국주의자들에게 일본의 개혁을 위한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지는 등 일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5) 마크 피티(Mark Peattie)는 만주국을 ‘군사적 파시스트 국가’라는 관점으로 파악한다.6) 이와 유사하게 임성모와 코시자와 아키라(越澤 明)도 만주국을 일본의 군대와 관료들을 위한 훈련장뿐만 아니라, 총력전 체제, 통제 경제, 건축, 도시 계획, 박물관 경영 방면에서 ‘일본 근대의 실험이 이루어진 장소’7)로 파악한다. 재미학자 박현옥(Hyun Ok Park)은 북한 혁명의 기원을 만주에서 찾고 있다.8) 윤휘탁은 만주국 정부ᆞ군대ᆞ경찰, 만주국 상공업계ᆞ노동계ᆞ농축어업계 등에서의 민족구성, 민족관계, 민족위상, 민족인식, 민족갈등ᆞ대립ᆞ충돌의 실태 등을 바탕으로 만주국을 ‘이산과 민족갈등의 溫床’으로 파악한다.9) 또한 중국의 劉晶輝는 만주국의 민족, 성별, 계층 등을 중심으로 소위 '王道政治'의 모순과 허상을 밝혀내고 있다.10)

 

다음에 각론적 차원에서 일본 제국주의 정책사 내지 만주국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으로는 일본 만주사연구회의 『日本帝國主義下の滿州』(1972)가 효시이다. 이 책에서는 만주국의 경제통제정책의 입안과정, 화폐 통일사업, 이민ᆞ노동정책, 토지 商租權 문제를 중심으로 일제의 만주국에 대한 경제적 지배의 실상을 밝혔다. 또한 만주사연구회에서는 『滿州開發四十年史』(,하권, 1964)에서 만주개발사를 다루었다. 淺田喬二는 『日本帝國主義と舊植民地地主制』(1968)을 통해 대만, 조선, 만주에서의 일본인 대토지 소유를, 小林英夫는 『大東亞共榮圈の形成と崩壞』(1975)에서 만주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일제의 경제적 침략과정을 조감했다. 岡部牧夫는 『滿州國』(1978)에서 만주국의 지배체제, 산업정책, 농업정책 등을 분석했다. 西村成雄은 『中國近代東北地域史硏究』(1984)에서 만주에서의 근대적 민족운동과 그 사상을, 淺田喬二ᆞ小林英夫는 『日本帝國主義下の滿州支配』(1986)를 통해 만주국에서의 일본의 군사지배, 농촌행정지배, 경제지배 실태를, 鈴木隆史는 『日本帝國主義と滿州』(1992)에서 일본제국주의론을 밝혔다. 한국의 임성모는 『만주국 협화회의 총력전체제 구상 연구』(연세대 박사논문, 1998)를 통해 협화회를 다루었다. 중국에는 일제의 만주 통치와 관련해 王希亮의 『日本對中國東北的政治統治』(1991), 조선족 학자 姜龍範의 『近代中朝日三國對間島朝鮮人的政策硏究』(2000) 등이 있다.

 

사회경제사 측면에서는 대만의 孔經緯가 『東北經濟史』(1986)에서 만주지역 경제사 일반을 다루었다. 松本俊郞은 『日本資本主義と中國植民地化』(1992)를 통해 일본의 만주국 통치가 만주사회에 초래한 경제적 변화, 중일경제관계의 실태, ‘식민지 지배와 근대화’를 둘러싼 논쟁 등을, 『侵略と開發: 日本資本主義と中國植民地化』(1988)에서는 침략과 개발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침략과 개발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시각에서 만주에서의 일본의 침략행위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개발의 실태 등을 다루었다. 또한 그는 『滿洲國から新中國へ』(2000)에서 안산제철소의 사례를 중심으로 일본 패전 전후 만주사회의 변모도 밝혀냈다. 安富步는 『滿洲國の金融』(1997)에서 만주국 금융정책과 만주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실태, 만주중공업개발주식회사의 자금조달과 투입, 만철의 자금조달 및 투입, 만주국의 농업금융 등을 밝혔다. 柴田善雅는 『占領地通貨金融政策の展開』(1999)에서 만주국의 통화금융정책을 다루었다. 山本有造는 『滿洲國經濟史硏究』(2003)에서 만주국의 농업생산력 수준, 광공업생산력 수준, 만주국의 국제수지 등을 분석했다. 만철을 다룬 연구서도 다수 나왔는데, 安藤彦太郞은 『滿鐵: 日本帝國主義と中國』(1965)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중국의 관계에서 만철이 행한 역할과 작용을, 小林英夫는 『滿鐵: 知の集團の誕生と死』(1996)을 통해 일본제국의 싱크탱크라는 관점에서 만철을, 蘇崇民도 『滿鐵史』(1990)를 분석했다.

