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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29 /2013.01] 기획 _ 동북의 오늘 (1) 중·조 국경의 만들기 혹은 허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7 조회수 47

[Vol.29 /2013.01] 기획 _ 동북의 오늘 (1)    ·조 국경의 만들기 혹은 허물기

| 기획 | 동북의 오늘 (1)

 

인천대 HK사업단에서는 HK사업 2단계 기간(2012.09 - 2015.09) 동안 중국의 동북 지역(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중점 연구 권역으로 설정하여 연구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중국 관행 웹진』은 동북 권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동북의 오늘> 칼럼을 기획하여 2013 1월부터 연재하고자 합니다. <동북의 오늘>에서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 전문가들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심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일상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중·조 국경의 만들기 혹은 허물기

강주원 _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본 연구자의 박사논문(2012)은 “중·조 국경 도시 단동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다음의 내용은 본 연구자의 중·조 국경에 대한 첫 경험이자 박사 논문의 연구지역과 대상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다. 2000년 대학원생이던 본 연구자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노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단체로 방문한 38선은 분단의 벽으로 상징되는 국경이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2000년 초여름, 북한과 중국 사이의 두만강 지역에서 경험을 통해서, 본 연구자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국경”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중·조 국경 너머 보이는 북한 땅을 응시하면서, 동행한 50대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고, 386세대 운동권을 자청하던 선배는 분노하고, 대학생들은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국경을 앞에 두고 각자(한국사람의 세대별)의 위치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면서, 본 연구자는 “그들이 상상하는 국경의 이미지와 재현은 무엇일까”라는 자문을 하였다. 한편, 두만강을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소학교의 교장 선생님의 대화 내용은 본 연구자에게 국경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탈북자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그 동안 저쪽 두만강 건너편에 있는 무산 지역과 왕래가 활발하게 할 수 있었죠. 밤에는 양쪽 마을 청년들이 서로 만나 술 한잔을 하면서 친구로 지내고 누구네 집에 있는 밥숟가락 숫자도 알 정도였으니까. 조그만 다리를 하나두고 저쪽에도 우리 친척이 있으니까 왕래를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요즘 한국 사람들이 여기에 자주 오니까, 오히려 우리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죠. 

 

일행과 잠시 떨어져서 본 연구자는 한국사람이 만들어놓은 두만강 강변의 탈북자 은신처를 갔다. 도착한 순간, 한 남자가 유유히 두만강을 건너 북한 땅으로 사라졌고, 잠시 후 다시 본 연구자 앞에 나타났다. 레드콤플렉스로 무장한 본 연구자에게 그는 단지 물물교환의 목적으로 두만강 너머에 다녀왔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였다. 두만강 바로 옆에서 하룻밤 새우잠을 자면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가득한 본 연구자와 같은 강을 두고 목숨을 걸고 넘어오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의 폭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그 이후 한 달 동안 연변 지역의 탈북자 조사를 하면서도, 과연 조선족과 북한 사람들에게 저 국경은 어떤 의미로 기억이 되고 상상되고 있는지, 그들은 국경을 넘나들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가 본 연구자의 관심사가 되었다. 현지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언론과 학술지를 통해서 두만강을 남한 사람들이 넘어갈 수 없는 또 하나의 국경의 이미지로 상상하고 만드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사람과 조선족 사이에 체현된 국경 넘나들기의 삶은 무시되고 있었다. 즉 중·조 국경에 대한 한국사회의 언론과 연구자의 시선은 국경 만들기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다.

 

_ 단동의 네 집단: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2006년을 전후해서, 단동의 중·조 국경에는 철조망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2008년 방문한 백두산 천지의 국경은 빨랫줄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 전후부터 본격적으로 중조 국경과 관련된 삶이 상존하고, 그 국경에 대한 다양한 읽기와 실천을 한국어로 하면서 네 집단이 어우러진 삶의 터전이 있다. 그들은 국경지역에서 한국어를 공유하지만 때로는 같은, 때로는 다른 민족과 국민으로 서로를 인식한다. 그곳은 중국의 최대 국경도시 단동(丹東)이다. 국경을 염두에 두고 사는 그들은 북한사람·북한화교·조선족·한국사람들이다.