 

농촌 사회사 연구와 관련해서 中兼和津次는 『舊滿洲農村社會經濟構造の分析』(1981)에서 만주농촌사회의 계층분화를, 風間秀人은 『滿洲民族資本の硏究』(1993)에서 만주의 대표적 민족자본인 糧棧의 동태를, 塚瀨進은 『中國近代東北經濟史硏究』(1993)를 통해 철도부설이 만주경제에 미친 영향을, 高橋泰隆은 『日本植民地鐵道史論』(1994)를 통해 만철과 일본의 식민지 철도 경영사를 다루었다. 廣川佐保는 『蒙地奉上--滿州國の土地政策』에서 만주국의 토지정책을 다루었다. 松村高夫 등은 『滿鐵勞史の硏究』(2002)를 통해 만주국의 노동정책, 만철, 대련부두, 무순탄광, 昭和製鋼所 노동자의 노동체제를 분석했다. 중국학계에는 衣保中의 『東北農業近代化硏究』(1990)가 있다.

 

일본의 이민정책과 관련해서 일본의 만주이민사연구회에서는 『日本帝國主義下の滿州移民』(1976)을 통해 만주이민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밝혀냈다. 또한 蘭信三은 『滿州移民の歷史社會學』(1994)에서 만주 이민체험자의 전후 체험을, 山本有造는 『滿洲 記憶と歷史』(2007)는 만주 체험자의 귀환, 잔류와 관련된 다양한 기억과 체험을 다루었다. 한국계 재미학자 玄圭煥은 『韓國流移民史(, )』를 저술해 조선인 이민사 전반에 대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고, 高承濟는 『한국이민사연구』(1973)를 저술했다. 조선족 학자 金潁은 『근대만주 벼농사 발달과 이주 조선인』(2004)을 통해 벼농사와 조선인의 만주 이주 사이의 상관성을 다루었다. 중국학계에는 이민 관련 저술로 衣保中의 『朝鮮移民與東北地區水田開發』(1999), 王勝今의 『僞滿時期中國東北地區移民硏究』(2005)가 있다. 한국학계에서는 김경일ᆞ윤휘탁 등이 『동아시아의 민족이산과 도시』(2004)를 통해 한ᆞ중ᆞ일 각국의 만주 이민 실태와 그 과정에서 형성된 만주 도시의 실태를 다루었다. 만주지역 도시의 형성사와 관련해서는 越澤明의 『滿州國の首都計劃』(1988), 『哈爾濱の都市計劃』(1989), 曲曉範의 『近代東北城市的歷史變遷』(2001)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인() 사회사 및 만주국의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조선족 학자 金春善은 『延邊地區朝鮮族社會的形成硏究』(2001), 김태국은 『만주지역 ‘朝鮮人民會’ 연구』(국민대 박사논문, 2001), 유병호는 『재만 한인의 국적문제 연구』(중앙대 박사논문, 2001), 손춘일은 『만주국의 재만 한인에 대한 토지정책사 연구』(1999)와 『中國朝鮮族社會文化發展史』(2002), 『滿洲國時期朝鮮開拓民硏究』(2003), 鄭雅英은 『中國朝鮮族の民族關係』(2000), 鶴嶋雪嶺은 『中國朝鮮族の硏究』(1998)를 저술했다. 만주국의 교육문제를 다룬 것으로는 野村章의 『滿州ᆞ滿州國敎育史硏究序說』(1995), 王智新 編의 『日本の植民地敎育: 中國からの視點』(2000), 山根幸夫의 『建國大學の硏究』(2003), 金美花의 『中國東北農村社會と朝鮮人の敎育』(2007)이 있다. 한국에는 박주신의 『간도 한인의 민족교육운동사』(2000), 중국학계에는 『중국조선족교육사』(1991), 王野平이 主編한 『東北潤陷四十年敎育史』(1987) 등이 있다. 교육 관련 기초 자료집으로는 竹中憲一이 편찬한 『滿州における敎育の基礎的硏究』 전6(2000)이 있다. 그밖에 沈潔은 『滿洲國社會事業史』(1998)를 통해 만주국의 사회사업의 전개과정, 특징, 문제점 등을 다루었고, 山田豪一과 呂永華은 각각 『滿洲國の阿片專賣』(2002), 『僞滿時期的東北烟毒』(2004)을 통해 만주국의 아편전매정책과 아편으로 인한 사회적 실상 등을 분석했다. 조선족 학자 최봉룡은 『만주국의 종교정책과 재만 조선인 신종교』(2009)를 통해 만주국의 종교정책을 다루었다.

 

항일투쟁 및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는 淺田喬二가 『日本帝國主義下の民族革命運動』(1975)을 통해 대만, 조선, 만주에서의 항일 농민운동의 전개과정을 검토했다. 李盛煥은 『近代東アジアの政治力學』(1991)에서 만주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田中恒次郞이 『滿洲における反滿抗日運動の硏究』(1997)에서 반만항일운동사를, 金靜美는 『中國東北部における抗日朝鮮ᆞ中國民衆史硏究序說』(1992)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의 항일투쟁, 조선총독부의 안전농촌, 만주국의 집단부락 건설과 지배정책 등을, 和田春樹는 『金日成と滿洲抗日戰爭』(1992), 姜在彦은 『滿州の朝鮮人パルチザン』(1993)을 저술했다.