 

네 집단의 규모는 2000년대 이래, 북한사람과 북한화교가 2천 명 이상, 조선족 8천 명 이상, 한국사람이 2천 명 전후로 추산되고 있다. 조선족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 이외에는 약 십 년 동안 이러한 상황은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2010년 전후 네 집단 가운데 북한사람의 규모가 변화하고 있다. 북한사람들이 단동의 봉제 공장, 수산물 공장, 북한식당에 대규모로 취업을 하고 있다. 2012 10월 현재 이들의 규모만 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백두산 천지 국경표시(2008)

단동 호텔의 북경, 서울, 평양 시계(2011)

 

_ 네 집단의 만남의 단면들: 국경 허물기

 

단동의 호텔 로비에는 세 개의 시계가 있다. 그 시계들은 북경, 서울, 평양의 시간을 알려준다. 2011년 김기덕 감독의 “풍산개”는 휴전선을 넘나드는 주인공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단동의 택배 회사 유리창에는 삼국(북한, 중국, 한국)의 연결해준다는 표시가 선명하다. 이와 관련된 인편들이 중조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식당과 상점에는 삼국(북한, 중국, 한국)의 국기가 동시에 걸려있다. 국기들은 물건과 손님의 국가 혹은 국민 정체성을 대변한다. 단동의 “조선족 거리”는 한국 물건들이 풍부하다. 이들을 도매로 구입하는 큰 손님은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들이다. 단동의 식당과 술집에서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이 술 한잔을 하면서 경제교류를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단동의 네 집단의 일상적인 만남의 풍경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실천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경제적 만남과 교류에는 국경 허물기가 주된 연결고리이다.

 

택배 회사 유리창의 지명 표시(2007)

삼국의 국기들(2007)

 

_ 중·조 관계에 대한 시각들: 정치외교적 시각 접근의 한계

 

2012년 중·조 국경지역인 단동은 북·중 경협의 상징으로 언급되고 있는 북한의 “황금평”과 마주보고 있다. 이곳의 개발과 관련하여, 한국 언론은 북·중 간의 정치·외교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中, 北 로켓발사 직후 황금평 개발 보류 통보” 혹은 “中 외교부, 황금평 개발 좌초설 정면 부인”과 같이 상반된 내용을 보도한다. 나아가 “北, 외화벌이 노동자 12만 명 내년(2013)까지 중국에 보낸다”는 기사를 “한국 정부의 5·24 대북 제재 조치”와 연결해서 설명한다. 한편 중국과 한국의 연구자들은 “동북아 시대와 서해에서의 새로운 협력 모색”, “남·북·중 3자 경제협력의 윈윈윈 모델의 가능성과 과제” 등의 주제 하에 단동의 미래와 역할에 대한 전망 등을 논의한다.

 

이러한 보도와 논문들은 단동에서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의 관계맺음과 교류를 통해서 행해지는 중·조 국경에 대한 경제적 실천들을 간과하고 있다. 나아가 단동 국경지역의 정치·경제적 변화를 놓치고 있고 중·조 국경과 관련된 문화적 풍경을 다루지 않고 있다. 즉 국경 만들기와 관련된 담론들에서 네 집단과 관련된 국경 허물기 양상에 대한 시각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_ 2012년 중·조 국경지형: 단동의 문화적 풍경 변화 주목

 

2012년 황금평에는 북한의 주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지만, 국경 너머 단동의 국문만 지역에는 압록강대교가 건설 중이다. 단동의 신시가지는 마무리 공사와 입주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단동시정부가 내세우는 투자 잠재력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인력을 수입할 수 있다”이다. 단동에서 국경의 상징물로 자리잡고 있는 만리장성을 형상화한 비석이 황금평과 국문만 사이의 철조망을 따라 곳곳에 세워지고 있고, 압록강을 가로지르면서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 단동항을 출발해서 신의주항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동의 국경 너머 황금평 개발 담론들은 여전히 구체화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황금평과 관련되어 예상되는 북중 경제 협력은 2010년대 접어 단동의 문화적 풍경의 변화 속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단동의 네 집단은 지난 20여 년 동안 국경 허물기와 관련된 삶을 살아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북한사람들이 북한의 황금평이 아닌 중국 단동의 봉제공장, 수산물 공장, 북한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이처럼 단동의 문화적 풍경에는 국경 만들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실천하는 국경 허물기도 공존하고 있다.

 

신압록강대교 건설(2012)

신시가지에 조성된 아파트 단지들(2011)

 

만리장성을 형상화한 국경비석(2012)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북한화물선(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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