 

한국학계의 항일운동 연구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 전5(1965), 김승학의 『한국독립사』(1965), 김준엽ᆞ김창순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전5(1967~1976), 박영석의 『일제하 한민족 독립운동사』(1984), 신용하의 『한국민족독립운동사연구』(1985), 윤병석의 『독립군사』(1990), 신재홍의 『항일독립운동연구』(1999), 박환의 『만주 한인 민족운동사 연구』(1991)가 있다. 또한 윤휘탁은 『日帝下 滿洲國硏究: 抗日武裝鬪爭과 治安肅正工作』(1996)에서 항일무장투쟁의 특성, 항일무장세력과 만주민중의 관계, 이 양자를 단절시키고 항일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만주국에서 실시한 치안숙정공작의 실태, 성과 등을 밝혔다. 그밖에 박선영의 『東北抗日義勇軍』(中國友誼出版公司, 1998), 황민호의 『재만 한인사회와 민족운동』(1998), 신주백의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45): 민족주의운동 및 사회주의운동 계열의 대립과 연대를 중심으로』(1999), 김주용의 『일본의 對간도 금융침략정책과 한인의 저항운동연구』(동북대 박사논문, 2000), 장세윤의 『중국 동북지역 민족운동과 한국현대사』(2005)가 있다. 한홍구는 동만주에서의 민생단사건과 김일성의 관계를 분석했다.11)

 

중국학자들의 연구로는 『東北抗日聯軍鬪爭史』編寫組의 『東北抗日聯軍鬪爭史』(1991), 高樹橋의 『東北抗日聯軍後期鬪爭史』(1993), 王魁喜 등의 『近代東北人民革命鬪爭史』(1984)가 있다. 조선족 학자로서 만주항일무장투쟁을 다룬 것으로는 김동화의 『연변청년운동사』(연길: 1988)와 『중국조선족독립운동사』(1991), 김창국의 『남만인민항일투쟁사』(연길: 1986)와 『동북항일유격근거지사연구』(연길: 1992), 고영일의 『조선족력사연구』(심양: 1988), 박창욱의 『조선족혁명렬사전(1,2)(심양: 1983), 김성호의 『1930년대 연변 民生團事件 연구』(1999), 김기봉 등의 『일본 제국주의의 동북침략사』(1987)가 있다. 그밖에 재미학자 이정식의 『만주혁명운동과 통일전선』(허원 역, 서울: 1989), 재미학자 서대숙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서울: 1985)가 있다.

 

만주국 군경을 다룬 것으로는 만주국군간행위원회가 편찬한 『滿洲國軍』(1970), 중국 傅大中의 『關東憲兵隊』(1991)와 『僞滿洲國軍簡史』(1999), 加藤豊隆의 『滿洲國警察小史(1~3)(1970, 1976) 등이 있다.

 


1) 프래신짓트 두아라 지음, 한석정 옮김, 『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나남, 2008), 129.

 

2) 山室信一, 『キメラ: 滿洲國の肖像』(中央公論新社, 2004), p.40. 야마무로 신이치는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즉 머리가 사자, 몸뚱이가 양, 꼬리가 용인 ‘키메라’로 비유하면서 사자는 관동군, 양은 천황제 국가, 용은 중국 황제 및 근대 중국에 각각 대비시킨다.

 

3) 한석정,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괴뢰국의 국가효과, 1932~1936, 231.

 

4) 유선영, 「東亞 트라우마 : 민족의 혼거와 적대의 구성」, 『이동의 아시아: 식민, 냉전, 분단체제의 경계들과 민족의 공간들』(2012년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국제컨퍼런스 발표논문집, 2012.4.20~21), 32.

 

5) Louise Young, Japan's Total Empire: Manchuria and the Culture of Wartime Imperialism,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9, p.227.

 

6) Mark Peattie, Ishiwara Kanji and Japan's Confrontation with the West,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5.

 

7) 임성모, 「제국의 교차로: 만주국, 오키나와 비교 서설」(『동아시아: 비교와 전망』 1, 2003), 114; 越澤 明, 『滿洲國の首都計劃』(東京: 日本經濟評論社, 1991), p.11.

 

8) Hyun Ok Park, Two Dreams in One Bed: Empire, Social Life, and The Origins of North Korean Revolution in Manchuria, Duke University Press.

 

9) 윤휘탁, 『만주국: 이산과 민족갈등의 온상』(혜안, 2013.2 출간 예정).

 

10) 劉晶輝, 『民族,性別與階層 僞滿時期的王道政治』(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5).

 

11) Han Hongkoo, Wounded Nationalism: The Minsaengdan Incident and Kim Il Sung in Eastern Manchuria, Univ. of Washington Ph. D. dissertatio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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